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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도사 ㅣ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2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신의 이름을 걸고 싸우는 전쟁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신의 뜻을 들었다는 이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로 인해서 유럽 젊은이들이 이교도 타도를 외치며 십자군전쟁이 시작되었었고, 구교와 신교가 벌인 30년 전쟁 역시 '신의 뜻'이었단다. 말을 하는 이가 '신의 뜻'이라고 이야기를 하니 그러려니 하고, 듣는 이는 읽을 줄 모르고 듣기만 하는 이이기에 눈치를 보면서 '아멘'을 외쳤을 것이다. '사형집행인의 딸'은 구교와 신교가 벌인 30년 전쟁, 마녀사냥, 중세 시대의 암울한 가톨릭 문화, 계몽되지 않은 당대의 분위기 등을 배경으로 한 올리퍼 푀치의 작품이다. '사형집행의 딸' 두번째 이야기인 '검은수도사'는 전편에서 만났던 숀가우의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 그의 총명하고도 아름다운 딸 막달레나 퀴슬, 지적인 호기심으로 무장한 젊은 의사 지몬 프론비저와 함께 십자군 전쟁 이후 쇠락해버린 템플기사단의 숨겨진 보물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의 배후를 파헤치고 있다.

주인공 주변에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셜록에게 그많은 사건들이 따라 다녔던 것처럼 야콥 퀴슬 주변에도 사건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1660년. 신교와 구교사이의 전쟁이 있고, 마녀사녕을 이야기하는 시기에 사행집행인이 계급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하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조선시대 백정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고, 이들은 필요할때만 쓰여지는 도구에 불과했을 것이다. 복종을 명하면 당연히 고개를 숙여햐 하는데 야콥 퀴슬은 다르다. 약학과 의학에 박식하고, 사람들에게 연민을 보낼 줄 아는 인물, 게다가 정의롭고 열정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마녀라 낙인찍힌 인물, 고문을 받고 처참하게 사형당해서 아둔한 사람들에게 유흥을 던져줄 인물을 구해내기위해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온몸을 받쳤다. 사형집행인에 의해 산파가 마녀가 아니란것을 밝혀내고 잠잠해진 것 같은 알프스 산자락에 자리 잡은 바바리아 주. 겨울이 짙게 깔려 있고, 눈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게 만들어 모두 집 안에 들어앉아 있는 어느 날 밤, 마을의 신부가 죽은채 발견된다.
신부의 죽음에 의구심을 갖는 지몬, 사건의 중심에 항상 다가와 있는 야콥 퀴슬, 그리고 신분과 상관없이 사랑을 하는 막달레나 퀴슬. 모든것이 꽁꽁 얼을 것 같은 그 밤에, 그들은 신부가 독살되어 살해된 것을 알아내고, 신부가 남긴 다이닝 메시지를 시작으로 사건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신부의 편지로 신부를 찾아 온 베네딕타에게 지몬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독살사건과 함께 지몬, 막달레나의 애정전선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고, 사건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막달레나가 본 검은 수도사, 제비꽃 향기, 야콥을 죽이려는 자들, 끊임없이 무언가를 가리키는 메시지들. 수수께끼 같은 암시들이 하나씩 맞쳐져 가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한 가장 경이로운 일이다. 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머리 위의 하늘도 나무도 산도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태양은 타오르지 않고 달은 빛나지 않고 아름다운 대양은 반짝이지 않는다는 것." (p.208)
베소브론 기도문의 존재를 신부의 장례식장에서 알게되면서 지몬과 베네딕타는 메시지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고, 사랑에 눈물 흘리며 정신을 못차리는 막달레나는 한겨울에 떨어진 약초를 구하기 위해 아우크스부르크로 가게되고, 야콥은 누군가의 종용으로 인하여 강도를 잡야야만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각자 다른곳에서 위기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는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다른 인물이 나올 때 마다 전에 나왔던 인물을 걱정하게 만든다. 지몬이 나올때는 막달레나와 야콥이, 막달레나가 나올때는 지몬과 야콥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책장이 빨리 넘어가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사건은 서로 떨어져 있던 주인공들이 한곳으로 모이게되면서 해결되지만, 역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열쇠는 야콥 퀴슬이 지니고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을 퍼즐을 맞춰놓는 것처럼 하나의 큰 조각으로 바꾸어 놓으니 말이다.
'Deus lo vult' (그것이 하느님의 의지다.) (p.404)
"Heredium templorum in domu baptistae in sepulcro Christi"
(템플기사단의 유산은 그리스도의 무덤 속에 있는 세례자의 집에..) (p.472)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인간은 알 수가 없다. 그저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길뿐이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인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템플기사단의 보물까지 이어지면서 작가는 이야기 한다. '모든 책은 스스로 테마를 찾아낸다. 그래서 내 두 번째 책은 뜻하지 않게 종교에 관한 책이 되었다. 이 책은 종교가 야기할 수 있는 모든 광기뿐만 아니라, 쉽사리 신을 의심하게 되는 시기에 종교가 제공해주는 위안과 보호도 보여준다." (p.584). 책의 내용보다 작가의 말이 더 와 닿는 것은 쉽사리 신을 의심하게 되는 시기에 여전히 종교가 제공해주는 위안과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의 뜻으로 만들어진 템플기사단의 세력을 약하시키기 위해 종교의 지도자들은 남색을 말하면서 그들을 사라지게 했었고, 수백년이 흐른 뒤 그들이 숨겨 둔 보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보물이 무엇인지 밝혀지는 순간, 이게 보물일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되지만, 그것 또한 'Deus lo vult'다. 모든것이 그분의 뜻일진데, 피조물인 인간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