풀의 향기 - 싱그러움에 대한 우아한 욕망의 역사
알랭 코르뱅 지음, 이선민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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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74 낚이다


《풀의 향기》

알랭 코르뱅

이선민 옮김

돌배나무

2020.06.10.



아침햇살을 본다. 땅바닥을 덮은 풀잎에 이슬이 앉았다. 이슬은 하얗게 얼었다. 햇볕이 오르자 언 이슬이 녹고는 물방울이 맺는다. 얼마나 추웠을까 하고 풀을 걱정하려다가, 오히려 내 마음이 푸르게 녹는다. 이 추위에도 긴밤을 보내고, 얼음 녹은 이슬을 품는구나.


《풀의 향기》를 편다. 풀내음을 느껴 보고 싶어서 죽죽 읽는데, 어쩐지 풀빛이나 풀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냥그냥 다른 사람들 글이나 책을 따서 엮었을 뿐이로구나 싶다.


풀을 보았으면, 풀을 본 마음을 적으면 될 텐데. 풀을 한 포기 손바닥에 얹었으면, 풀냄새를 맡은 이야기를 풀어내면 될 텐데.


나는 어릴 적에 목장을 해보고 싶었다. 풀밭에서 말이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그렸고, 언덕을 온통 푸르게 뒤덮은 들판을 그려 보았다. 태어나서 자란 의성 멧골 시골집에는 소 한 마리 겨우 있었는데, 얌전한 짐승을 품는 농장을 꾸리고 싶었다.


의성은 예나 이제나 깊디깊이 숲이다. 우리 집도 이웃도 숲에 둘러싸였다. 마을은 온통 숲이었다. 맨발에 맨손으로 뛰고 달리고 나무를 탔다. 그런데 어느새 맨발에 맨손으로 마주할 풀밭이며 숲이 줄어든다. 풀꽃이 마음 놓고 자랄 자리가 사라진다.


책을 덮는다. 이른아침에 만난 봄까지꽃을 떠올린다. 아직 1월 한복판인데 이 추위에 벌써 꽃을 피운다.


풀은 아무리 조그마한 땅뙈기에서 돋더라도 찬바람을 거뜬히 견딘다. 작은 풀꽃이 이뻐 흙까지 꽃삽으로 덜어서 집으로 데려와 보면 이내 시들시들한다. 풀꽃은 해와 바람과 흙이 나란한 곳을 사랑한다.


밭둑이나 나지막한 숲에서나 풀을 만난다. 풀밭이 있는 자리는 볕이 잘 들어 따뜻하다. 작은 풀꽃은 겨울에도 봄을 그리고 기다리면서 씩씩하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새롭게 돋고 피어난다.


풀은 모두한테 밥도 되어 주고, 집도 되어 준다. 풀이 흙을 붙잡으니 온누리가 푸르고, 모두한테 맑게 흐르는 바람까지 베푼다. 


《풀의 향기》를 다시 들춘다. 끝까지 읽어 보지만, 참말로 풀꽃하고는 많이 먼 줄거리이다. 풀이 어떻게 속삭이는지 살피지 않은 듯하다. 풀이 먹고 자라는 해와 비와 바람 얘기가 흐르지 않는다. 풀이 입는 옷이나, 풀이 걱정하는 일도, 이 책을 쓴 분은 읽어내지 못한다. 수박 겉핥기라고 할까. 책이름에 낚였구나 하고 생각한다.


2024.01.2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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