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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 ㅣ 예찬 시리즈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0년 10월
평점 :
작게 삶으로 049 눈으로 마음으로
《예찬》
미셀 투르니에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북스
2000.10.20.
세 해 앞서 《예찬》을 처음 읽었고, 오늘 이 책을 새로 읽었다. 세 해 앞서 이 책을 읽고서 ‘좋다’고 남겼는데, 오늘 다시 읽고는 ‘+’를 보탠다.
《예찬》은 “눈이 왕이다. 눈이 마음보다 더 중요”하다고 들려준다. 틀림없이 눈으로 많이 보고, 눈으로 느껴서 알아가는 일이 많다. 책도 거의 눈으로 보면서 읽어낸다고 여길 수 있다.
어린 날을 돌아보면, 배가 고프던 일보다 뛰놀던 일이 떠오른다. 넉넉히 먹으면서 자라지 않았지만, 우리 엄마아빠 품에 있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아름답게 누렸다고 느낀다.
네발로 기던 아기는 어느새 일어나서 걸음마를 뗀다. 걸음마를 뗀 아기는 비틀비틀 걷다가 신나게 달리면서 논다. 이윽고 껑충 자랐고, 짝을 만나 어른으로 크면서, 스스로 아이를 낳아 기른다. 첫째 둘째 셋째를 낳는 동안에 나한테는 아이들만 보였다. 세 아이와 함께한 나날은 아이들을 거쳐서 말없이 무언가 보여준 나날이었다고 느낀다. 나를 보며 어머니를 다시 보았고, 어머니를 다시 보면서 앞으로 살아갈 나를 새롭게 본다.
나는 바다처럼 볼 수 있을까. 마음으로 차곡차곡 스미는 길을 볼 수 있을까.
《예찬》은 때(시간)보다는 곳(공간)을 들려준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마음(안)보다는 밖(사회)을 더 바라보았다. 일거리를 찾고 살피고 이어왔다.
땅, 나무, 짐승, 모두 살아가는 숲을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땅은 땅대로 자국을 남긴다. 나무는 나이테처럼 모든 일을 새긴다. 사람하고 이웃인 짐승은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고, 모두 어우러지는 숲은 숱한 이야기를 베푼다.
풀과 나무한테는 사람 같은 눈은 없지만, 풀대로 나무대로 둘레를 본다. 잎눈하고 꽃눈은 풀과 나무가 둘레를 보는 눈이지 않을까. 잎하고 꽃으로 온누리를 보다가 씨앗을 남겨 가볍게 훨훨 날아다니지 싶다.
사람으로 태어난 아기는 엄마한테서 젖을 받는다. 사람 곁에서 살아가는 소하고 염소는 어미소와 어미염소가 젖을 나누어 준다. 가만히 보면, 나무도 암꽃하고 수꽃이 있는데, 암꽃이 꽃가루를 받아서 열매를 맺어서 나누어 준다.
소도 말도 풀을 뜯는다. 풀잎을 골고루 누린다. 우리도 예전에는 온갖 풀을 다 다른 나물로 삼아서 고루 누렸다. 달거나 짜거나 시다는 맛 때문이 아닌, 푸르게 우거진 숨결을 그대로 보고 누렸다.
《예찬》을 읽다 보면 “숲도 사람처럼 지옥 같은 삶을 산다”고 적는데, “집단 수용소 같은 고통에서 자라는 풀꽃나무가 내뿜는 숨을 우리가 마시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적는데, 푸른숲에서 참으로 가슴이 답답할까? 아니지 않을까? 왜 풀밭과 나무숲을 갇힌곳(집단 수용소)으로 바라볼까?
작은 들풀은 서로 뿌리를 붙잡고서 돌개바람을 견딘다. 나무뿌리도 풀뿌리를 붙잡고, 풀뿌리도 나무뿌리를 붙잡으면서 회오리바람을 버틴다. 풀이 못 자라고 나무도 없는 모래밭(사막)이야말로 갇힌곳이지 않을까? 풀과 나무를 밀어낸 도시가 바로 갇힌곳이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미셀 투르니에 님은 ‘눈’이 ‘마음’보다 대수롭다고 적었지. 겉으로만 보았기에 숲을 나쁘게 느꼈을 수 있다. 눈으로 볼 적에도 더 깊이 보려 했다면, 그리고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품으려 했다면, 숲에 흐르는 포근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한다.
2023.10.2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