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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한 변명 - 이야기꾼 김희재가 전하는 세월을 대비하는 몸.마음 준비서
김희재 지음 / 리더스북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열다섯에 서른을 생각했었던가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닌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친정 엄마보다 나이가 더 들어 버린 지금 여전히 나는 젊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딸아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분명 예전 내가 엄마를 보던 그 모습일 것이다. 마흔이 넘어 버린 엄마와는 별개로 마흔이라는 나이는 내겐 오지 않을 시간처럼 느껴졌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시간들이 십대만은 아니었었고, 스물 언저리에 있을때도 마흔은 나와는 먼 나이처럼 느껴졌었다. 이젠 마흔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부럽다'는 생각부터 나니, 나이 듦은 막을 수 없는 물줄기 처럼 어느새 내게 다가와서 내 일부가 되어 버렸다.

매일하는 운동 중 하나가 자전거 타기다. 아니, 운동이라 하기도 뭐하지만, 자전거 없이는 동네를 돌아다니는것이 버겁다. 그냥 다니는 것이 아니라, 좀 먼 곳에서 장이라도 보려면 자전거가 꼭 필요한데, 요 몇일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매일 두는 곳에 있어야 할 자전거 열쇠가 보이지 않고, 가족 모두가 찾기를 함께 했지만, 찾지를 못했다. 일주일 만에 작은 아이가 열쇠를 찾아줬다. 책밑에 깔려있는 열쇠를 드디어 찾았는데, 왜 그 열쇠가 그 곳에 있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찾아오는 이 허망함은 나만이 느끼는것 같다. 요즘들어 종종 이런일이 일어나다보니, 가족들이 나의 건망증을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문득 문득 두려움이 밀려오는 이유는 여러 책에서 읽었던 '알츠하이머'를 혼자 떠올리기 때문일것이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생각나서 씽끗 웃다가도 진저리를 치는 이유는 이제 내 나이가 영화 속 주인공 마냥 푸릇한 나이가 아닐 뿐 더라, 그런 일이 생기면 주변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듦에 대한 '변명'이라는 제목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왜 이런것에도 '변명'을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 말이다. 빠른 속도감으로 읽혀지는 이책을 읽기 전엔 그랬었다. '변명'이라고 되어있지만, '변명'보다는 '이해'를 하게 해주고 있는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세월 이야기가『나이 듦에 대한 변명』이다. 내가 읽고 연로하신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을 정도로 꽤나 괜찮은 책이었다. 이야기꾼은 어찌 이리 글도 잘쓰는지, 글을 읽으면서 부모님 생각과 함께 지금의 내 모습과 몇년 후 다가올 내 모습을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열 아홉가지의 신체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는데, 저자는 이야기를 한다.
'세대 간 문제는 백만 가지 사연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이책을 통해 적어도 신체적 변화에 근거한 젊은이들의 오해만큼은 풀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도 10년, 20년 뒤에는 나이를 먹을 테니까요. 그리고 언제가는 분명 알게 될테니까요.' (p.10)
뽀글이 파마 / 여자의 화병 / 배불뚝이 아저씨 / 저도 모르게 새는 실수 / 깜빡거리는 기억력 / 둔해진 얼굴 감각 / 습관이 된 침 뱉기 / 고약한 입 냄새 / 살비듬과 가려움증 / 흐려진 눈망울 / 서리 같은 비듬 / 못생겨진 손톱 / 바윗돌 같은 귀지 / 저릿한 쥐내림 / 퀴퀴한 노취 / 이명과 난청 / 골다골증 / 어지럼증까지 열 아홉가지의 신체 변화는 나 역시 겪고 있고 겪어야 할 미래의 모습이다. 재미있게 쓰여진 글들은 읽다가도 픽픽 웃게 만든다. '저도 모르게 새는 실수'의 경우엔 "그럼 뭐야. 엉덩이도 늙는단 뜻이야? 아니 지가 근육으로 하는 일이 뭐 있다고 늙어. 만날 퍼질러 앉아 있는 주제에." (p.55)처럼 괄약근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서 끝은 아이다. 신체 변화를 이야기 한 후에는 잊지 않고 어깨 토닥이면서 다독여주고 있는데, <세월에 보내는 연가>의 모습을 띠고 울컥하게 만들어 버린다.
'꽃향기 피우며 세상에 왔다가 몹쓸 냄새를 남기고 가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꽃향기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제 예쁜것을 자랑하며 사랑으로 자라는 유년기가 있었다면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고요하게 혼자의 시간을 가지는 세월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196)
오는 세월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함께 갈 수는 있을 것이다. 작가의 바램처럼 어린 친구들이 이 책을 읽을지는 모르겠다. 읽는다면 부모님의 변화에 고개 끄덕이면서 공감을 할 수 있겠지만, 힘든 일일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서리 같은 비듬을 이고 다니시던 선생님을 이해 하지 못하던 내가 아니던가? 나뿐 아니라 내 딸아이도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을 것이고, 그 시기에 40년 후, 아니 20년 후를 생각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하지만, 중간의 낀 내 또래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고, 다가오는 나의 미래를 알게 되니 말이다. 어느새 1년의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리는 나이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부모님 손 꼭잡고 저자가 쓴 글처럼 이야기할수는 있을테니 감사하다.
"어지러우세요? 누우세요. 숨 크게 쉬고, 눈 감고 한숨 주무세요. 일어나시면 공원에 산책가요. 괜찮아요. 별일 아니예요."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