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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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8편의 단편이 있다. 서평과 작가 인터뷰도 실려있고. 딛고 선 현실이 어떻든 주요 인물들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벽에 부딪히겠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의 장편들보단 덜 매운 맛이다. 순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쓰게 될 것

 

모두 지난 일이다. 그리고 반복될 일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이해한다.

이해한다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 세상을 받아들이듯.

그러므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본문 중)

 

전쟁에 관한 얘기다. 전쟁을 세 번째 겪은 할머니는 신과 인간을 믿었다. 전쟁을 두 번째 겪은 엄마는 신과 인간을 믿지 않았지만,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다. 전쟁을 처음 겪은 나는 싸우겠다고 한다. 살아남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총을 쓰는 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전쟁이 빼앗아 간 가족, 전쟁이 말살해 버린 마음, 전쟁이 키워낸 살겠다는 의지. 그렇다면 할머니와 엄마와 달리 내가 간직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유진

 

난 언제 어른이 되었을까? 어른이란 무엇일까?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어른이 되는 걸까? 타인의 기준에 휩쓸리지 않고 내 기준에 맞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어른이 되는 걸까? 차이와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땐 어른이라 할 수 있나? 모르겠다. 그냥, , 죽기 전까지 애늙은이로 살 수도 있을 거 같다. 에라디야~

 

ㅊㅅㄹ

 

내 첫사랑이자 짝사랑은 국민학교 초등학교 5학년 때. 6학년 선배였는데, 엄밀히 말하면 사랑이란 감정보단 동경하는 마음이 더 컸다. 내겐 없는 자유로움이 있었거든. 그래서 같이 있고 같이 얘기하면 즐겁고 설레던 그런 기억들. 그런데 얼마 전 사진첩을 정리하다 문득 이 시기가 떠올라 사진을 찾아봤는데. 세상에나, 내가 기억하던 얼굴과 다른 학생이 사진에 떡하니 있는 거다. 누구신지? 그러다 깨달았다. 사진은 그 시기에 멈춰 있지만 내가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놓아버릴 때까지 그 선배는 내 생각 속에서 같이 자랐음을. 기억이란 참.

 

썸머의 마술과학

 

예측이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 내가 국민학교(에잇!) 시절에는 화석연료의 고갈을 걱정했었다. 가까운 미래 어느 시점에는 석유를 다 꺼내 써서 에너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거라고. 그게 40년쯤 전이다. 예측은 빗나갔다. 기술이 발전해서 석유를 악착같이 뽑아 쓸 수 있게 됐고, 에너지 효율도 좋아졌으니까. 차라리 그 예측이 맞았으면 더 좋았을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미래는 사람들로 하여금 복권을 긁게 했다. 지금은 이렇지만 신기술이 해결해 줄 거다. 한방. 대박. 내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나중에 다 잘될 거라는 신기루 같은 믿음.

 

아빠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는 계속 나를 여름이라고 부른다. 내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만이 나를 썸머라고 부른다.

(본문 중에서)

 

한술 더 떠 내가 필요한 얘기만 듣는 세상. 세상이 둘로 갈려서 걱정스럽다. 세상이 사분오열돼서 중구난방이니 걱정스럽다. 정말? 정말 그걸 걱정해야 하나? 아니다. 지구에 발 딛고 사는 사람 대가리 수 머릿수가 몇인데 그걸 걱정이라고 하나. 진짜 걱정은 타협과 절충을 모르고 대화는 내 말만 한다는 데 있다. 우린 오늘도 복권을 긁고 있다. 우린 내일도 투기에 가까운 복권을 긁을 것이다. 아직 사회에 제대로 발걸음을 내딛지도 못한 세대의 생존을 대금으로 치르면서. 대박, 한방이면 다 해결된다. 안 되면? 지 알 바 아니란다. 옘병.

 

디너코스, 차고 뜨거운

 

가족이란 참 묘하다. 닮은 듯 닮지 않고, 벗어나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 반작용으로 인해 서로 완전히 반대 성향이 되어버린 형제자매들이 있는가 하면, 치를 떨며 다른 어른이 되겠다 발버둥 쳤건만 어느새 부모의 뒤를 밟고 있는 자녀들이 있다. 내가 원했던 관계가 아니건만 나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연들. 나를 위하는 마음과 상관없이 나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이면서도 내가 아니길 바라는 굴레.

 

인간의 쓸모, 홈 스위트 홈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송이 하나.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신은 그런 것에 관심 없겠지만.

(본문 중에서)

 

내 미래가 높은 확률로 어떤 결과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면 난 어떤 태도로 내 삶을 대할까? 흘러가는 시간에 그저 올라탈 수도 있겠고, 내 의지와 노력으로 순간순간에 색조를 입힐 수도 있겠다. 뭐가 됐든, 다만,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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