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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니스의 황금새 1 - 시프트코믹스
하타 카즈키 지음 / YNK MEDIA(만화) / 2020년 9월
평점 :
작게 삶으로 058 글을 쓰는 여자
《카이니스의 황금새 1》
하타 카즈키 지음
정혜영 옮김
YNK MEDIA
2020.10.10.
만화책 《카이니스의 황금새 1》를 읽었다. 예전 영국에서 소설을 쓰는 여자를 다룬다. 주인공 리아가 앨렌으로 꾸민다. 여자라는 몸을 남자처럼 바꾼다. ‘여자는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여길 뿐 아니라, ‘여자 주제에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얕보던 무렵이라, ‘여자인 리아로 쓴 소설’이지만 ‘남자처럼 꾸민 앨런이 쓴 글’이라고 숨겨서 내놓는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꿈을 키우고 싶은 리아는 시골을 떠나서 런던으로 가려고 한다. 소설이든 글이든 누구나 쓸 수 있고, 그야말로 누구나 배우며 꿈을 펼 수 있는데, 성별로 가르고 따돌리는 굴레가 너무 단단하기에 남자처럼 꾸미기로 한다. 머리카락을 짧게 치고, 앞가슴을 가리고, 바지를 입는다. 나중에 소설이 널리 읽히면 그때에 비로소 ‘나는 여자이지만, 이렇게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 하고 밝히자고 생각한다.
그제 짝하고 주고받은 말을 떠올린다. 밥을 먹던 짝은 “내가 먼저 죽으면 시골 물려받은 땅 팔지 말고 아들한테 그대로 물려줘라” 하고 말하더라. “당신은 나보다 더 오래 살 거예요. 운동도 그렇게 부지런히 하잖아요. 나는 머리가 자주 아프니 언제 불이 꺼질지 몰라. 내가 먼저 갈 테니 걱장 마소.” 하고 대꾸했다. 그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짝답지 않아 보이더라.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류씨 집안’이 아니지만, 왜 내가 아닌 셋째 아이인 아들한테 시골땅을 물려주려고 하는지 섭섭했다. 첫째하고 둘째는 딸인데, 왜 첫째하고 둘째 몫은 생각을 안 하는지 서운했다.
친정에서는 딸이 나 혼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적에 마당 담벼락 한 평짜리 땅이라도 받고 싶었다. 나도 아버지 딸인데, 나만 없는 사람 같더라. 그렇지만 엄마는 딸인 내 몫은 없고 아들 넷 몫으로 나누어 놓았더라. 나는 엄마한테 한 평도 못 주냐고 말을 못 했지만 속으로 섭섭했다. 고작 한 평을 받아서 어디 쓰겠냐마는, 고작 한 평을 받더라도 우리 시골집을 통째로 받은 오빠한테 바로 돌려줄 마음이지만, 나는 우리 엄마가 시골땅을 어떻게 나누려는 마음인지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짝이 ‘류씨 집안 시골땅’을 막내인 아들한테만 물려주려는 줄 우리 두 딸이 안다면, 이다음에 섭섭하게 생각할는지 모른다. 나도 그랬는걸.
아직도 남녀 차별은 구석구석 밑바탕에 깔렸다고 여긴다. 반쪽씩 만나 오롯이 하나를 이루며 집안을 꾸리고 마을이 되고 나라가 되는 동안, 힘과 돈과 이름은 모두 남자 쪽이 쥔다. 맞벌이를 하면 여자는 밥줄을 걱정하느라 풀이 죽는다. 더러는 남자를 뛰어넘지만, 어떤 자리이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남자가 집과 땅과 돈(재산)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집집마다 딱 굳혀 놓았는지 모른다. 내가 자랄 적에도 우리 엄마아빠는 외동딸인 나는 학교에 안 보내려고 했다. 공부를 안 하겠다는 오빠는 억지로 학교에 보냈다.
우리 엄마도 여자이면서 여자인 나를 꾹 눌렸다. 여자는 여자한테 스스로 물러났다. 나도 여자이면서 어머니이면서 남자를 치켜세운다. 남자인 짝꿍은 물려줄 돈(재산)은 고스란히 아들 몫으로만 챙긴다. 우리가 물려줄 돈이 얼마나 있으랴마는, 우리가 물려받을 어르신 시골땅은 그대로 아들 쪽으로만 물려주어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카이니스의 황금새 1》를 곰곰이 돌아본다. 소설 하나를 쓰는 일에서도 성별을 놓고 따돌리니까, 만화에 나오는 사람은 여자인 몸을 감춘다. 남자로 겉모습을 바꾼다. 나는 ‘숲하루’라는 글이름을 쓴다. 둘레에는 나처럼 ‘남자인지 여자인지 또렷이 드러나도록 물려받은’ 이름을 안 쓰는 분이 많다. 요즘은 글쓴이 이름만으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기 어렵다.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이고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인 시인을 많이 봤다. 이들도 어쩌면 《카이니스의 황금새 1》에 나오는 사람 같은 마음이 아닐까.
글을 쓰는 자리를 생각해 본다. 나는 예전에는 밤늦게 글을 쓰다가, 요즘은 일을 마치고 와서 이른저녁쯤에 쓴다. 나는 머리카락을 짧게 치면서 남자 옷을 바꾸어 입지 않으면서 나답게 가고 싶다. 요즘 둘레를 보면, 옷은 뒷배 같다. 어디에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이름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도 하고, 글쓰기보다 문단권력 같은 힘에 따라서 책이 뜨는 듯싶고, 책방에서도 이런 문단권력을 덩달아 띄운다고 느낀다. 나는 느리지만 내 모습 그대로 글을 쓰고 싶다.
2023.11.11.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