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 수리로 발생하는 소음이 간간이 들린다. 이제 큰 소음은 없고,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자잘한 소리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 정도도 불안한 모양이다. 소음을 쫓아 집 내부를 천천히 살피던 녀석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침대 머리맡 아래쪽에 둔 하늘색 여름용 방석 위에 자리 잡더니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여기서 잘 거니까 옆으로 오라는 의미. 위층이 수리하면서 생긴 생활 방식인데 내가 근처에 자리 잡지 않고 나오면 녀석도 따라 나온다. 그래서 책과 핸드폰을 들고 녀석의 곁으로 간다.
바닥에 앉아 침대에 기댄 채 책을 펼친다. <도시의 승리>. 2011년에 나온 책이니까 무려 15년 전이다. 알라딘에 읽고 싶었던 책으로 저장해뒀다가 이제야 읽는 중이다. 알라딘에 저장해둔 책을 생각하면 언제나 한숨이 앞선다. 죽기 전에 다 못 읽을 거야. 먹고 사는 게 뭐라고. 십몇 년을 죽지 않기 위해 먹고, 죽지 않기 위해 운동하고, 죽지 않기 위해 잤던 거 같다. '살려고'가 아닌 '죽지 않기 위해'. 옆을 보니 고양이는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그땐 왜 이런 평화로움을 느껴보지 못했을까? 하늘색 방석 위에 짙은 회색빛 고양이. 그리고 책을 보며 내용보단 잡념에 빠져든 아저씨.
아, 그런데 이러고 앉아서 책을 보면 허리가 아프다. 엉덩이도 배기고. 평화가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하는구나. 평화가 먹고 살 걱정을 없애주지도 못하겠지? 책을 덮고 벌렁 드러누워 핸드폰에 있는 전자책을 연다. <호라이즌>. 2019년 출간된 책이다. 도대체 시간을 따라잡질 못하누. 한숨을 쉬다 기척이 느껴져 옆을 보다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발라당. 다짜고짜 애교를 투척한다. 잠정신일 텐데. 너 진짜 직업의식 투철하구나. 볼때기 몇 번 쓰다듬어주니 또 잔다. 이 녀석, 나를 알아보고 애교를 부린 걸까? 의심의 눈길을 던지다 다시 핸드폰에 집중한다. 이러고 핸드폰 보고 있으면 정말 게을러 보이던데. 읽으려는 책은 뒷전이고 온갖 생각의 단편만 둥둥 떠다닌다. 조각을 이어 붙여야 하는데, 어째 돌멩이가 날아들어 자꾸 파문이 인다. 고양이 너냐? 돌멩이 던지는 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