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었다. 다행히 챙겨주는 사람이 많아서 전날부터 바빴다. 일단 점심 약속부터 시작. 지하철이 없는 곳이라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가야만 했다. 거리는 멀지 않아서 크게 걱정하진 않았는데, 두 번째 버스에 올라탄 순간 훅 밀고 들어오는 냄새. 대개 오래된 시외버스에서 많이 나는 냄새다. 기름 냄새 같기도 하고. 문제는 이 냄새를 맡으면 100% 멀미한다는 점. 금방 내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 첫 약속을 수행한 후, 큰누나 집으로 출동. 미역국을 끓여놨으니 가져가야 한다. 역시 짧게 버스 탑승. 가벼운 잽 두 방쯤은 버틸 수 있다. 과일 먹고 잠깐 수다 떨다 택시 타고 집으로. 승용차라고 다를 거 없다. 내 멀미는 앞을 보고 타는 모든 탈 것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묵직한 스트레이트 한 방. 어질. 세 번째 약속은 늦은 저녁이라 한참 쉬었다 지하철 탑승. 지하철은 아무렇지 않다. 옆으로 가니까. 나, 전생에 게였을까? 그 후로 친구 차를 타고 두 번 이동. 원투. 스트레이트 펀치가 이어지지 않아서 KO는 면했다.


다음 날. 또 점심 약속. 지하철로 이동이라 괜찮다.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느긋하게 얘기를 나눈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누군가에 대한 불평이 튀어나온다. 왜 자기가 어질러 놓은 걸 치우질 않냐고요! 누구보고 치우라고?! 얘길 했더니 자기는 가르치러 왔지, 치우러 온 게 아니라나? 자유엔 책임이 뒤따르고 권리엔 의무가 함께 하지만, 어느샌가 그건 교과서에나 나올 얘기에 불과해졌다. 현실은, 돈을 많이 준다면, 책임을 생각해 보고 의무도 고려해 보겠다 정도. 장사할 때가 생각났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4대 보험. 간신히 지킬 것만 지켜서 월급을 지급했었다. ‘저 내일부터 못 나와요.’ 이런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더라. 받아 간 그 월급이 내 월수입보다 더 많았었는데. 펀치가 날아오진 않았지만, 무언가의 현란한 움직임에 내 스텝이 꼬였다. 비틀.


선거가 어떻게 되어가나 궁금해서 뉴스를 보다가 선관위가 큰 사고를 친 걸 알았다. 일 참 빌어먹게도 잘하는구나. TV 화면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져간다. 소동들. 세상을 휩쓰는 각종 분노와 혐오들. 폭주 기관차가 되지 않으려면, 누워서 침 뱉지 않으려면 자제와 성찰이 필요하겠지만 우린 그렇게 하고 있을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생각도 멈췄다. 그런데 뜬금없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가 떠올랐다. 배트맨과 조커. 배트맨은, 사람은 조그만 희망을 품을 여지만 있다면, 앞길을 비춰줄 한 줄기 빛만 있다면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는 존재라 믿는다. 반면, 조커는, 사람은 기회만 되면 상대를 배신하고 죽이기도 하는 둥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는 존재라 믿는다. 하나는 질서고, 다른 하나는 혼돈이다. 둘은 끝까지 싸울 거고, 같이 있음으로 해서 완벽해진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고개를 숙인 채 방심하다가 날아 들어오는 어퍼컷에 걸렸다.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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