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시론 - 굴렁쇠 생각 3
이오덕 지음 / 도서출판 굴렁쇠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게 삶으로 047 누가 시인일까



《아동시론》

이오덕

굴렁쇠

2006.11.10.



둘레를 살펴보니 배우는 사람이 많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학교를, 나처럼 아줌마들은 시를 배우고 글을 배우고 낭송을 하고 운동을 하고 산을 가고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학교 다니듯이 돈을 내고서 배운다.


퇴직해서 배우는 사람은 일자리 걱정 돈 걱정 없어 부럽다.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아이들 유치원 가듯 배움터를 간다. 참말로 우리는 배우러 태어났을까.


어르신 배움터에 가서 글을 뽑는 일을 돕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맡는다. 이른바 ‘심사위원’이란 자리인데, 이 자리에 가기 앞서 이오덕 님이 쓴 《아동시론》을 다시 펼친다.


시인이란 이름을 붙인 어른들은, 따로 시를 ‘짜려(구축)’고 들지만, 아이들은 ‘삶’에서 이미 얻은 노래를 ‘스스럼없이 적(기술)’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라고 들려준다. 그러니까 어른도 아이처럼 스스럼없이 삶을 바라보고 지켜보고 느끼는 대로 노래하듯 풀어내면 언제나 저절로 시가 나오고 글이 나온다고 들려준다.


우리 아들이 아직 어리던 열 살 무렵에는 참말로 시인 같았다. 문제를 풀이를 하다가 답이 뭐냐고 물으면 답지에 “엄마가 생각하는 것이 답이야.”라든지 “아까 호랑이 죽은 거 봤잖아, 나 죽었다니까.”라든지 “이불이 저 혼자 점프하다가 떨어져서 그래.”라든지 “아이스크림이 죽었으니깐 시체야.”라든지 “오줌싼 게 아니라 땀이야.”라든지 “세수하라는 법이 어디 있나.” 하는 말마다 웃기기도 하고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는 마음을 느끼면서도, 참으로 놀라곤 했다.


《아동시론》을 천천히 읽는다. 손과 발과 가슴으로 시를 써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나도 삐뚤어진 손재주만 익히면서 길들어 왔지 싶다. 어린이가 학교에서 쓰는 동시만 이와 같을까. 어른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쓰는 시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더구나 숱한 동시는 ‘어른들이 귀염짓을 하는 말씨’로 아이들한테 ‘거짓스런 흉내’를 내도록 시킨다고 쓴소리를 덧붙인다.


아이도 어른도 가슴에서 저절로 터져나오는 말을 즐겁게 쓰면 되겠지. 이 이야기를 안다고 여겼지만, 어쩌면 나부터 아직 잘 모르는 셈일 수 있다. 살아가며 느끼는 모든 마음을 고스란히 적을 줄 안다면, 참하면서 빛나는 글이 태어나겠지.


낱말 짜맞추기, 꾸미는 말솜씨, 재미스럽게 붙이고 깎기, 이런 말을 돌아보면 모두 어른 탓인지 모른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책을 쓰는 사람은 다 어른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쓴 동시를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스민다. 시를 쓰는 사람이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둘레에서 좋다고 여기는 시를 옮겨적기 일쑤이다. 무슨 줄거리인지도 모르고 새롭다고 여기면서 요리조리 뜯어 읽으며 배운다고 한다. 말놀이가 아닌 말재주에 갇힌다. 삶이 없이 머리로만 엮는 셈이다.


어른들이 쓴 시집을 보면, 끝에 비평이 붙는다. 시를 배우는 사람도 글을 쓰는 사람도 알아듣지 못하는 글을 온갖 이름난 사람들이 갖은 말을 붙이면서 좋게 좋게 풀이를 한다. 숲하고 먼 우리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나 어른이기에, 시에서도 숲이 사라지고, 억지로 만들어 낸 온갖 것이 시라는 이름으로 도마에 오른다. 글감만 놓고서 이리저리 칼질을 무섭게 한다.


끔찍하구나 싶은 말도 아무렇지 않게 적는 시를 보면, 시가 피투성이처럼 보인다. ‘미래파’라는 이름으로 쓰는 글을 읽은 가슴은 어떻게 바뀔까. 삶이 없으니 사랑이 없는 채 피로 물들이는 시를 읽거나 쓰다가는 마음도 메마르거나 찢어지지 않을까.


요즘 나오는 젊은 사람이 쓴 시집을 마련해서 읽어 보면, 무슨 뜻인지도 모르거나, 말장난을 하는구나 싶은 시가 많다. 성욕이나 성애를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시도 많다. 사람 얼굴이 다 다르듯, 시를 마주하는 마음도 다 다를 테지만, 시를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쓰는가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시를 쓰려고 할까. 가까이 있는 사람들한테도 시에 쓰듯 말을 하려나? 아이들한테도 시에 쓰듯 말을 하려나?

 

남들이 쓰는 시를 따라하지 말자고, 나는 나답게 쓰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자꾸 다른 시집을 기웃기웃한다. 그렇지만 말놀이가 되지 않도록 내 마음을 담도록 애쓰고 싶다. 내 삶을 내 손으로 스스럼없이 쓴다면, 꾸미고 자시고 할 새가 없으리라 본다.


202311.17.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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