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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이야기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작게 삶으로 030 끈
《인연이야기》
법정
문학의숲
2009.7.5.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시끄러워서 읽던 책을 덮는다. 다른 책을 펼쳤다가 또 덮고 《인연 이야기》를 집는다. 열세 해 앞서 만난 이 책은 다시 읽을 때면 언제나 마음을 쉴 수 있다. 아까까지는 책을 읽어도 글씨가 튕겨나가는 듯하더니 어느새 술술 익힌다. 첫째 글인 ‘오늘의 나는 무엇인가’와 ‘시 반 구절과 바꾼 목숨’을 읽는다. 여태 시끄럽던 마음을 살살 다독인다.
대구에서 가게를 열기 앞서 점집에 가서 물은 적이 있다. 점집에는 아들 낳으려고 답답한 마음에 처음 가고 더 안 갔는데, 짝하고 둘이서 우리 가게를 내려고 한참 헤맬 적에 다시 가 보았다. 가게를 어느 날에 열어야 할지 묻고 싶어서 가 보았다.
점집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 좋게 나왔다. 나는 점을 보는 사람한테 내가 예전에 어떤 일을 하는 삶이었는지 슬쩍 물어보았다. 점집지기는 태어난 날을 묻는다. 이래저래 헤아리는 듯하더니, 내가 예전에는 서당에서 가르친 사람이었다고 알려준다. 그런가?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마음이 한결 차분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예전에 뿌린 씨앗이 그대로 돌아온다고 한다. ‘자신이 뿌린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고스란히 거두게 된다는 것이 우주의 질서이다.’라는 글월을 되읽으면서 지난날 내 몸을 되새겨 본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여린 몸으로 자주 앓았다. 쉰 해 가까이 나를 괴롭히던 응어리를 문득 느끼고는, 이 응어리를 붙잡느라 그동안 놓치거나 잃은 나날을 돌아본다. 응어리를 스스로 내려놓아야 후련한 오늘을 돌려받는 듯하다.
남이 무어라 하기 앞서, 내가 나를 어둡게 보고 느낀 일이 언제나 나를 괴롭힌 셈이다. 내가 보는 그림이 좋든 나쁘든,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 앞날에 스스로 뿌리고 거두는 셈이다. 여태 이런 일을 되풀이한 셈이다.
끈을 놓아야 할 때 놓지 않고 더 끌기에 그만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구나 싶었다. 스스로 아니라고 느꼈어도 멈추지 않고, 그래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냥 나아가려 할 적에 오히려 더 나쁘게 씨앗을 심고 마는 이웃을 본 적이 있다. 《인연 이야기》를 보면, ‘물질 보시는 사라질 때가 있지만 법의 보시는 사라질 수 없습니다.’라는 시가 나온다.
무엇에 목숨을 거는 하루였을까? 나도 다른 이웃도, 어떤 마음으로 무엇에 목숨을 걸면서 오늘을 살아왔을까? 무엇 때문일까? 어느 때에 사뭇 다른 얼굴을 보았을까? 그저 곱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인데, 그만 함부로 휘두르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엄마아빠한테 맡겨 놓았다는 듯이 마냥 해 달라고 떼쓰는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린 길은 아닐까?
사람이든 무엇이든, 만나면 언젠가 헤어지게 마련이다.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는 동안 숱한 나날을 괴롭게 시달린다. 끈을 더 잡으려 하니 괴롭다. 끈을 놓으면 홀가분한데, 안 놓으니 시달린다. 끈을 붙잡지 말고, 새롭게 나아갈 꿈씨앗을 심으면 되는데, 나부터 꿈씨앗보다는 자꾸 다른 끈에 매달려 왔지 싶다. 바로 내가 나를 갉아먹으면서 살았다. 쓴맛을 등돌렸다.
2023.09.1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