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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저항의 한 방식, 페멘
페멘 지음, 갈리아 아케르망 엮음, 김수진 옮김 / 디오네 / 2014년 6월
평점 :
처음에는 막연한 호기심 뿐이었다. 뉴스에 많은 관심이 없는 나로서도 가슴을 벗어던지는 여인들의 시위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원래 외국인들은 특이하니까. 그냥 그런 해외토픽 중 하나이겠거니 그렇게 넘겼다. 그러다 다시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해 경외감을 느꼈다. 아무리 외국이라지만 여성이 가슴을 드러낸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떤 일이 이들을 이렇게까지 용기있게 행동하게 했을까. 아니면 그저 그런, 관심을 갈구하는 관심병 환자 무리들인가. 이런 저런 의문을 품고 책을 보았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멘을 이끄는 주축은 우크라이나 여성 4인이다. 우크라이나.. 잘 알지 못하는 나라다. 흔히 김태희가 밭을 간다고하는, 그래서 곧잘 장모님의 나라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농담속의 나라 정도로 알 뿐이다. 책을 통해 만난 우크라이나의 실상은 안타까웠다. 서유럽에 비해 동유럽의 경제가 어려운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유럽은 동양의 나라들보다 여성의 지위가 존중 받는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 나라의 여성들은 10대 후반이 되면 결혼을 한다. 20대 초반에 이미 애엄마가 되고 사회적 지위 상승은 이로써 막혀버린다. 경제 사정도 좋지 않다. 정치는 부패했으며 러시아의 간섭이 있는 것 같다. 이 나라의 여성들은 진출할 수 있는 자리가 없다. 다른 나라의 남자들이 자신들을 그 나라로 데려가기를 꿈꾸며 하룻밤을 보낸다. 매춘은 국가의 큰 수익원이다. 정부 조직이 섹스 산업을 보호한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저항의 수단으로 가슴을 드러내는 극단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것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이런 저런 만감이 교차했다.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론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쉬웠다. 우리나라도 여성과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그 중 가장 큰 과제는 위안부 문제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페멘 지부가 세워진다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세계의 이목을 끄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퍼포먼스가 이루어질 것이다.
페멘들은 여성의 지위를 위해 싸우지만 그들의 관심은 자국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점이 감동스러웠다. 여성 문제를 위해서라면 독재국가에 들어가기도 서슴지 않는다. 종교가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십자가를 전기톱으로 동강낸다라니.. 몸을 아끼지 않기에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다. 처음에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다소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다가 어느 순간 그들의 열정에 빠져 들었다. 나는 저런 열정을 가지고 살아온 시절이 있었던가. 잠깐 반성도 했다.
평이하게 읽히는 이 책에서 열정을 보았다. 우리 시대의 열정은 언제부터인가 취업을 위한 열정으로 한정돼 버린 느낌이다. 신입사원의 열정, 취업 면접에서 보여줘야만 하는 그런 열정들.. 그렇게 열정의 쓰임은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제한되어 버린 듯 싶었다. 신념을 위해 바치는 열정들은 정치적 안정기에 접어든 국가들에서는 보기 힘든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치가 안정된 나라인가... 머리가 복잡해 진다. 체 게바라, 체 게바라 해서 체 게바라를 읽었지만 그 책은 내게 지루했다. 내용도 잘 기억이 안난다. 분명 훌륭한 분인데 내 수준에서 그분을 이해하기가 버거웠다. 이 책은 괜찮다. 또 다른 체 게바라를 만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