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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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그 시절 핸드폰이 있었던가? 그것까진 기억나진 않지만, 문득 버스 안 승객들을 쭉 둘러봤던 건 기억 난다. 나이도 성별도 다른 다양한 승객들이 있었고 유일하게 공통적인 건 대부분 무표정한 모습이었다는 점.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사람들도 미쳐버릴 만큼 떨쳐내지 못할 고민거리를 안고 살아가는 걸까? 그리고 그 순간이 마치 스냅사진처럼 내 기억에 남았다. 아마도 자기연민과 좌절감이 뒤엉키며 강렬한 감정 상태에 휘말렸고, 동시에 나만 고립된 듯한 외로움과 이질감이 주변과 나를 격리함으로써 그게 가능했을 것이다. 주요 사건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내 20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기억이다. 50이 넘은 지금도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내 삶의 일부.

 

내 삶은 실패한 걸까? 되돌리고 싶지 않은 삶의 영역이 있다는 건 실패란 이름을 붙일 확률이 높은 걸까? 난 지금 편안하다. 내가 원치 않는 만남을 해야 할 필요도 없고, 하루가 멀다 하게 남을 신경 쓸 이유도 없다.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함 없는 삶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성공한 삶일까? 그런데 질문이 있다면 꼭 답이 있어야 하나? 성공이든 실패든 그에 관한 판단이나 답은, 특히나 삶에 있어서는 더욱더 얽매일 필요가 없지 싶기도 하다.

 

윌리엄 스토너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아버지의 결정으로 농과대학에 입학하지만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게 된다. 일생을 같이할 친구들을 알게 되고, 일생을 함께할 여인을 만나서 결혼한다. 때론 이른 죽음이 인연 사이에 끼어들고, 뒤늦은 사랑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향한 적개심과 맞닥뜨릴 때도, 아내와 딸이 행복해 보이지 않을 때도, 심지어 사랑에 빠졌을 때도 그는 무기력했다. 그는 인내하며 버틸 줄 알았고, 때론 뜻하지 않게 꿈틀했으며, 심지어 사랑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렇게 살다가 늙고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게 삶을 살다가 세상을 통과한다. 나처럼, 우리처럼, 그 모든 사람처럼.

 

삶을 성공이나 실패, 행복이나 불행이 아닌 그 자체로 바라봤으면 한다. 삶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스토너가 그랬듯이 나 역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역시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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