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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라마나 마하리쉬 지음, 이호준 옮김 / 청하 / 2005년 5월
평점 :
작게 삶으로 046 묻고 답하기
《나는 누구인가》
라마나 마하리쉬
이호준 옮김
청하
1987.4.25
열두 해쯤 앞서 짝이랑 홍제암이란 곳에 간 적 있다. 그때 절에서 뵌 스님한테 책을 하나 알려주시면 잘 읽어 보겠노라고 여쭈었다. 스님은 머리를 깎은 뒤로는 바깥에서 나오는 책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읽고서 머리를 깎았다고 하시기에 책이름을 적어 놓았다.
여섯 해쯤 앞서 드디어 《나는 누구인가》를 장만했다. 여섯 해가 걸린 셈이다. 읽다가 덮다가 했다. 읽을 만한 책을 스님한테 여쭈었으면서, 드디어 이 책을 장만했으면서, 정작 잘 읽히지 않았다. 먹고살기 바쁜 나날을 보낸다는 핑계 탓이리라. ‘나는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면서 스스로 길을 찾을 엄두를 못 내었으니, 이 책을 펴도 하품이 나오면서 어려웠으리라.
다시 천천히 읽어 보기로 한다. 꼭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훑어야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 본다. 마음에 와닿는 대목을 살피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고 돌아볼 씨앗을 얻으면 되리라 생각해 본다.
마음이 어수선하면 입을 다물지만, 이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잔뜩 일어난다. 나를 돌아볼 틈을 내면, 어느새 잘못을 깨닫고, 들끓는 불같은 마음이 스르르 꺼진다. 이러다가 다시 힘이 솟아 말이 늘어나는데, 또 부딪치기를 거듭하는 동안 입을 다물고, 또 스스로 돌아본다.
“뼈와 살로 이룬 이 몸은 내가 아니다.” 같은 말을 곱씹는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다섯가지 기관은 내가 아니다.” 같은 말도 되새긴다. “말하고 움직이고 붙잡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다섯 가지 운동기관은 내가 아니다.” 같은 말도 밑줄을 그으면서 생각한다. “호흡도 생각하는 마음도 내가 아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도 내가 아니다.” 같은 말을 되뇌어 본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누구라는 소리일까?
나는 가끔 스님 같은 분들은 한삶을 참 고요하게 산다고 여겼다. 우리처럼 먹고살 일에 걱정이 가득하거나 바쁠 일이 없으니까, 마음을 갈고닦느라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니까, 절에서 지내는 하루가 얼마나 손쉬울까 하고 여기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생각한다. 먹고사는 일거리를 걱정하기에 삶을 누리는 하루일까? 바쁘게 일을 해야 삶이라고 여길 만할까? 세 아이를 낳아 돌보았는데, 세 아이 모두 볼볼 기는 아기였다. 엄마 품을 찾는 아기는 아무런 걱정을 안 한다. 아이들이 커서 학교를 다니고, 이 학교를 마치고, 막내는 군대도 다녀오고, 저마다 일자리를 찾고 삶자리를 찾아서 떠났는데, 근심걱정으로 가득해야만 ‘삶’이라고 여길 만할까? 근심걱정에 파묻혀, 정작 ‘나’라고 하는 숨결을 잊어버린다면, 날마다 바쁘게 뭔가 하는 듯하지만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굴레이지는 않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모든 것을 다시 바라본다. 일하며 움직이는 몸과, 일을 마치고 잠드는 몸이 보는 꿈을 돌아본다. 슬쩍 갸웃거린다. 내가 읽은 책에서 얻은 말은 언제쯤 내 몸에서 잘 삭은 뒤에 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내가 아닌 말은 글로 그리지 못 하겠지. ‘나’라고 할 수 있는 말을 글로 옮기겠지.
2023.10.20.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