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자르러 왔습니다 1
타카하시 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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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56 시골로 떠난 서울사람



《머리를 자르러 왔습니다 1》

타카하시 신

정은 옮김

대원씨아이

2021.9.8.



요즘은 시집보다 만화책에 흠뻑 빠진다. 엊그제 《머리를 자르러 왔습니다 1》를 읽었다. 도무지 알아듣기 어려운 요즈음 시보다는, 이름난 시인을 흉내낸 듯한 시보다는, 우리 삶을 꾸밈없이 담아내는 만화책에 끌린다.


만화책 《머리를 자르러 왔습니다 1》에는 ‘혼자살기’에 익숙한 젊은 아버지가 나온다. 이이는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도쿄에서 함께 살아왔지만, 둘이 일구는 삶을 짊어지지 못 하고 달아나려고 했다. 짝도 마주하지 못 하고, 아이도 바라보지 못 하는 채 살던 젊은이는 도쿄를 떠나 작은 섬마을로 삶터를 옮긴다. 아이는 젊은 아버지를 따라 섬마을로 터전을 옮긴다.


그러니까 서울(도쿄)에서 달아나 시골(섬)에서 새터를 일구려고 하는 줄거리를 다루는 만화책이다. 번듯번듯하고 숨을 쉴 틈이 없이 빽빽한 서울을 떠난 두 사람(아버지와 아들)은 낯선 시골(섬)에서 모든 것이 어렵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젊은 아버지는 더더욱 벅차다. 그러나 어린 아들은 말없이 아버지를 이끌고, 천장이 뚫린 허름한 시골집이 오히려 둘이 아늑히 누릴 보금자리라고 여긴다.


천장에 구멍이 나서 비가 샐 집인데, 아이는 오히려 밤에 별을 보기에 좋다고 여기면서 반긴다. 젊은 아버지는 서울(도쿄)에서 일할 적에 별을 본 적이 없는 줄 깨닫는다. 비록 천장 뚫린 허름한 시골집이지만, 이곳에서는 아이하고 마음을 터놓고서 살아갈 수 있겠다고 여기면서 눈물에 젖는다.


내 삶을 돌아본다. 나는 은행 일자리를 그만두고 나서는, 내가 맡을 만한 일이 없다고 여겼다. 어느 한 가지 일을 제법 잘 하던 무렵에는 딱히 걱정이 없었지만, 정작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할 적에는 ‘아! 나한테는 먹고살 기술이 없잖아!’ 싶더라.


그래도 나하고 짝꿍은 둘이서 가게를 하나 차렸다. 둘이 새롭게 찾은 일자리는 모두 낯설고 어렵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고 땀을 흘리면서 어찌저찌 오늘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이즈음에 와서 이 가게도 접어야 할 때가 된 듯싶다. 이제 마을가게는 버티기 어렵고, 아주 커다란 가게나 편의점만 남는 철이다.


《머리를 자르러 왔습니다 1》를 보면, 두 사람(아버지와 아들)이 마을사람한테 꾸벅하고 절을 해도 대꾸가 거의 없다. 두 사람은 왜 이렇게 쌀쌀맞아 보이는지 처음에는 모른다. 그러나 ‘섬에 살려고 들어왔다’가 ‘섬(시골)을 못 버티고 떠나는 사람’을 너무나 자주 많이 보아 온 시골사람(섬사람)이기에 처음부터 마음을 열거나 말을 터주지 않는 셈이더라.


만화책을 보면, 아홉 살 아이가 젊은 아버지보다 대견하고, 집안일도 잘 꾸린다. 아홉 살이란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이는 아니다. 좀 서툴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집안도 마을도 읽을 줄 안다. 젊은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천천히 깨닫고 배운다. 가위질(미용 기술) 하나밖에 없다고 여긴 삶이었지만,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조금 더 잘 하지 못 하더라도 이 아이하고 이 시골에서 조금 더 천천히 살아가면서 스스로 거듭날 만하겠다고 생각한다.


만화책을 덮는다. 뒷이야기가 길다. 첫 이야기만 보고 생각해 보면, 요즈음 시골이라는 곳에서는 혼자서 생각에 잠기면서 바다나 숲을 하염없이 바라볼 틈이 많을 만하다. 서울이나 대구처럼 커다란 고장에서는 멍하니 있기 어렵고, 둘레가 시끄럽다. 그러나 시골이나 섬이라면, 아이하고 오롯이 둘이서 바닷소리도 숲소리도 마음으로 맞아들일 만하겠지.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다. 아니, 안 꾸미기에 아름답다. 삶 그대로 보여주기에 아름답다. 그래, 삶을 그대로 드러내기에 마음이 뭉클하다. 내가 나고 자란 의성 멧골처럼 이곳 대구가 시골로 바뀔 일은 없을 듯하지만,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오히려 시골이 서로한테 이바지하지 않겠느냐 싶다. 조용히 스스로 돌아보고, 조용히 푸른들과 파란바다를 바라볼 적에, 스스로 마음에 일어나는 빛이 있지 않을까. 언제나 사랑이 샘솟는 길이란 무엇일까 하고 한참 생각해 본다.


2023.12.06.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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