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재 유교수의 생활 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044 하루를 배운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1》
야마시타 카즈미
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1996.12.25.
세 해쯤 앞서 《천재 유교수의 생활 1》를 읽을 적에, 막내아들이 우리 엄마가 무슨 책을 읽나 하고 들여다보더니 놀렸다. “엄마는 내가 만화책 읽으면 뭐라 카더니, 와 엄마가 만화책 읽노? 읽지 마! 읽지 마!” “잘 나온 책이야, 내가 읽고 이다음에 네 아이한테 물려주려고 샀지.” 막내아들은 이렇다 할 대꾸가 더 없이, 씩 웃으며 방에서 나갔다.
이제 다 큰 막내아들이지만, 이 아이가 열 살 무렵까지는 책에 묻혀 살았다. ‘○○ 보물찾기’라든지 ‘○○ 살아남기’ 같은 만화책이 새로 나오면 어느새 알고는 엄마한테 사 달라고 졸랐다. 그때에는 어쩐지 그런 만화책은 값이 비쌌다. 막내아들은 만화책을 보고 또 보았다. 지치지도 않는지 다시 읽고 또 읽는 모습을 보며 책값이 많이 나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문득 생각한다. 그때 우리 아들이 다른 만화책이 아니라, 《천재 유교수의 생활》 같은 만화책을 읽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들뿐 아니라 두 딸한테도 이런 만화책을 읽혔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이제 엄마가 만화책을 먼저 읽고서 아이들한테 읽어 보라고 얘기하지만, 다 큰 세 아이는 만화책을 읽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 교수’는 저녁 9시에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난단다. 언제나 똑같은 때에 자고 일어난다. 무엇을 하든 자로 재듯이 헤아린다. 뭔가 어긋나거나 잘못되었구나 싶다면 서슴없이 나선다. 누가 총을 들건 우락부락 노려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직 바르고 옳다고 여기는 길을 씩씩하고 꿋꿋하게 걸어갈 뿐이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지름길을 안 간다. 만화에 나오는 유 교수네 딸은 ‘늘 자처럼 반듯하게 재서 일하는 아버지’가 올바르다고 여긴다. 느긋하기는 하되, 어떤 일도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는 유 교수라는 아버지를 믿음직하게 여긴다.
유 교수는 말이 그다지 많지 않다. 늘 생각하고 다시 생각한다. 하나를 보더라도 허투루 보고 넘기지 않는다. 집안살림도 돕지만, 무척 오래 걸린다. 뭐든 자로 잰 듯이 맞추어야 하니 ‘한 꼬집’ 같은 부피를 모른다.
그래도 손녀 눈높이를 헤아릴 줄 안다. 손녀가 아직 글씨를 모르면서도 ‘한자투성이에 매우 어려운 책’을 거꾸로 쥐고서 읽는 시늉을 해도 즐겁게 받아준다. 다만 손녀하고 얽히는 자그마한 일이라 해도, 뭔가 엉뚱하거나 틀렸다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안 넘어간다. 바로잡으려고 끝까지 붙든다.
요즘 나는 그동안 익숙하게 모든 모든 길을 다시 바라보려고 한다. 아무리 익숙하던 일이나 길도, 마치 처음 마주하듯 낯설게 보려고 한다. 일할 적에도, 자동차를 몰 적에도, 길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을 멀거니 볼 적에도, 뒷산을 오르내릴 적에도, 잠을 자다가도 뭔가 낯설거나 새롭구나 싶다고 느낀 이야기를 적어 본다.
내가 마주하고 바라보는 모든 곳이나 것하고 말을 섞어 보려고 한다. 말을 못 한다고 여기는 돌이나 꽃이나 나비나 나무한테 말을 걸어 보는데, 이렇게 말을 걸어 보면, 어쩐지 돌이나 꽃이나 나비나 나무가 나한테 대꾸해 준다고 느낀다.
‘왜’, ‘왜’, ‘왜’ 하고, “왜 그럴까?” 하고 스스로 까닭을 물어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보다는, 내 마음에 대고서 물어본다. 천천히 하나씩 알아가려고 새길을 나서다 보면 모든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새롭게 마주하고 처음으로 품으려는 마음결일 적에 문득 스스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다 알고 느끼고 생각해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쓰는 하루를 살고 싶은데, 글감이란 멀리 안 있고, 늘 우리 곁에 있을는지 모른다. 내가 마음만 달리 먹으면, 아무리 작거나 수수해 보이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 자그마한 일을 새롭게 맞아들이고 깨달아서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른다.
엊그제 어느 자리에서 무슨 말이 오가면서 언짢았다. 서로 좋게 좋게 마음으로 만나서 한 걸음씩 알아가는 길이기를 바랐는데, 캐물으면서 다그친다고 느꼈다. 왜 그렇게 말해야 할까? 나도 왜 그렇게 대꾸를 해야 했을까? 왜 꾀를 내어서 맞춰 주어야 한다고 여길까?
머리가 휑했다. 우리는 서로한테서 뭔가 얻을 것이 있어야 만날까? 얻을 것이 없으면 서로 할 말이 없고, 나눌 마음도 없을까?
하루라는 삶터가 몽땅 배움터이다. 보거나 하거나 만지거나 앉거나 숨쉬고 눈감는 일조차도 우리를 일깨운다. 가까이 있는 모두가 생각을 키워 준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으로 짐승으로 책으로 나무로 꽃으로 종이로 그릇으로 모습은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하나로 살아가면서 생각과 삶이 가득 담긴 몸으로 다른 줄 다시금 돌아본다.
2023.10.1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