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쯤 침대에 누워 전자책을 읽는다. 자기 전 패턴인데 그럴 때면 고양이는 침대 바로 옆 창틀에 놓아둔 원목 받침대에 자리 잡고 바깥 구경을 하거나 나를 구경한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녀석과 눈높이가 딱 맞아서 간혹 눈이 마주치곤 하는데 솔직히 이 녀석 무슨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날도 책을 보다 고양이 한번 보다, 창밖을 보다 나를 한번보다 그러고 있었다. 자야지 싶어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는데, 다른 때보다 묘하게 은은한 빛이 눈꺼풀 너머로 감지됐다. 뭐지?


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둥근 달이 보인다. 음력 보름이 아니니 보름달은 아닐 텐데 왜 하필 오늘 내 감각을 자극했을까? 고양이는 아직도 창틀에 있다. 나와 달리 달엔 관심도 없다. 대각선 방향에 있는 아파트 불빛 사이 움직임과, 간혹 외부 창에 들러붙는 벌레와, 배수구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시커먼 녀석, 낭만이라곤 몸 구석 어디에도 없는 모양이다. 달을 올려보다 문득 소원을 빌어본다. 우리 어둑어둑한 고양이, 착하게 건강하게 살다가 고양이별로 가게 해주세요. 고양이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더니 나를 가로질러 자기 잠자리를 찾아간다. 야, 너도 소원 빌고 가라. 퉁, 퉁, 퉁. 발판을 순서대로 밟고서 삼층장 꼭대기로 올라간다. 발판 밟는 소리가 흥, 칫, 뿡으로 들리는 건 내 착각이었을 거다.


다시 달을 본다. 생각해 보니 보름달이 아니라 내가 빈 소원은 안 들어줄 거 같다. 이렇게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으로 둥글게 차오르다가 완벽한 둥근 달이 될 때 그 순간 도달한 온전한 문장만이 달의 기운을 다 가져가는 건지도 모른다. 바로 그다음에 도달한 소원으로 둥근 달이 터지면서 기운을 독식한 문장이 세상에 뛰쳐나와 그 대상을 찾아가는 걸 수도. 적어도 누군가 한 명은 한 달에 한 번 소원을 이루겠네. 치사하게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만 들어주려나? 흥, 칫, 뿡이다. 꿈속에서 커다란 고양이나 되어서 저 녀석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봐야지.


꼬리말) 8월 31일에 쓴 글인데 최근 쓴 글들에 이래저래 밀리다 이제야 올린다. 어제는 반가운 사람들을 보느라 달을 볼 생각을 못했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달이 안 보일 수도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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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서 고양이 화장실 치우고 까까를 챙겨준 후 소파에 드러눕는다. 솔솔 부는 선풍기 바람에 잠이 기웃거리다 스쳐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에 놀라 그대로 멈칫한다. 고양이가 캣타워 중간쯤 선반에 뛰어올라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중이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까까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


저기 앉은 고양이 뒤태는 영락없는 코끼리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꼬리가 아니고 코를 흔들흔들. 나도 모르게 동요 한 구절을 마음속으로 흥얼거린다. 고양이를 보니 이번엔 자세를 바꿔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 노랫소리가 들렸나? 고양이, 화장실 갔다 와라. 이따 아침에 괜히 뛰어다니면서 나 깨우지 말고. 속으로 생각한 말이었는데, 알아들었는지 툭 뛰어내리더니 화장실로 향한다. 착한 녀석. 귀신 같은 녀석.


자세를 돌려 옆으로 눕자, 소파의 등받이가 바로 코앞에 있다. 밝은 베이지색. 내가 밤마다 누워 자는 자리는 어두운 베이지색으로 변하지 않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침이라도 흘리면 얼룩 생기지 않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내 발이 닿는 부분은 까매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고양이가 캣타워에서 소파로 뛰어내리면서 딛는 부분은 벌써 거뭇거뭇해졌구나. 참, 걱정도 팔자다. 이렇게 걱정을 머리에 이고 몸에 덮고 등에 지고 살아서 살이 안 찌는 건지도 몰라. 고양이가 야옹 하고 크게 한 번 부른다. 어이구, 쉬야 했어. 자알 했어. 내가 깨어있는데 자기가 화장실 다녀온 걸 알은체해주지 않으면 꼭 저렇게 한 번씩 광고를 한다. 낮에는 고양이와 아저씨의 한바탕 뜀박질이 있었겠지만, 새벽엔 이 정도로 마무리.


다시 똑바로 누워 자세를 잡는데 고양이가 캣타워 상단 아크릴 해먹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한 다리는 모서리에 걸쳐서 바깥쪽으로 뺀다. 건방진 녀석. 내가 잘못 교육을 했어. 어디 가서 욕먹지 말아야 하는데. 또 무슨 걱정거리가 있던가? 멈칫거리던 잠이 고양이를 피해 다시 달려든다.


걱정은 내일 아침에 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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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무것도 하기 싫어 마루에 벌렁 드러누워 창밖을 보면 곤충들이 근처에 머물다 갈 때가 있다. 매년 찾아오는 것도 있는가 하면, 올해 처음 그 모습을 드러낸 존재도 있다. 앞으로 지나가거나 배회하는 존재들을 제외하고 꼽아보자면, 일단 나방류. AI에 따르면 흰띠명나방이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에 짙은 밤색. 나방은 야행성 아닌가 싶지만 이 종은 낮에도 잘 돌아다닌단다. 워낙 자주 나타나다 보니, 이젠 고양이조차도 관심 밖이다. 간혹 창에 붙어 조금씩 움직일 때만 시선을 주지 바로 눈앞에 있어도 그 흔한 냥펀치조차 날리지 않는다.


두 번째 손님은 노린재. AI에게 물어보니 소나무허리노린재라고 한다. 색깔은 낙엽 색깔. 소나무의 즙을 빨아먹고 산다는데 근처 산에서 날아온 듯하다. 한동안은 고양이 채터링의 주 대상이었으나 먹는 거 빼곤 관심의 유효기간이 며칠에 불과한 고양이 덕에 요즘은 편안히 방충망에 붙어 쉬었다 간다. 나 역시 길바닥 낙엽 보듯 무시하고 있다.


세 번째 손님은 말벌. 화려한 색에 한 체급 하는 데다 절대 가만있지 않은 움직임으로 고양이의 열렬한 관심 대상이다. 다만 뚫어지게 쳐다볼 뿐 채터링을 하거나 섣불리 냥펀치를 날리지 않는다. 나 역시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 간혹 윗집 에어컨 실외기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움직임을 보여서 잔뜩 긴장 중이다. 벌집 같은 거 만들 생각 마라. 119에 신고할 거다.


마지막 열외로 딱 한 번 등장해서 기겁하게 했던 사마귀. 방충망 위쪽에 초록색 무언가가 강렬한 날카로움을 뽐내고 있길래 다가갔더니 몸길이가 15cm도 넘을 거 같은 사마귀 한 마리였다. 얼마 전 TV에서 절에 사는 새끼 고양이가 자기 얼굴 길이의 사마귀를 우걱우걱 씹어 먹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우리 집 고양이는 캣타워에서 자는 중이다. 저 녀석은 물리적, 물질적으론 도무지 도움이 안 된다. 막대기를 하나 들고 와 톡톡 건드렸더니 앞발을 방충망 안으로 쑥 집어넣는다. 아니 아니, 그건 반칙이지. 손님, 무기를 집안에 들이밀면 안 되죠! 나, 가서 고양이 집어 들고 온다! 그럼, 손님 잡아먹을지도 몰라...요! 비현실적으로 작은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긴 다리로 성큼성큼 한쪽으로 이동한다. 어우 야, 그 덩치, 그 모양새로 그렇게 움직이면 무섭잖아요! 방충망 안쪽에서 다시 막대기로 툭툭 건드린다. 빨리 떨어져라. 막대기와 앞다리의 몇 번에 걸친 티키타카 후 사마귀는 자리를 뜬다. 날개를 퍼덕거리며 바람을 타고 건물 옆으로 빨려 들듯 사라지는 사마귀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 난리를 쳤건만 고양이는 캣타워에서 눈도 뜨지 않고 잔다. 이렇게 둔한 녀석이 아닌데. 의심 가득한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지만, 고양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 자슥 이거...


꼬리말) 한동안 창문을 찾아오는 곤충들이 없었는데 요며칠 간혹 한 마리씩 때늦은 방문을 하곤 한다. 질척거리는 여름에 곤충도 헷갈려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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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씻는다. 따뜻한 물이 몸을 따라 흘러내리는 게 반갑고 편안하다. 얼마 전만 해도 시원한 기운이 몸을 감싸지 않으면 씻는 거 같지 않았는데. 물의 온기에 몸을 맡기다 엄지손톱에서 전해지는 쓰라림에 낯을 살짝 찌푸린다. 낮에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뜯을 일이 있었는데 손가락이 미끄러지면서 왼손 검지가 오른손 엄지 끝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면서 엄지손톱 한 귀퉁이가 살짝 들렸던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었는데 물이 들어가면서 통증을 되살렸다. 되살린 건 통증뿐만이 아니다. 그때의 서두름과 심지어 이러다가 다칠 텐데 하는 조바심까지. 알면서 다쳤으니 내가 멍청한 거지. 오른손을 흘러나오는 물 밖으로 빼고 다시 평온함을 찾아본다. 하지만. 어색하게 든 오른손은 따뜻한 물의 온기 밖에서 과거의 나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바보.


샤워를 마치고 나와 바닥에 앉는다. 따뜻한 물을 너무 오랫동안 맞았나? 덥다 정도의 느낌은 아닌데 몸에서 살짝 열기가 느껴진다. 선선한 공기가 내 피부를 공략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런, 샤워를 하면서 여름을 뒤집어쓰고 나오다니. 정말 쪼잔하게 이런 식으로 질척거리기냐? 쿨하게 떠나라. 나중에 가을한테 엉덩이 세게 걷어차이고 후회하지 말고. 하긴, 아쉬울 만도 하겠다. 작년은 9월까지 더워서 에어컨을 얼마간 사용했던 걸로 기억한다. 올해는 더위가 빨리 끝나긴 했다. 왜 서둘렀을까? 아니지. 내가 지금 남의 사정까지 챙길 때가 아니다. 이번 여름에 서두르고 조급해서 낭패를 본 건 나였으니까. 아우 씨, 주식. 마룻바닥의 시원함이 엉덩이부터 조금씩 열을 식히다가 주식에서 촉발된 열기에 밀려난다. 후끈. 오른쪽 엄지손톱의 얼얼함이 계속 신경 쓰인다. 난 실수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기는 하는 걸까? 이 나이 먹고도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나? 바보. 빨리 가라, 여름아. 추석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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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물그릇에 담가 놓을 때가 종종 있다. 어렸을 땐 꽤 자주 그랬고, 요즘은 어쩌다 한 번씩.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내 관심을 끌려고. 내가 집에 없을 때,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저런 행동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물그릇 주변에 끈 같은 게 있으면 그걸 물어서 물그릇에 넣거나, 놀다가도 물그릇 주변을 지나갈 때면 간혹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걸 저기다 처넣을까? 고양이 마음을 어떻게 알겠나? ***


(아깽이 시절 그냥 커다란 유리 물그릇일 때)


오오, 빛이 반사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저 삐까번쩍함! 우와, 멋지다! 흔들흔들, 번쩍번쩍. 혹시 저것이 신 앞에 떠 놓고 소원을 빌 때 썼다던 정화수(정안수)라는 것인가? 잠깐, 그렇다면! (두리번, 후다닥)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너구리 꼬리 장난감인데... 이거 줄 테니까 신님아, 내 소원 좀 들어주라. 야웅, 야웅... 야웅, 야웅...


“야, 너 그걸 왜 또 담그는 건데! 물 방금 갈았는데 또 씻어야 하잖아!”


아 씨, 어디 있다 귀신같이 나타나가지고.


(자동 급수기로 바꾼 후)


물이, 물이 졸졸졸 흘러나오는데?! 아니, 어디서? 주변에 강이나 시냇물도 없는데? 오, 이것은 신이 축복한 물줄기인가? 그렇다면! (두리번, 후다닥) 이거, 내가 아직도 제일 좋아하는 너구리 꼬리 장난감인데... 너무 오래 가지고 놀아서 반 토막뿐이지만, 이거 줄 테니까 신님아, 내 소원 꼭 들어주라. 야웅, 야웅... 야웅, 야웅...


(현관문 여는 소리, 일 끝내고 돌아온 아저씨 등장) “야 인마, 또야! 아니, 왜 그러는 건데? 물통 또 씻어야 하잖아! 니가 닦아, 이눔의 자슥아!”


아이, 참, 어떻게 알고 들어왔대? 귀신이네, 귀신.


(그날 밤)


아저씨는 침대에 누웠지? OK. 그렇다면... (슬금슬금) 너구리 꼬리를 이렇게 놓고. 신님아, 이번에는 동작 좀 빨리빨리 하자, 알겠지?


야웅, 야웅...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먹을 것도 팍팍 안 주는 저 아저씨...) 야웅, 야웅... (살 좀 찌고 넉넉해서 마음이 여유로운 새 아저씨로 바꿔 주세요...) 응? (고개만 빼꼼 내밀고 쳐다보는 아저씨와 눈 마주침) 으악!


“이 개눔의...”


(후다닥. 소파 밑으로 피신) 진짜... 귀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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