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집 1 - 큰 숲 속의 작은 집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석희 옮김 / 비룡소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015 초원의 집 



《초원의 집-첫 번째 이야기》

로라 잉걸스 와일더 글

김석희 옮김

비룡소

2005.09.25.



백 해쯤 앞서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나도 어느새 나이가 들었기에, 내가 경북 의성 멧골에서 보낸 어린 나날을 돌아보면 ‘쉰 해가 지난’ 일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하고 손가락을 꼽다가 ‘백 해가 훌쩍 지난 미국 어느 들판 이야기’가 그리 멀지않은, 어쩌면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는 조촐한 살림살이일 수 있겠다고 느낀다.


쉰 해쯤 앞서 멧골집 어린이는 멧자락을 타고 넘으면서 배움터를 다녔다. 멧골에서 사니까 늘 멧자락을 탈밖에 없었겠지만,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서 집이랑 배움터를 오간다는 생각부터 없었다. 다들 걸었다. 누구나 걸었다. 어린이라면 걷다가 달리고, 뛰고, 놀고, 웃고, 노래했다.


이제 나는 대구에서 살며 자동차를 몬다. 자동차를 몰면서 대구 시내를 지나다 보면, 길에서 걸어다니는 어린이를 보기 어렵다. 나도 우리 아이를 자동차에 태워서 배움터를 보냈다. 다들 아이들을 자동차에 태워서 오간다. 요즈음은 아이들끼리 걷고, 뛰고, 달리고, 놀고, 웃고, 노래할 틈이 없다고 할 만하다.


《초원의 집-첫 번째 이야기》를 읽었다. 내 어릴 적 의성 멧골자락 이야기를 글로 써도 되려나 부끄럽다고 여기던 무렵, 이웃님 한 분이 이 책을 읽어 보라고 알려주었다. 시골에서 나고자랐어도, 여느 시골보다 깊은 멧골에서 나고자랐어도, 아니 시골이나 멧골에서 나고자랐다면 더더욱 즐겁게 어릴 적 이야기를 글로 옮길 만하다고 귀띔하면서 이 책을 천천히 읽어 보라고 하더라.



《초원의 집》에 나오는 아이한테는 책조차 없다시피 한 나날이다. 텔레비전이나 손전화나 인터넷은 아예 어림조차 없던 나날이다. 맨손에 맨발로 들판을 휘젓는다. 나무를 타고 흙을 주물럭거린다. 어머니 아버지 곁에서 함께 집안일을 한다. 이러면서 어린 동생도 돌본다. 들판에 흙과 나무와 돌로 집을 지어서 살고, 우물을 파서 손수 길어서 마시고 씻는다.


내가 나고자라던 멧숲을 떠올려 본다. 그래, 쉰 해 앞서 그 멧숲에서는 별이 쏟아졌다. 오늘 살아가는 대구에서는 별이 아닌 전기로 밝힌 불빛이 쏟아진다. 아파트에서 누가 별을 바라볼까. 아니, 밤하늘에 별이 돋는지 마는지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있겠는가.


오늘날처럼 엘리베이터 소리라든지 자동차 소리에 물들지 않은, 새와 풀벌레와 바람과 비가 들려주는 노래에 덮인 《초원의 집》을 그려 본다. 우리도 쉰 해쯤 앞서 웬만한 시골아이랑 멧골아이는 이렇게 놀고 살았고 집안일을 함께했다.


그러고 보면 《초원의 집》 아이들은 들짐승을 쉽게 만난다. 아마 들짐승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겠지. 나도 쉰 해쯤 앞서 멧숲집에서 멧짐승을 쉽게 만났다. 그때 나는 멧짐승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려는 생각이 있었을까? 그저 무섭거나 두렵다고 여겼을까? 고작 쉰 해나 백 해 만에 시골살이도 숲살이도 잊히는 오늘날 같다. 이런 오늘날일수록 《초원의 집》은 더욱 빛나는 책 같다. 아니, 참으로 빛나는 책이다. 우리도 우리 어린 나날을 이렇게 글로 옮길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흙빛으로 놀던, 우리가 들빛으로 달리던, 우리가 바람빛으로 노래하던, 모든 하루는 고스란히 글이자 꿈일 테지.



2023.08.1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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