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대 타오르는 불꽃이여 - 북아뜨리에 3
칼릴지브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87년 1월
평점 :
절판
작게 삶으로 018 편지
《그대 타오르는 불꽃이여》
칼릴 지브란 글
김한 옮김
고려원
1979.2.20.
《그대 타오르는 불꽃이여》는 벌써 마흔 해가 넘어가는 빛바랜 책이다. 칼릴 지브란 님하고 메리 헤스켈 님이 주고받은 글을 묶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메리 헤스켈 님 이름이 지은이 이름으로 안 들어갔다. 세로쓰기인 묵은 책이고, 종이를 넘기려고 집으면 으스러진다. 불에 타다 만 종이 같고, 둘레가 나무빛깔처럼 짙다. 헌책집을 숱하게 들락거렸을는지 모른다.
내가 모아 놓은 글월을 떠올려 본다. 고등학교 때부터 큰아이를 낳아 기를 적에 쓴 글월을 그대로 두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때에는 좋아하는 동무한테 보내고, 크리스마스나 생일에 맞추어 서로 글월을 주고받았다.
묵은 책 못지않게 묵은 내 글월을 헤아리는데, 이 글월꾸러미 가운데 우리 짝하고 주고받은 글월이 있다. 내가 짝한테 보낼 적에는 공책에 먼저 써서 옮겨적었다. 까맣게 지우고 쓴 글월이 있고, 짝한테서 받은 글월이 다섯 자락이고, 꽃다발에 넣어 준 엽서가 둘 있다. “표현을 못하는 것이 안타깝소 … 나의 앞으로도 변함없는 사랑 보내오!!! 여보!!!” 예전에 받은 엽서는 짝을 맺고서 받았는데, 이제 와 다시 보니 웃음이 난다.
짝하고 쉰두 달을 사귀는 동안 주고받은 글월은 고작 다섯이다. “타인의 인생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어려운 일이나 좋은 일은 항상 함께 했으면 좋을 것 같구나 … 첫 편지 사연이 밝고 즐거운 내용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 편지 받아 보고 나의 성의가 있느니 없느니 하면서 나쁜 평가 할까 봐 걱정이구나 … 좋은 평을 부탁한다 … 미미한 글 여기서 줄일까 한다. 1988.4.12.” 짝은 이 첫 글월처럼 데면데면 썼다. 글을 써서 띄우기보다 낮 2시에 꼭 전화를 했다. 딱히 할 말도 없이 걸었고, 전화를 끊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마음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글길이었고, 서로를 북돋우는 말을 그무렵에는 할 줄 몰랐다.
칼릴 지브란 님은 《방랑자》를 쓰고서 삶을 내려놓을 때까지 메리 헤스켈 님과 주고받은 글월이 오백 자락이 넘는단다. 《그대 타오르는 불꽃이여》에는 백하고 예순 꼭지가 실렸다. 두 사람은 ‘교장’과 ‘학생’이라는 자리가 있고, 서른한 살과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가 있다. 칼릴 지브란 님은 한집을 이루기를 바라지만 메리 헤스켈 님은 손사래친다. 끝까지 틈을 두기로 하였고, 언제나 칼릴 지브란 님을 곁에서 돕는 마음을 이으려고 했다. 둘은 마음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사랑하면서, 마음으로 삶을 짓는 길을 함께했다.
둘 사이에는 감출 일이 없은 듯하다. ‘바람과 햇빛과 들판’이 서로 홀가분하게 키운다고 여긴다. 칼릴 지브란 님은 “이성과 열정이란 바다 위를 달리는 영혼의 닻과 키로 돛과 키를 내팽계친다면 표류”한다고 말한다. 마침내 삶을 내려놓을 즈음에 이르러, 앞으로 거둘 글삯(저작권)을 고스란히 메리 헤스켈 님한테 남긴다.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 담듯 생은 자리만 바꿀 뿐”이라는 말을 돌아본다. 서로 살리고 북돋우는 말이나 글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본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목숨을 잇는다고 여기지만, 정작 마음을 푸르고 환하며 밝게 이어가는 사랑은 잊거나 등진 하루이지는 않을까. 밥을 잘 먹고, 옷도 멋지게 입고, 집도 크게 짓고, 자동차도 굴리고, 이래저래 겉모습은 번들거리지만, 막상 마음에는 사랑이 없이 겉치레만 하는 굴레이지는 않을까.
“장례식을 올리지 말아 달라 … 화장 후 부디 재를 줍지 말아 달라” 같은 말을 되새긴다. 사랑으로 살아가면, 사랑으로 죽음을 맞이하겠구나. 사랑으로 살지 않기에, 죽음을 앞두고 허울만 높이겠구나.
2023.8.17.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