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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꽃신 1
윤이수 지음 / 동아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어린시절 부르던 동요중에 <오빠생각>이라는 동요가 있었다. 요즘도 아이들이 부르는 지는 모르겠지만, 동요 가사 중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라는 부분이 있다. 서울엔 비단구두가 많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비단꽃신』은 오빠가 아닌 비단꽃신 사러간 아빠의 이야기다. 네이버 웹소설 중에 『구르미 그린 달빛』이라는 예쁜 제목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이 윤이수 작가의 작품이다. 그저 웹소설이라고 읽고 있다가, 윤이수 작가의 작품이라는 걸 알고 놀랬었다. 기존의 전문 작가도 이렇데 웹소설을 쓰는구나 하고 말이다. 달달한 로맨스가 떙길 때 딱인 윤이수 작가의 초기 작품 『비단 꽃신』.
요즘 그녀가 쓰는 작품들과는 다른 면이 있지만, 역시나 작가가 즐겨사용하는 소재 중 하나인 남장여자를 사랑하는 왕자님의 이야기다. 조선이 배경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역사 소설의 면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서대문이 나오니 조선이 맞겠지.? 게다가 무협소설의 느낌도 나는것이 요즘 읽고 있는 윤이수 작가의 작품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물론,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정은궐 작가의『성균관유생들의 나날』처럼 역사 속 이야기들을 절묘하게 섞어놓았다고 이야기하기도 묘한 부분이 있는건, 장풍이 날아다니는 무협의 느낌이 중간 중간 섞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굉장히 묘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상 어디에서도 금방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고. 그것은 바로 백은서 뿐이라고!" (p.78)
눈먼 어미를 봉양하는 백은서. 어려서부터 아비가 남긴 서책하나로 무술실력이 제법이 아니다. 가슴동여메고 남자로 살고자 용우관에서 비무를 했던것이 우림위까지 흘러들어가게 만들어 버렸다. 궁안의 금군을 여인의 몸으로 들어갈수 없지만,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곳에서 만난 우림위장 위겸. 잘나기는 어마무시하게 잘났는데, 은서를 너무 괴롭힌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 갈 은서가 아니니, 티격티격거리는 사이에 우림위장 마음에 불이 붙어 버렸단다. 어찌 저 어린 녀석을 보기만 하면 가슴이 뛰는지 알 수 없으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금군에 '비역질'을 하는 군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대략 난감이 아닐 수 없다.
둘의 사이는 이렇게 흘러가고 금강산에 있던 은서와 화령은 어떻게 한양으로 오게 된 걸까? 눈멀어 볼 수 없는 화령이 바느질은 어찌나 잘하는지 홍대감댁 참모일을 하게 되었단다. 그곳에서 화령에 귀에 들리는 목소리. 한양가서 비단 꽃신 사오신다던 낭군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16년간 잊지 못하는 낭군이었는데, '백화령'을 모른단다. "비단신 한 켤레만 사다 달라고 하였지. 한양 간다고 하시기에, 머지않아 네 생일도 돌아오니 어여쁜 비단꽃신 하나만 사다달라고 졸랐더랬지. 그랬더니 그러마 하셨단다. 우리 은서 꽃신뿐만 아니라 내 것도 사다주마 약조하셨더랬지. 그랬는데... 그랬는데..." (p.254). 이러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모른다는 사람을 어찌하겠는가? 눈먼 화령은 화령데로 미치겠고, 눈먼 침모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은 홍대감도 미칠 노릇이다.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은서 주변에 있는 금군들과 우림위장만 모르는 은서의 비밀. 무예 출중하니 아무도 여인이라 의심을 할 수 없어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 참 둔탱이들이다. 그런 은서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위겸. 이젠 은서가 여자인건 남자이건 상관이 없단다. 그리고 그럴즈음 밝혀지는 은서의 비밀.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 쓸어내릴 즈음 이젠 위겸의 비밀이 밝혀질 차례다. 정말 이래도 될까 싶을정도로 멋진 왕자님. 이위겸.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왕자란다. 그것도 세자마마라니 이를 어쩌면 좋아. 천하디 천한 금강산에서 온 여인과 세자가 가당키나 하랴마는, 왕자라는 사실은 숨기고는 무조건 믿으라고 외치는 위겸. 남자도 좋아할뻔 한 세자마마를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가당치도 않게 이둘의 사랑이 가능할까마는 이둘보다 홍대감이 제정신으로 돌아와 버렸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백화령과 은서를 기억해 낸 홍상덕. 상덕의 머리 중앙에 16년간 꽂혀있던 대침.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큰 대침이 상덕의 기억을 가리고 있었던 것일까? 백화령을 모른다 말했던이가 아니던가?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꽤나 높은 신분의 그가 아니던가? 여리디 여려 바느질 하난 제대로 하지 못하던 화령이 홀로 은서를 키웠을 생각에 가슴 아리고, 알 수 없지만 16년간 지니고 있던 '비단꽃신'의 의미를 알아버렸는데, 그들곁으로 다가가기가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화령을 헤하려는 자들. 분명 홍대감과 은서모녀의 주위를 둘러싼 무언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알 수가 없다. 아비라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자신을 잊었다 생각하는 은서또한 골이 깊어져만 간다.
"그렇게 하나하나 베어냈다. 마음이 텅텅 비도록.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모두 베어냈다. 그렇게 마음을 비워냈더니 상처받을 일도 없었다.
상처받지 않으니 아프지도 않더구나" (p.300)
가슴 속의 울분도, 분노도, 원망도, 가슴앓이도, 설움도 모두 베어내어 아무것도 없는 무념무상이 되면야 당연히 상처 받을 일이 없겠지만, 인간사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도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아니, 그들은 도를 깨우친 사람이기에 범인들과 다를수도 있겠지만, 도인의 마음을 가진 범인이라... 흔하지만 재미면에서 결코 축소되지 않은것이 사극과 로코의 조합인듯하다. 현대물처럼 대담하지 않게 슬쩍 슬쩍 '은혜합니다'한마디로 마음을 전달하는 연인들. 게다가 장풍이 날라다니고 칼끝이 소리를 내면서 전장을 방불케하는 무협사극이라면 더 재미있다. 윤이수 작가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다른 작품들을 잘 알지는 않지만, 이 무협사극으로 나온 것이 재미있다. 무협지보다는 약한것이 사실이지만, 로맨스는 어찌나 이리도 잘 버무려놓았는지 모른다. 강하디 강한 은서의 든든한 왕자님. 은서가 조금만 약하게 보여도 '짠'하고 나타나는 왕자님 덕분에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