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싱 마이 라이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9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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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학교에서 이옥수 작가 초청 강연이 있어서 아이와 함께 했었다. 강연을 들은후 이옥수 작가의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해서 찾은 책이 『키싱 마이 라이프』다.  강연회 중에 나왔던 책이기도 했고, 작가가 농담조로 이 책이 굉장히 야하다면서 아이들을 들었다 놨다 했었다. 큰 아이는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42페이지가 야하다는 작가의 말에 책을 읽어야겠다고 하니, 아이들에게 성은 분명 대단한 관심사다.  내눈엔 야하다는 느낌보다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장면이었지만, 큰아이 나이였을때는 나 역시 야하다는 생각만 들었을 것 같다.  '내 인생을 사랑하라'나 '인생에 부딪혀라'는 뜻으로 다가오는 '키싱 마이 라이프'를 처음에는 왜 '키싱구라미'가 자꾸 떠오르는지, 큰 아이에게 '키싱구라미'빌려오라고 했다가 얼마나 놀려대는지 엄마의 기억력을 어떻게 알고, 그냥 빌려오라고 하면 빌려올것이지. 개떡같이 이야기를 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게 모녀지간 아닌가. 

 

 

 

'저 인간 저런 꼴을 한두 번도 아니고 이때껏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보며 살아왔는데 왜 갈수록 화가 더 나는지 모르겠다. ..정상현, 언제는 완소남이었다가 또 언제는 완전 꼴통이니 부모 자식 간이라도 그 변화무쌍함 때문에 무지 헷갈린다.' (p.22~23)

 

  강하다.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나온다. 요즘 아이들의 대화는 유치부 어린 아가들하고만 살고 있는 나에겐 외계어로 다가오긴하지만, 주인공 하연은 내 상상 이상으로 이렇게 크고 강하게 이야기를 한다. 남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술먹고 주정을 하는 아빠에게 하는 이야기다. 어찌 부인이 할말을 열일곱 요 조그만 아이 입에서 스스럼 없이 나오는지 읽으면서도 감당이 안된다.  아빠의 주사가 반가울리는 없지만 이야기만 이렇게 하는게 아니라, 술먹은 아빠의 머리를 잡고 '죽어라'하고 고래 고래 소리를 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노는아인가 하면 절대 아니다. 공부도 꽤 잘한다.  엄마나 아빠처럼, 집나간 언니처럼은 절대 살지 않겠다는 하연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 영특한 아이다. 이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정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동물인가 보다. 진아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속에서는 질투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내가 진아보다 더 불쌍해서 화가 났고, 내가 진아보다 더 아픈게 속상했다.'  (p.100)

 

  절친 진아의 남친 현규는 진아만큼 공부를 잘하는 아이다.  이 아이들이 부럽게 다가올 즈음에 현규의 친구 채강이 하연의 남친이 되었다.  외롭기도 하고 넷이서 놀면 재미있을것 같았으니까. 고등학생이라면 이성친구 한명 있는게 이상한 일도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친해졌는데, 아무도 없는 집에서 마시는 와인은 아이들의 이성을 무너뜨린다. 이성이 문제가 아니지. 미친 호르몬때문에 생겨난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 미친 호르몬이 임신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자신이 해야할 길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아이는 갈팡질팡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가장 아픈데, 이 아픈것을 이야기할 곳이 없다. 현규와 진아가 갈뻔했다는 말은 그저 행복한 투정처럼 들릴뿐이다.  서로 좋아하면서 뭐...  어디에도 이야기할 수 없는 아이.  열일곱은 그저 아이일 뿐이다.  채강과 진아, 그리고 현규에게 이야기를 하고 이 아이들이 헤쳐 나간다고 해도 열일곱살 아이들일 뿐이다.

 

  아이들의 힘만으로 헤쳐나가리라 생각을 하는 것 역시 아이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수술을 하겠다는 하연과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하는 채강. 그리고 흘려버린 시간.  바쁘다는 핑계로, 삶이 녹녹치 않다는 핑계로 부모는 아이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아이는 시간과 함께 커버린 뱃속 아이를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면서 하연은 집을 나와 언니에게 간다.  언니에게 가봐야 열아홉 똑같은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은 왜 부모에게 말을 하지 못할까?  아니, 아이는 이야기를 하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은, 아빠의 음주운전 사고로 입을 다물게 만들어 버린다.  아이에겐 이야기 하면 안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엄마에게 다가올 고통을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면 넘어갈 수 있을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배꼽에서 팝콘 하나가 튁 튀는 것 같은, 아니 나비의 날갯짓 같은, 아니 아니, 금붕어가 소슬하게 헤험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이 일어났다. 전에도 몇 번 이런 느낌은 느꼈지만 이처럼 떨리진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가슴이 떨리도록 감격스럽다. " 아, 아가야. 너였구나!" (p.159)

 

  열일곱엔 경험하지 않아도 될일을 하연은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정답이라고 믿으면 살아았던 길들을 놓고 만다. 어린아이. 열일곱 어린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그래도 아이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미혼모 시설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만나는 십대의 아이들.  뱃속 아이와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는 아이도 있지만,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선택에 감사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의 출생으로 미혼모라는 이름표가 붙을 지라도 아이는 아이도.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고 함께 노래하고 웃는 아이들이다.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문제를 이옥수 작가는 끄집어 내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연에서 작가가 작품의 인물을 만들면 그 인물이 되어 산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자신은 청소년으로 밖에 살 수 없다고 말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한다. 『개 같은 날은 없다』를 통해서 보여줬던 가족의 폭력이 아닌, 가족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무관심하고 방임하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의 입에서 "난 내 새끼 힘들어하는 것 죽어도 못 봐. 그래도 새끼가 힘들때 엄마가 옆에 있어야지!" (p.234)라는 말로 혼자가 아님을 이야기 하고 의지할 어깨를 빌려준다.  이야기의 끝은 하연의 출산이지만,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풀어주지 않고 있다.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실은, 생각조차도 무섭고 겁이나서 멍해져 버린다.  내 아이의 일이라면이라는 상상 조차도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니까. 타인의 일이었을때는 이렇게 저렇게 해봐요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내일로 닥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진아와 현규가 하연을 보면서 자신들이 끝까지 가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것 처럼 말이다.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알 수 없다.  아이에게 『키싱 마이 라이프』를 건네주고 읽은 후에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이 나의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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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 제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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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12월 세상을 떠난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을 기리기 위한 '혼불문학상'이 3회를 맞이했다.  2001년 혼불기념사업회에서 제정한 청년문학상과 혼불학술상 2개 부문으로 통칭하던 것을 2011년 전주문화방송이 '혼불문학상'으로 제정, 시상하기 시작하였는데, 제1회『난설헌』, 제2회『프린세스 바리』에 이어 제3회 수상작으로 김대현 작가의 『홍도』가 선정됐다.  '홍도'라는 제목을 읽자마자 예전 악극 '홍도야 울지마라'가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오빠가 있으니 울지 말라던 홍도와 김대현 작가의 '홍도'도 오빠같은 '자치기'가 있으니 그것 하나는 비슷하다. 

 

 

 

나는 400년 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책 띠지에 적혀있는 글이다.  400년 동안 어떻게 기다렸다는 것일까?  띠지만 읽고 생각난건 어린시절 본 <은행나무 침대>였고, 끝없는 삶을 살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였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건 언제나 가슴 아리다.  금방 오는 기다림은 설렘을 동반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고 혼자 기다린다는 것은 그리 편한 기다림은 아니니 말이다.  동양적 사상으로는 기다림 속에 '윤회'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몇 백년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들이 드라마, 영화와 책을 통해서도 많이 나오지 않았던가?  여기 한 여인이 있다. “1561년은 신유년이고 경진년은 1580년. 1580년생이시면 올해로… 433살?” 여자가 남자에게 눈길을 맞춘다. “그렇다면 저는, 1986년 병인년에 태어나 올해로 겨우 27살인 김동현입니다.” (p.19) 처음 본 여인이 자신은 433살이라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영화감독인 동현에게 전해주는 이 이야기들을 믿을 수 있는 것일까?

 

  근래에 들어서 '정여립'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흘러나오고 있다. 광해군을 다시 돌아보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당시 그런 사상을 가진 급진적인 혁명가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오는것이 사실이다.  다른 작품을 통해서 만났던 정여립은 젊은 혁명가로 나왔었는데, 『홍도』속 정여립은 죽도 할아버지가 되어 홍도앞에 나타난다. 할머니의 남동생으로 만난 죽도 할아버지는 글을 좋아하는 어린 계집아이에게 홍도란 이름을  지어 주었고, 죽도 할아버지 곁에서 낮도깨비같은 사내놈이 고운 미소를 짖고 홍도에 의해 '자치기'가 되었다.  "종이에 꽃물을 들이고 마음이 동한 시를 적었으니, 영이가 당나라 시인 설도를 쏙 빼닮지 않았느냐? 설도의 자가 홍도니라.  영이도 홍도 모양으로 시를 짓고, 도가의 도인이 되어 세상을 두루 살피는 아름다운 여인이 되면 좋을 것이야."(p.25)

 

  선조시대 역도의 무리라고 단정지어졌던 대동계의 수장 정여립은 자살을 했다.  정여립의 자살이 모든것을 원위치로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어린 계집아이의 아비도, 할머니도 정여립과 함께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역도의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에 살아난 자치기와 홍도. 그리고 살기 위해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홍도와 자치기.  정주옹주를 대신하며 일본 장수 우키타 히에이에(토요토미 헤데요시의 조카)와 함께 있다, 조선으로 돌아온 홍도는 홍도를 기다리던 자치기를 만나고 대동촌에 살게 되지만, 그역시 오래가지 못한채, 대동촌에 살고 있던 항아님에게서 죽음을 이기는 숨결을 넘겨받게 된다. '항아 님은 수천년을 살아온, 영영 살아갈, 제 숨을 홍도에게 불어놓으며 기원을 하고 축원을 했을 것이다.... 늙지도 죽지도 말고 살아라. 오래도독 살아서 세상을 다 보아라. 영영...' (p.283)

 

  조선이라는 나라는 신분제도와 함께 여인 혼자는 살기 힘든 나라였다.  그곳에서 몇백년을 살게 된 여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역사의 모순과 부조리와 맞서 사는 홍도가 영화감독 동현에게 이야기하는 자신의 삶. 8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들려주는 홍도의 말을 농담이나 소설로 받아들이던 동현은, 기축옥사, 임진왜란, 천주박해 등을 겪고 진주만, 암스테르담, 핀란드 등을 떠돌며 살아온 그녀의 삶과 사랑 속에 서서히 빠져든다.  늙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왔다는 홍도의 사랑과 이별, 희망과 절망은 반복되는 역사의 주요 사건들과 맞물려 동현이 가진 의문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큰 산같은 아버지, 이진길이 백다록이 되어 나타나고, 정주 옹주였던 얀 얀센 꼬르버를 만나 사랑했던 홍도.  언제나 살아 있었고 언제나 사랑했다는 그녀, 홍도.  그녀의 운명을 뒤흔든 사랑을 그녀는 그렇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한다.

 

  헬싱키 반타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 홍도의 리얼리티를 의심하는 동현은 어느새 홍도에 모든 말을 믿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왜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자신이 어째서 그토록 '정여립'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 띠지에 씌어있는 '나는 400년 동안 당신을 기다렸습니다.'라는 글이 "바닷물이 깊다고들 하지만 내 그리움에는 반도 미치지 못하리라"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세번의 사랑이 다가왔다해도 그녀의 가슴 절절한 사랑은 그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여인의 삶속에 녹아있는 우리 역사와 그 속에서 사랑을 찾기 위해 애쓰던 여인. 축복이 될 수도 불행이 될 수도 있는 '불멸'을 그녀는 '홍복'이라 이야기를 한다.  또 다시 사랑을 만났으니까.  사랑이 고픈 계절, 이 가을 그녀가 사랑을 만나서 다행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다림을 꼭꼭 눌러 담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홍도에게 빠져버렸기 때문이고, 홍도의 말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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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날은 없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1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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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아이 학교에 이옥수 작가 강연회가 있단다. 이름만 들어보고 그녀의 책을 읽어본적이 없어서 딸 아이에게 책 대여를 부탁했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몇장만 읽어야지 하고 책을 펼쳤다가 다 읽어버렸다. 토요일 밤엔 보통은 책을 읽지 않는데, 읽고는 주일 아침부터 비몽사몽하고, 예배를 어떻게 드렸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이야기가 너무나 맛있어서 술술 넘겨지고는 그 속에 빠져 버린다.  게다가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가슴 앵하게 아파오지만, 다독여주고 치유해주는 손길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청소년 소설의 이름으로 된 이야기들 중에 상당수가 열린 결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열린 결말은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수도 저렇게 만들 수도 있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수 있어 좋지만, 여전히 난 행복한 결말이 좋다.  아이들 책과 청소년 책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청소년 도서로 된 책들은 행복한 책이 좋다.

 

 

 

"녀석이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초등학교때부터 키우던 강아지 찡코를 죽인 녀석의 이름은 강민이다.  분명 찡코녀석이 '죽여봐, 죽여봐'하면서 놀린 기분이 들어 죽였지만, 찡코가 없는 세상은 강민에게는 너무나 낯선 세상이다. 아토피로 박박 긁어야 할때도 자신을 위로해 줄 이가 하나도 없다.  외삼촌 집에서 기거하며 정보 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는 미나 씨는 거식증 증세가 있는 강민의 옆집사람이다.  그저 스치듯 알았을 뿐인데,미나씨는 심리치료를 받던 중 우연히 정신과 진료실에서 찡코의 사진을 보게 되고 사진속의 강아지 눈동자가 자신의 마음속에 스캔 되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강이지를 학대하는 그녀석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 그 앨 사랑해' (p.62)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도 있다고 하니 찡코가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궁금했던 미나씨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다가 본인도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일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기억이 이렇게 지우고 싶다고 지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기억이 얼마나 또렷하게 떠오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긴하다. 내 경우는 워낙에 단기 기억을 못하니 예전 기억을 떠오르려 노력조차 하지 않으니 말이다.  미나씨는 강아지 사진 한장으로 자신의 어린시절 그녀 역시 강민처럼 사랑하던 강아지를 죽였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강아지를 죽인건 미나씨인데 어째서 강아지를 죽인것과 함께 어린시절 겪었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지 미나씨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오빠가 밉고 엄마가 미울 뿐이었다.  그저 장난였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물고 물리면서 근수를 때리고 또다시 근수에게 맞아서 입원을 한 강민도 미나씨와 다르지 않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강민이 본것은 형과 아빠의 싸움. 아빠에게 맞은 후 강민에게 돌아오는 형의 폭력. 강민과 미나씨는 가슴속에 응어리를 품고있고 폭력에 주눅든 여린 영혼일 뿐 이었다.  

 

  이옥수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녀에 대한 소개글들을 읽다보니 이옥수 작가는 도시 빈민촌, 탄광촌, 산업 현장과 같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무대로 펼쳐지는 10대의 삶을 농익게 풀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미혼모나 입시 문제 등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로 10대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현실감 있게 그려내 우리 청소년 문학의 근육을 탄탄히 키워 온 작가라고 되어있다. 『개 같은 날은 없다』는 형제남매 간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폭력으로 얼룩진 가족 내에 잠재된 눈물. 아이들의 싸움은 그저 싸움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강민과 미나처럼 가슴 깊숙하게 그 응어리가 남아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대문 밖을 넘지 못하고 숨겨진 이야기. 서로의 마음이 퍼렇게 멍들어 가고, 우리 가정, 사회는 한 집안의 일이겠거니 넘겨버리거나, 또는 부모의 자존심과 관련된 일이라 세상에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싸웠나요? 아니, 누나, 누구한테 맞았죠? 누가 누나를 괴롭혔어요?"..."씨이, 우리 찡코도 그렇게 죽었어요...씨, 아버지하고 형이 싸우는데 녀석이 나한테 달려들었어요. 내가 형하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데... 녀석이 못 나가게 할퀴었어요. 죽여 봐, 하면서.." (p.258~259)

 

  강민과 미나는 용감하게도 정신과를 찾고 비폭력대화를 시도한다.  용감하다는 표현을 쓰는이유는 알고 있으면서도 어렵기 때문이다.  '비폭력대화'를 배우러 다니는 친구가 있다. 강민의 가족들이 찾은 '비폭력대화'를 보면서 이렇게 변해가는구나, 아니, 맘속에 상처는 누구나 가지고 있구나를 깨닫게 된다.  자신만의 상처라고 생각을 했기에 자신만이 피해자였는데, 동생이 아닌 형이 되는 순간 어느 누구도 가해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 주는 것. 내면에 꽁꽁 숨겨둔 아픔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녹아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만신창이가 되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꼈던 이들에게 멈추지 말라고, 치유받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것은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문 두드리고 두드려서 열게 하고 서로 안아줘야 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또 다른 나의 분신에겐 평화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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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다리 2
줄리 오린저 지음, 박아람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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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몇 개월 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는 책들은 분명 무언가 있는 책이다.  작년 12월에 1, 2권을 읽고는 정신이 없어 그냥 책장에 넣어둔 책을 꺼내들었다.  아련함과 가슴절절함은 느껴지는데 이게 뭐였던가 한참을 생각했다.  리뷰를 바로 써놓지 않으면 항상 이렇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은 퇴색되어 버리고 그냥 아련한 느낌만 남으니 후회하면서도 리뷰보다 읽고 싶은 책 욕심에 놓치곤 한다.『보이지 않는 다리』는 그럼에도 아렴함이 강하게 남은 작품이었다.  고운 낙엽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이기에 더욱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사랑의 이야기.  읽을 당시 주노 디아스의 "올 한 해 가장 뛰어난 책!"이라는 말에 강하게 동감하게 만들었던 『보이지 않는 다리』. 한겨울에 읽을때는 흰 눈위에 찍힌 발자욱같은 사랑으로 느껴졌던 이야기가 이 가을엔 가을을 닮은 달콤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1937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건축 공부를 위해 파리로 가는 언드러시 레비는 명망 있는 하스 가문의 노부인에게서 C. 모르겐슈테른이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편지를 부친 후 한동안 익숙지 않은 프랑스어와 씨름하며 정신없이 유학 생활을 보내던 언드러시는 우연한 기회로 C. 모르겐슈테른의 집에 초대받는다. 집주인이자 편지의 수령인은 남편 없이 딸과 단둘이 사는 발레 강사 클러러 모르겐슈테른이다. 언드러시는 클러러가 하스 노부인의 딸임을 알아채고, 클러러 하스는 언드러시의 삶 전체에 깊이 각인되는 운명의 여인이 된다. 언드러시보다 아홉 살이 많은 데다 딸이 있는 클러러는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한다. 게다가 성을 바꾸고 가족과 연락을 끊은 채 파리에서 혼자 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어두운 과거는 두 사람의 관계에 발목을 잡는다. 결국 언드러시는 가난한 유학생이라는 처지에 대한 좌절감과 비밀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 클러러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떨어진 후에야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깨달은 두 사람은 마침내 재회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그녀 없이 보낸 몇 주일의 지루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다시 인간이 되었다.  자신의 살과 피, 그리고 그녀의 살과 피를 되찾았다. 겨울 햇살 속에서 모든 것이 너무도 환하게 반잒거렸다.  거리의 모든 부분 부분이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처럼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1권 p.227)

 
  사랑을 깨닫는 순간 청춘에게 삶은 얼마나 아름답게 다가오는지 클러러의 존재만으로 언드러시의 삶은 환하게 빛이나고 세상은 변해 버린다.  이루어질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이 이루어지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야하는데, 전쟁이라는 역사속에 끼어있는 사랑은 둘만의 일만이 아니게 된다.  역사의 비극은 당연한 듯 두 사람의 삶에 끼어드니 말이다. 헝가리 당국이 유대인 유학생에게만 적용되는 새 비자 정책을 실시하면서 언드러시는 비자를 갱신하러 어쩔 수 없이 헝가리로 향하고 클러러는 과거가 폭로될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따른다. 클러러는 가족들과 다시 만나고 두 사람은 축복 속에 결혼해 새 삶을 꾸리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고 만다. 그리고 전쟁과 함께 시작된 유대인 강제 노역으로 두 사람은 기약 없는 헤어짐을 강요당한다.

 

  만만치 않은 분량과 방대한 스케일, 상세한 묘사들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1930~1940년대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단순히 2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훑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난한 유학생 언드러시가 사는 싸구려 다락방에서 어린 소녀들이 춤추는 클러러의 발레 교습소, 건축 학교, 오페라 극장, 유럽 횡단 열차, 그리고 동부전선의 노무 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이 등장하며 그때마다 작가 줄리 오린저는 그 장소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섬세히 묘사하기를 잊지 않는다. 오랜 시간 공들인 디테일한 묘사는 모든 감각을 언드러시와 클러러 두 사람이 사는 세계속으로 푹빠져버리게 만든다.  언드러시가 클러러의 교습소로 가는 동안 그와 함께 센 강을 건너고 마레 지구를 거치며 파리 시내를 산책할 수 있고, 언드러시가 설계 대회에 제출한 건축 모형을 르코르뷔지에와 나란히 서서 이모저모 따져볼 수 있으며, 화려한 무대 뒤에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오페라 극장의 현장을 체험 하는 경험이라니 작가의 능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다리』는 로매스 소설이면서 역사소설이다. 유럽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일촉즉발의 시기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 버린 시기까지의 정치적, 역사적 사건들이 클러러와 언드러시의 이야기 안에 촘촘히 엮여 있다. 추축국에 가담했다가 탈퇴 직전 독일에 점령당하고, 전쟁 말미에는 소련에 점령당해 다시 연합국으로 돌아선 헝가리의 굴곡진 운명처럼 언드러시와 클러러도 전황에 따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두 사람 외에도, 전쟁으로 굴절되고 마는 삶의 비극을 보여 주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설 전체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작가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긴박했던 시대의 장면 장면을 충실히 재현해 내고 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도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피어나는 생존의지는 그들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이끌어 준다. 노역에 시달리는 언드러시와 폭격의 위협을 견디며 기다리는 클러러를 버티게 하는 힘은 사랑에서 나온다. 변치 않는 사랑과 신뢰, 그리고 그 결실인 아이들은 두 사람이 잔인하고 참혹한 시대 상황에도 삶을 이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언드러시가 가장 경악한 것은 엄청난 규모가 아니라 오히려 아주 작은 것들이 괴로움을 안겨 준다는 사실, 아주 작은 것들이 일상생활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토대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저울은 아주 작은 것에 의해, 즉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이나 수통에 남아 있는 아주 약간의 물, 주머니에 든 빵 부스러기 등에 의해 기울어질 수 있었다.'(2권 p.416)

 

  1권 525페이지, 2권481페이지로 1,000페이지를 넘는 언더러시와 클러러의 사랑은 기적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건 사람들.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두 사람의 운명은 배고픔도, 두려움도, 고통도, 그리고 전쟁도 갈라놓을 수가 없는 기적같은 사랑이었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그들의 사랑으로 가슴을 욱식거리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다리』는 읽으면서 고전인가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묘사나 역사의 세밀함으로 인해 읽어보지 않았던 고전으로 생각을 하다, 작가 줄리 오린저가 1973년 생이라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줄리 오린저가 만들어낸 운명적 사랑과 탄탄한 구성, 강력한 이야기와 디테일한 묘사는 비극적일수 밖에 없었던 역사를 내 눈앞에 펼쳐놓는다.  작가가 아닌 독자로 글을 읽을 수 있음에, 이런 사랑에 동참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이런 가을날『보이지 않는 다리』는 사랑을 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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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다리 1
줄리 오린저 지음, 박아람 옮김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읽고 몇 개월 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는 책들은 분명 무언가 있는 책이다.  작년 12월에 1, 2권을 읽고는 정신이 없어 그냥 책장에 넣어둔 책을 꺼내들었다.  아련함과 가슴절절함은 느껴지는데 이게 뭐였던가 한참을 생각했다.  리뷰를 바로 써놓지 않으면 항상 이렇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은 퇴색되어 버리고 그냥 아련한 느낌만 남으니 후회하면서도 리뷰보다 읽고 싶은 책 욕심에 놓치곤 한다.『보이지 않는 다리』는 그럼에도 아렴함이 강하게 남은 작품이었다.  고운 낙엽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이기에 더욱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사랑의 이야기.  읽을 당시 주노 디아스의 "올 한 해 가장 뛰어난 책!"이라는 말에 강하게 동감하게 만들었던 『보이지 않는 다리』. 한겨울에 읽을때는 흰 눈위에 찍힌 발자욱같은 사랑으로 느껴졌던 이야기가 이 가을엔 가을을 닮은 달콤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1937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건축 공부를 위해 파리로 가는 언드러시 레비는 명망 있는 하스 가문의 노부인에게서 C. 모르겐슈테른이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편지를 부친 후 한동안 익숙지 않은 프랑스어와 씨름하며 정신없이 유학 생활을 보내던 언드러시는 우연한 기회로 C. 모르겐슈테른의 집에 초대받는다. 집주인이자 편지의 수령인은 남편 없이 딸과 단둘이 사는 발레 강사 클러러 모르겐슈테른이다. 언드러시는 클러러가 하스 노부인의 딸임을 알아채고, 클러러 하스는 언드러시의 삶 전체에 깊이 각인되는 운명의 여인이 된다. 언드러시보다 아홉 살이 많은 데다 딸이 있는 클러러는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한다. 게다가 성을 바꾸고 가족과 연락을 끊은 채 파리에서 혼자 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어두운 과거는 두 사람의 관계에 발목을 잡는다. 결국 언드러시는 가난한 유학생이라는 처지에 대한 좌절감과 비밀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 클러러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떨어진 후에야 서로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깨달은 두 사람은 마침내 재회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그녀 없이 보낸 몇 주일의 지루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다시 인간이 되었다.  자신의 살과 피, 그리고 그녀의 살과 피를 되찾았다. 겨울 햇살 속에서 모든 것이 너무도 환하게 반잒거렸다.  거리의 모든 부분 부분이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처럼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1권 p.227)

 
  사랑을 깨닫는 순간 청춘에게 삶은 얼마나 아름답게 다가오는지 클러러의 존재만으로 언드러시의 삶은 환하게 빛이나고 세상은 변해 버린다.  이루어질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이 이루어지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야하는데, 전쟁이라는 역사속에 끼어있는 사랑은 둘만의 일만이 아니게 된다.  역사의 비극은 당연한 듯 두 사람의 삶에 끼어드니 말이다. 헝가리 당국이 유대인 유학생에게만 적용되는 새 비자 정책을 실시하면서 언드러시는 비자를 갱신하러 어쩔 수 없이 헝가리로 향하고 클러러는 과거가 폭로될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따른다. 클러러는 가족들과 다시 만나고 두 사람은 축복 속에 결혼해 새 삶을 꾸리지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고 만다. 그리고 전쟁과 함께 시작된 유대인 강제 노역으로 두 사람은 기약 없는 헤어짐을 강요당한다.

 

  만만치 않은 분량과 방대한 스케일, 상세한 묘사들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1930~1940년대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단순히 2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훑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난한 유학생 언드러시가 사는 싸구려 다락방에서 어린 소녀들이 춤추는 클러러의 발레 교습소, 건축 학교, 오페라 극장, 유럽 횡단 열차, 그리고 동부전선의 노무 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이 등장하며 그때마다 작가 줄리 오린저는 그 장소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섬세히 묘사하기를 잊지 않는다. 오랜 시간 공들인 디테일한 묘사는 모든 감각을 언드러시와 클러러 두 사람이 사는 세계속으로 푹빠져버리게 만든다.  언드러시가 클러러의 교습소로 가는 동안 그와 함께 센 강을 건너고 마레 지구를 거치며 파리 시내를 산책할 수 있고, 언드러시가 설계 대회에 제출한 건축 모형을 르코르뷔지에와 나란히 서서 이모저모 따져볼 수 있으며, 화려한 무대 뒤에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오페라 극장의 현장을 체험 하는 경험이라니 작가의 능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다리』는 로매스 소설이면서 역사소설이다. 유럽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일촉즉발의 시기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해 버린 시기까지의 정치적, 역사적 사건들이 클러러와 언드러시의 이야기 안에 촘촘히 엮여 있다. 추축국에 가담했다가 탈퇴 직전 독일에 점령당하고, 전쟁 말미에는 소련에 점령당해 다시 연합국으로 돌아선 헝가리의 굴곡진 운명처럼 언드러시와 클러러도 전황에 따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두 사람 외에도, 전쟁으로 굴절되고 마는 삶의 비극을 보여 주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설 전체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작가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긴박했던 시대의 장면 장면을 충실히 재현해 내고 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도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피어나는 생존의지는 그들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이끌어 준다. 노역에 시달리는 언드러시와 폭격의 위협을 견디며 기다리는 클러러를 버티게 하는 힘은 사랑에서 나온다. 변치 않는 사랑과 신뢰, 그리고 그 결실인 아이들은 두 사람이 잔인하고 참혹한 시대 상황에도 삶을 이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언드러시가 가장 경악한 것은 엄청난 규모가 아니라 오히려 아주 작은 것들이 괴로움을 안겨 준다는 사실, 아주 작은 것들이 일상생활의 균형을 유지해 주는 토대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저울은 아주 작은 것에 의해, 즉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이나 수통에 남아 있는 아주 약간의 물, 주머니에 든 빵 부스러기 등에 의해 기울어질 수 있었다.'(2권 p.416)

 

  1권 525페이지, 2권481페이지로 1,000페이지를 넘는 언더러시와 클러러의 사랑은 기적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건 사람들.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두 사람의 운명은 배고픔도, 두려움도, 고통도, 그리고 전쟁도 갈라놓을 수가 없는 기적같은 사랑이었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그들의 사랑으로 가슴을 욱식거리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다리』는 읽으면서 고전인가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묘사나 역사의 세밀함으로 인해 읽어보지 않았던 고전으로 생각을 하다, 작가 줄리 오린저가 1973년 생이라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줄리 오린저가 만들어낸 운명적 사랑과 탄탄한 구성, 강력한 이야기와 디테일한 묘사는 비극적일수 밖에 없었던 역사를 내 눈앞에 펼쳐놓는다.  작가가 아닌 독자로 글을 읽을 수 있음에, 이런 사랑에 동참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이런 가을날『보이지 않는 다리』는 사랑을 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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