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마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을 거다. 어른 걸음으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그 또래들 몇몇이 어울려 간 적이 있었다. 항상 엄마와 함께 가던 시장을 넘어서 한참 먼 거리까지 분위기에 휩쓸려 몰려갔다. 그리곤 덜컥 겁에 질렸다. 여기가 어디지? 놀이가 끝날 때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불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일행 중 두 살 많던 사촌 형은 집으로 가자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집들이 연이어 있다가도 느닷없이 커다란 공터가 나오고 빈집처럼 보이는 폐가도 보였다. 이윽고 등장한 낯익은 환경에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그 먼 길을 안내한 형이 대단해 보였다. 좁디좁은 내 삶의 공간, 그 너머 미지의 불안한 영역. 그게 처음으로 인지한 내가 살던 동네였다.


20대, 재수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내 기본 걸음은 무척이나 빠른 편이었다. 길에서 걸을 때면 내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제치면서 걸었다. 그래서 누군가 그랬다. 길에서 동계 스포츠 종목인 쇼트트랙하냐고. 길을 걷는 걸 좋아했다. 종로에서 영화를 보고 집까지 걸어오기도 했고, 청계천 세운상가에 들러 게임 CD를 사고 집으로 무작정 걷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 걸음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종로에선 ‘얼굴에서 밝은 기운이 뻗어 나오네요.’라며 접근하는 일명 ‘도를 아십니까?’ 아, 네. 후다닥. 청계천에선 ‘좋은 거 있는데 한번 볼래요?’라며 밀착하는 불법 비디오, 잡지 판매상들. 아니요, 아니요. 허겁지겁. 도시는 자기 민낯을 그렇게 불쑥 들이밀곤 했다.


30대의 길은 내겐 모순이었다. 걷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시간을 늦추기 위해서 길을 걸었다. 아니, 헤맸다. 10대 후반부터 매캐한 냄새를 풍기던 삶은, 20대에 불구덩이를 선사하더니 30대엔 모든 것을 그을렸다. 집에 가기 싫어서 어떻게든 걷는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그곳에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있었기에, 그 존재를 혼자 둘 수 없었기에 걸음은 무척이나 빨랐다. 시간을 늦추고 싶지만 빨리 걸어야만 했던 길은 그 모습 그대로 내 삶이었다. 다 포기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버릴 수 없었던 시간들. 이 시기의 도시는 내겐 공간이 아니었다.


40대에 이르러서야 난 소원을 이뤘다. 내 삶은 내 뜻대로 하겠다는. 거무튀튀한 그을음을 벗겨내기 시작했고, 의도적으로 걸음의 속도를 떨어뜨렸다. 지쳐버린 심신으로 시야는 여전히 좁았지만, 시간 속에서 포효하며 떠돌던 생각들을 공간으로 가라앉힐 수 있었다. 현재의 나를 차분히 바라보게 되면서 미래를 기대하고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고양이가 들어왔다. 뒤틀리던 시공간을, 흔들리는 도시를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 수 있게 됐다.


20년 넘게 이 집에서 살았지만, 집 말고는 아는 게 없었다.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조선의 궁들이 있다는 것을, 뒷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있다는 것을, 저만치 앞산에는 한양도성이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일을 놓아버린 50대가 되어서야 알았다. 산길을 헤매고 골목길을 누볐다. 엉뚱한 곳으로 내려와 다시 산으로 들어가고, 지붕이 내 키보다 낮은 집들 사이를 허둥지둥 빠져나오기도 했다. 아파트마저도 그 느낌이 달랐다. 사람들이 일하러 빠져나가 인기척이 없는 세련된 유령도시 분위기의 아파트부터, 힘겨워 벤치에 앉아계신 노인분들 너머로 어린이집의 고함소리가 흘러넘치는 아파트까지. 내가 보고자 했더니 도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면모를 드러내는 중이다. 아마도 다 못 읽겠지만, 50년을 살고 나서야 차분하게 도시를 읽어보려 한다.


꼬리말) 이 글의 제목은 AI가 내게 제시했던 문장이다. 간혹 이렇게 글을 써볼까 한다. 떠오르는 문장 아무거나 하나 말해보라고 AI에게 부탁한 후, 그 문장에서 비롯된 내 생각을 표현하는 식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