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빵 2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057 가을 감잎



《토리빵 2》

토리노 난코

이혁진 옮김

AK 커뮤니케이션즈

2011.3.5.



《토리빵 2》을 보면 처음에 감잎이 나온다. 다시 보아도 참 곱다. 감잎은 붉은빛이 가장 돌 적에 곱다고 느낀다. 푸릇하던 잎이 발갛게 물들면서 새롭게 오는 철을 알려주는 듯하다.


올해는 감잎에 홀딱 반했다. 곱게 물든 가랑잎을 책에 끼워 놓으면 이내 바랜다. 단풍나무잎만 붉은 그대로 있지만, 여느 잎은 노랗고 빨갛게 곱던 잎이 흙빛이 되더라. 감잎을 몇 군데서 땄다. 팔공산에서 만난 감잎은 크고 아직 푸릇했다. 팔공산 미술관 옆 빈터에 감나무 한 그루 있는데, 잎이 손바닥보다 크고 붉게 물들었다. 몇 자락을 땄다. 계명대 뜰에서 만난 감나무는 잎이 몇 안 남았는데 가장 빨갛게 물이 들었다. 팔이 닿는 데까지만 감잎을 따 보았다.


《토리빵 2》을 읽다가 큰아이 어린 날을 떠올린다. 세이레 동안 젖을 먹이고서 시골집에 맡기고 일을 하러 나갔는데, 큰아이는 시골집에서 걸음마을 뗀 뒤로는 닭하고 오리하고 놀았다. 등겨를 떠서 부어 주면, 닭은 한쪽으로 몰려서 우리 딸을 지켜보곤 했다. 시골을 가까이서 보며 자란 큰딸인데, 이젠 서울티가 나는 아가씨로 자랐다. 흙을 만지고 밭에서 뛰어놀던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서울살이로 뿌리를 내리며 시골하고 더 멀어졌다.


그러나 나도 큰딸처럼 살림이나 보금자리보다 일자리를 찾아서 움직였는걸. 서울티가 나는 삶으로 나아간 큰딸도 일 때문이겠지. 큰딸은 어린날 함께한 오리랑 닭이랑 강아지랑 나락을 떠올릴까? 시골빛을 만지고 놀던 그때를 떠올릴까?


아마 내가 모를 뿐, 큰딸은 큰딸대로 시골빛을 이따금 떠올리겠지. 몸에 물든 빛은 어느 날 가만히 깨어나겠지. 아이들은 저마다 무언가 새롭게 배우려고 태어나리라 본다. 나도 우리 어버이가 못 다한 무언가를 배우려고 태어났을 테고, 우리 짝꿍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아이들한테 이모저모 가르친다고 하지만, 막상 돌아보면 아이한테서 배우는 대목이 아주 많다. 큰딸이 속으로 품는 사랑을 머잖아 나도 받아들여서 좀더 따뜻하게 이 삶을 바라보고 풀어낼 수 있겠지.


며칠 동안 우리 집 모이터 물이 꽁꽁 얼었다. 비둘기가 왔다가 그냥 가고 작은 새가 왔다가 그냥 갔다. 멸치 머리를 담아 놓은 그릇을 비웠다. 물을 끓여 얼음에 부었다. 곧 다시 얼겠지만 한 모금이라도 축이기를 바란다. 헛걸음을 하고 돌아가는 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무언가 바라고 우리 집까지 날아왔을 텐데, 먹이도 없고 물마저 얼면 새로서도 섭섭해서 유리창에 똥만 뿌직 남기고 날아가지 싶다.


이제 《토리빵 2》을 덮는다. 그림도, 그림에 붙는 말도, 어쩜 하나하나 노래 같다. 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촐하게 여민 작은 만화책은 통째로 노래 같다. 시가 달리 있겠는가. 이렇게 가을빛을 이야기하고,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하루를 곰곰이 돌아보도록 북돋우는 글이라면, 모두 노래이리라.


2023.12.0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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