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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일주일 ㅣ 트리플 8
최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9월
평점 :
"나는 매일매일 확인했다. 돈을 내는 자의 무례와 경멸을. 수치심까지 짓뭉개는 뻔뻔함을. 더 많은 것을 손에 쥐고서도 불공평이나 역차별이란 단어를 무기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을. 나는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했고 더 알아야 할 것들이 두려웠다."
- <일주일> 중 <일요일>에서
2010년쯤 됐을까? 남자 고등학생을 주말 오후 알바로 채용한 적이 있다. 용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그 나이 또래 남자아이들처럼 어른과는 대화보단 대답을 했고, 무덤덤한 듯 조금은 뚱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이었다. 한 달이나 일했을까. 손님과 마찰이 생겼다. 기억은 안 나지만 사소한 문제였다. 손님이 본사로 클레임을 제기했고, 내게로 넘어와서 CCTV를 확인해 보니 근무자의 불찰이 분명했다. 아마 그 자리에서 근무자가 사과했다면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근무자는 사과 대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선택을 했다.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잘못을 인정했고, 고객이 찾아오면 함께 사과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다시 연락해 온 고객은 진정한 사과를 바란다고 했다. 근무자가 무슨 생각을 하며 일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어서 골머리를 앓던 나는 이 고객의 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정한' 사과라니. 배를 할복하는 일본 사무라이의 이미지가 떠올라 순간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에게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얘긴가. 이 문제로 몇 주를 끌었던 거 같다. 결국 나는 그 고객과 언성을 높여야만 했고, 결과적으로 서로 보지 않는 걸로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오래전 일이라 완벽한 기억은 아니다. 아마 저 근무자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뒀지 싶다. 내가 사람을 새로 구할 때까지만, 또는 앞으로 2주 후까지만 일해달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해당 고객이 매장 근처에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저 일을 겪으면서 많이 답답했다. 나와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를 내 경험으론 유추할 수가 없어서. 청소년에게 필요 이상의 책임을 요구하는 어른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최진영 작가의 <일주일>은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세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너무 전형적인 틀에 가두는 게 아닐까 하는 작가의 걱정처럼 각 캐릭터는 무미건조한 듯하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무미건조하면서도 개별성이 있는 존재 아니던가? 문제라면,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개성이나 개별성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는 게 아니라 경쟁의 차별화 수단으로만 파악한다는 점. 그래서 어느 위치에 서든 아이들은 차별화를 위해 발버둥을 쳐야만 한다.
"돈과 명예 말고, 우리가, 또 다른 가치를 가져야만 해? 사랑, 희생, 정의, 존엄 같은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해버리면 삶이 복잡하게 꼬일 것만 같았다. 그런 가치를 추구하느니 조롱하는 편이 쉬웠다."
- <일주일> 중 <수요일>에서
어쩌다가 우리는 그 발버둥의 결과만 가지고 사람을 판별하게 됐을까? 왜 우리는 수직으로 늘어선 위치에서 벗어나려 하는 시도를 불손하다고 여기는 걸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아이들이 원하는걸, 찾으려는 걸 막아가면서 이 숨 막히는 사회의 축소판에 그들을 욱여넣고 있는 걸까? 온통 질문뿐이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게 편하니까. 답도, 원인도 내심 짐작되지만 해결할 순 없으니까. 흐지부지.
난 그때 그 아이에게 더 물어봐야 했을까? 참견이나 간섭이라 여겼을 것이다. 고맘때의 나도 그랬었다. 필요한 건 배려와 공감과 기다림과... 이런, 숨 막힌다. 어쩌겠나. 어른들이 이렇게 만들어놓은 세상이니 모두가 함께 숨 막힐밖에. 같이 숨이라도 막혀줄 수밖에.
"당신이 거기 잘 있으면 좋겠어."
- <일주일> 중 <사사롭고 지극한 안부를 전해요>에서
갑갑한 <일요일>에서 시작해 충격적인 <수요일>을 거쳐 희망적인 <금요일>을 지나면 작가의 에세이가 나온다. 언제나 그렇듯 작가는 안부를 전하고, 그 안부에 깃든 걱정과 잔잔한 고집을 뒤로하면, 진짜 청소년의 에세이가 버티고 있다. 움켜쥔 그 희망에 맘을 담뿍 담아 응원을 보낸다.
"짧은 생에 다 품기엔 무겁다 싶을 때마다 넓게 보고 많이 사랑할 것이다. 쫓기는 삶이 안정될 때까지 가끔은 도망치면서 살길. 이 결심에 죄책감은 느끼지 않기로 했다."
- <일주일> 중 <지금 도망칠 준비가 되면>, 박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