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양장)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작게 삶으로 013 바람 바다 숲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

1998.8.8.



2019년 1월에 《총, 균, 쇠》라는 책을 장만했다. 어느새 다섯 해가 지나는데, 그때에는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둘레에서 좋다고 말하는 책이면 덥석덥석 장만부터 했다. 나한테 맞는 글이 무엇인지 느긋이 살피지 않았고, 내가 글쓰기 첫걸음을 떼기에 어울리는 책을 천천히 헤아리지 않던 즈음이다. 창피한 소리인데, 누가 좋다고 하는 말을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무턱대고 사서 쌓아두었다. 집에 좋은 책을 잔뜩 갖추면 좋은 글도 척척 나오는 줄 여겼다.


2019년에는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며 무엇을 느끼고 배웠을까? 2023년 8월에 다시 읽으면서 생각해 보는데, 줄거리도 이야기도 도무지 안 떠오른다. 낯선 책을 처음 읽는 듯하다. 예전에 읽고서 귀퉁이를 접은 데를 들여다보아도, 띠종이를 붙인 대목을 다시 펴 보아도, 어쩐지 썩 와닿지 않는다.


다섯 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래, 다섯 해 사이에 두 딸이 제금을 나서 짝을 만났고, 막내가 군대를 다녀왔고, 막내가 군대에 있던 무렵 코로나가 번져 면회조차 갈 수 없었고, 막내는 휴가조차 나오지 못 했다. 곁님하고 꾸리는 가게도 힘이 들었고, 그래도 틈틈이 멧골이나 숲을 찾아가서 숨을 돌렸고, 책을 어찌저찌 두 자락 써내기도 했다.


‘인류 출현’이나 ‘문명 발전’이나 ‘정복과 정벌’이라는 말은 낯설다. ‘인류’라는 이름을 ‘총과 균과 쇠’ 세 가지로 풀어내어 들려주는 《총, 균, 쇠》인데, ‘인류 출현’이 아닌 ‘사람이 숲에서 태어남’이라든지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림을 지음’이라든지 ‘사람이 오순도순 아이를 낳고 마을을 이룸’이라는 눈길로 바라본다면 줄거리가 확 다르겠지. ‘총과 균과 쇠’가 아니라 ‘풀과 꽃과 나무’를 본다면, 또는 ‘해와 별과 바람과 비와 흙과 바다’를 본다면, 이야기도 아주 다르리라.


‘문명’이란 뭘까. 아이를 낳고서 밥을 지어서 함께 먹고, 옷을 지어서 함께 입고, 집을 지어서 함께 살아가는 길은 그냥그냥 ‘살림’이라 하는데, ‘문명’이나 ‘문화’ 같은 말을 들으면 어쩐지 너무 멀다.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에 사람이 살던 즈음 배를 처음으로 지어서 탔다고 하는데, 백인이 들어오면서 성냥이나 의약품이나 음료나 우산 같은 여러 가지가 들어왔다는데, 이런 여러 가지를 ‘화물’이라고 가리키는데, 글쓴이는 어느 흑인이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하고 물었다기에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화물’이나 ‘문명’이 아닌 ‘살림’이기에 서로 살리고 살아가며 사랑했으리라 본다. 그냥 그렇게 느낀다.


누가 누구보다 똑똑할 수는 없지 않을까? 원시인이나 유럽인 가운데 누가 더 똑똑하다고 갈라야 할까?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는 학교를 다녀서 집안일이나 논밭일을 배우거나 익히지는 않았다. 먼 옛날부터 어머니가 어머니한테 집안일을 물려주었을 테고, 아버지가 아버지한테 논밭일을 물려주었겠지.


《총, 균, 쇠》에도 나오지만, 텔레비전에 라디오에 기울어버린 유럽인처럼 우리도 영상과 책과 학교에 기울어버렸다. 우리도 예전에는 원주민처럼 마을사람하고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집에서 엄마아빠 할매할배랑 이야기하고, 또 마을에서 동무랑 언니오빠랑 동생하고 이야기하면서 서로 배우고 가르쳤지 싶다.


틀림없이 총을 앞세워서 싸워 이길 만하다. 아무래도 균이 퍼져서 돌림앓이로 떼죽음을 맞이할 만하다. 이제 오늘날은 쇠로 높이높이 올린 문명으로 자동차를 달리고 아파트가 높고, 또 전쟁무기도 쇠로 만든다.


그런데 글을 몰라도 논밭을 짓는다. 글을 몰라도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줄 안다. 글을 몰라도 새하고 이웃을 하고, 풀꽃이나 나무에 이름을 붙인다. 글을 몰라도 마음껏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편다.


스스로 지어서 누릴 적에는, 몸이 조금 아프면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며칠 누우면 깨끗하게 나았다. 먹는샘물조차 사다가 마시는 요즈음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서 약을 타먹는다. 예전에는 약은커녕 과자나 외식도 없었다. 비료나 농약이 없던 때에는, 또 비닐조차 없던 때에는, 누구나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잘살았다. 요새는 돈만 내면 다 사다가 쓸 수 있지만, 너무 쉽게 앓고 죽고 다치고, 또 싸우고 겨룬다.


이제는 하늘길도 바닷길도 열려, 돈이 있으면 자유롭게 여행을 한다. 바람도 바다도 섞인다. 어디로든 홀가분히 다닌다지만, 우리는 숲을 멀리한 채 헤매는 하루인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땅에서 거두는 살림을 먹지 않고, 우리가 먹은 것을 우리 삶자리에 돌려주지 않는다. 돌개바람은 왜 휩쓸까? 우리가 어리석으니 씻어 주려는 마음이지 않을까?


돌개바람을 놓고서 역사나 문명을 돌아본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총과 균과 쇠가 아닌, 바람과 바다와 숲으로 우리 스스로 돌아본다면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글보다는 말이고, 말보다는 마음이고, 마음은 바로 우리 오늘인 삶이지 싶다.



2023.08.10.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