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게 삶으로 029 느끼는 몸을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07.20



다섯 해 앞서 벚꽃이 필 무렵에 송해공원 옥연못을 걸었다. 그날 나란히 걷던 분이 《감각의 박물학》이라는 책을 읽으면 글쓰기에 이바지할 만하다고 얘기했다. 그날 덥석 이 책을 장만했다.


이 책에는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이 나온다. 하나마다 여러 이야기를 담는다. 한 꼭지에도 온갖 이야기가 흐른다. 숱한 사람들이 여러 느낌(감각)을 놓고서 쓴 글을 꽤 많이 따서 실었다.


냄새(후각)를 떠올려 본다. 맡기 싫으면 숨을 살짝 멈춘다. 우리 일터 지하실에 들어가야 할 적에는 숨을 훅 참지만, 오 초만 지나도 숨을 쉬어야 한다. 땅밑에 고인 여러 냄새로 어질어질하다. 나이든 어머니한테서 나온 지린내도 떠오른다. 나이든 어머니가 오줌을 조금씩 지리셨는데, 옷에도 몸에도 집안에도 가득한 적이 있다. 옷을 갈아입히고 씻기고 문을 다 열자고 말했더니 갑자기 집안이 싸늘했다.


만지고 맛보고 듣고 보는 일은 혼자서 느끼면 그만이지만, 냄새는 숨을 쉬듯 마신다. 우리 몸은 움직이는 작은 바다인데, 맡기 싫은 냄새도 바다에서 나오는 냄새일 텐데, 냄새가 있는 그대로 퍼지면 어쩐지 힘겹다.


뿌연 마음에 향긋한 마음을 보탤 수 있을까. 뿌연 글에 향긋한 글을 보탤 수 있는가.


살갗(촉각)을 떠올려 본다. 두 아이한테 젖을 세이레만 먹였다. 셋째는 서너 달쯤 먹인 듯한데, 세 아이 모두 젖을 일찍 끊었다. 밥벌이로 하는 일이 언제나 먼저가 되어야 하고, 이 틀에 우리 아이를 맞추었다. 젖을 떼자 바로 떨어져 지냈다. 아이랑 가장 많이 만나고 품어야 할 무렵에 일을 너무 크게 여겼다. 지난날 내가 아이를 좀더 품었더라면 더 살가이 지내왔을까. 일은 일대로 하느라 고단하고, 마음은 마음대로 늘 미안하다.


글을 어떻게 써야 촉촉할까. 마음이 촉촉하면 글도 저절로 촉촉하려나.


맛(미각)을 헤아려 본다. 《감각의 박물학》은 “미각은 사회적 감각”이라고 들려준다. 다른 마음은 혼자서 즐긴다면 맛은 밥으로 끈을 잇는다. 우리가 먹는 밥은, 알고 보면 풀이나 짐승 살점이다. 밥맛을 너무 찾다가는, 자칫 굶주린 이빨을 드러내고야 만다. 기쁨이 아닌 ‘쾌락’은 혀끝에 너무 사로잡힐 적에 불거지지 싶다.


단맛도 짠맛도 아닌, 신맛도 있고 수수하거나 포근하거나 아름다운 맛이란 무엇일까. 글맛을 더하는 길이란 무엇일까.


요즘 나는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는다. 물고기나 귀뚜라미처럼 나도 귀로만 듣는 소리가 아닌,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초음파나 주파수를 느끼는 듯하다. 이 책을 읽기 앞서는 내 몸에서 어떤 소리가 흘러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다른 소리로 여기면서 이겨내려고만 했다.


눈은 빛을 모으는 일을 한다고 한다. 눈에 보인다고 여기지만, 정작 새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머리에서 이루어진 모습을 그려낼 뿐이라고 한다. 얼핏 바라보면 하늘은 텅 비어 보이지만, 내가 못 보거나 못 느끼는 숨결이 가득하다고 한다.


두툼한 《감각의 박물학》에 실린 여러 따온 글 가운데, ‘돈키호테’에 나온 말이라는 “펜은 마음의 혀”라는 대목을 곱씹는다. 나는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내 몸하고 마음은 고스란히 박물관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박물관일 수 있다. 나라는 박물관에는 어떤 하루를 담을 수 있을까? 오늘 나는 어떤 글을 쓰고 그려서 노래할 수 있을까?



2023.9.14.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