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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나막신 ㅣ 우리문고 1
권정생 지음 / 우리교육 / 2007년 3월
평점 :
작게 삶으로 61 너도 나도 가엾은
《슬픈 나막신》
권정생
우리교육
2002.8.10.
방천시장에 있는 책방에 갔다. 책방에서 아기가 잔다. 책방지기도 소곤소곤 우리도 소곤소곤. 책방 어귀에 있는 종소리가 더 크다. 책방지기는 혼자 아기를 키울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가 신발이 너무 작아 만지작거리다가 책을 훑는다. 다시 신발을 보니 궁금하던 일이 확 풀렸다. 가족사진이 있다. 카프카를 좋아해서 책 언저리에 비슷한 모습을 보고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책방에서 엉뚱한 구경을 하다가 《슬픈 나막신》을 본다.
큰딸이 어릴 적에 권정생 님이 쓴 ‘몽실 언니’하고 ‘강아지똥’하고 ‘검정고무신’을 곁에 두고 읽었다. 권정생 님은 내가 살던 안동에서 가까운 일직에 살았다. 언젠가는 권정생 님이 쓴 ‘엄마 까투리’를 애니메이션으로 담아서 프랑스로 판다는 말이 오갔다.
《슬픈 나막신》을 읽는다. 권정생 님이 태어난 일본에서 어울린 아이들 이야기가 흐른다. “어른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집을 부숴 버리고 죽이려 대들고 그러나 어른들이 있어야만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바르게 착하게 자라라고 가르치면서 어른들은 마음대로 삐뚤어진 것을 하고 있다.”라든지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은 왜 다른가? 조선 땅이란 어디 있으며 누가 빼앗아 가지고 있는 걸까? 모두가 똑같은 얼굴 눈 코 입이 있고 팔다리가 붙었고 노래도 부르고 웃으며 사는데 어째서 서로 빼앗고 빼앗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같은 글자락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다. 권정생 님 목소리로 그대로 들린다.
언젠가 권정생 님이 사는 마을에서 일을 했다. 종지기로 일하던 교회에 틈틈이 가 보았고, 권정생 님이 사는 집에도 몇 걸음 갔다. 밭자락 끝 폭 꺼진 자리에, 마을에서도 한쪽 끝에 집이 있다. 창살문에는 ‘권정생’이란 이름을 달아 놓았다. 찢어진 문구멍으로 안을 보니 방이 참 작았다. 책에 나오는 강아지 집터가 뒷간 앞에 그대로 있고, 시내가 흐르는 길 쪽에는 키가 큰 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빨랫줄인지 전깃줄인지 마당을 지난다.
처음 이 방을 보던 날은 이렇게 단촐하게 사는 어른이 우러러보였다. 여느 할아버지처럼 생겼는데, 마음을 울리는 글을 이 방에서 썼구나 싶어 놀랐다. 한 사람이 눕기도 작은 방이다. 집도 마당도 작고 모두가 작았다.
살림처럼 작은 이야기를 꾸미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적은 글이 시냇물처럼 잔잔하게 흐른다. 나누는 말에도 글에도 할아버지 마음이 곳곳에 묻어난다.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고스란히 따뜻하게 담겼다.
“조선 사람이 가엾다, 일본 사람이 가엾다” 하고 나란히 읊는다. 이 힘들고 고단하던 나날을 건너온 일본 아이들도 조선 아이들도 같은 마음인지 모른다. 일본이라고 하면 덥석 나쁘게 여기기만 하느라, 일본을 바탕으로 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손가락질도 할 테지만, 일본이든 조선이든 어디에서나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아이를 보는 어버이와 어른 눈은 똑같은 마음이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가난한 살림에 두 나라는 총칼로 싸움을 벌였다. 왜 그래야 했을까. 누가 총칼을 만들어서 앞세웠을까. 고단한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잔잔한 얘기로 그때 그 삶을 훤히 본다.
2023.12.1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