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평점 :
표지만으로도 이렇게 오싹하게 만들수 있다니, 옆에 둔 책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앞표지가 아닌 뒤표지의 작은그림이 이렇게 무섭게 다가올지 몰랐다. 커다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의자위에 앉아있는 알 수 없는 인물이 뒤표지로 가면 손가락 사이로 한쪽눈을 보여준다. 내가 보는것이 아니라 그림속의 인물이 몰래 엿보는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이 모습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여름도 다 지났건만 올 여름 읽은 무서운 이야기 중 최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싹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기기묘묘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밤의 이야기꾼들'. 100%허구라 생각했을때의 이야기와 내가 겪은 이야기라는 전제하에 전해주는 이야기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이야기꾼들 역시 허구의 인물들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현실인가하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어 버리고, 그와 함께 느껴지는 공포는 배가되어 다가온다.

"나도 잘 몰라. '밤의 이야기꾼들'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어. 멤버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 신상에는 얼굴도 포함되지.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되 반드시 자신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해야한다. " 34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는 '월간 풍문'의 신입기자 정우는 대호선배와 함께 '밤의 이야기꾼들'을 취재하게 된다. 목련 흉가라 불리는 서울 시내의 폐가의 자정. 암흑 속 둘러 앉은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분명 자신의 이야기라고 하는데, 믿어도 되는걸까? 지어낸 소설이 실화보다 비현실적이어야 하는데,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이 세상에서 소설은 결코 실화를 따라잡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신입기자에 귀에 들리는 이야기들은 공포를 조성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게 들려온다. 정우가 느끼기에 노인인듯한 남자의 진행에따라 한사람 한사람 자신의 이야기일수도 가족의 이야기일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암흑을 뚫고 들려오기 시작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분명히 잘 뒀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이면 감쪽같이 물건이 사라져서 찾을수 없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워낙에 이런 경우가 많기도 하지만, 내가 잘 뒀는지 아닌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깜빡 깜빡하기에 열심히 메모를 한다. '밤의 이야기꾼들'이 들려주는 첫번째 이야기는 사라지는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디에 뒀는지 알 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라면 누가 가지고 간걸까? 가지고 간 주체가 있다면 그 주체는 무생물만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첫번째 이야기인 '과부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포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과부들만 살고 있는 동네. 이 동네는 왜 과부들만 살고 있지. 왜 이렇게 남편들이 죽어나가는 거지?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빠가 죽어서 과부들만 사는 이 동네, 진실은 과연 어떤것일까?
'밤의 이야기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듯한 이야기들이다. 세세하게 알지는 못할지라도 어느 영화, 어느 책, 어느 드라마에서 스치듯 본 이야기들이다. 어디선가 봤더라 생각을 해봐도 딱히 기억속에서 찾아낼수는 없다. 도플갱어를 만나게 되면 한쪽을 죽여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꽤나 오래전에 만화에서 본 기억이 날듯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요즘은 워낙에 의느님의 솜씨로 비슷한 얼굴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도플갱어일까? 이야기는 갸웃거리게 만들고 의느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릎을 치게 만들다가 소름을 돋게 만들어 버린다. 이건 사실일까? 화자가 담요를 걷어내지 않았을때의 공포가 고스란히 몰려오는 경험을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다니. 아... 이 오싹함 싫다.
2013년에 개봉되었던 '숨바꼭질'을 떠오르게 하지만 그 보다 더 무서운 '홈, 스위트 홈'은 따뜻하고 행복해야 할 '즐거운 나의 집'을 공포의 노래로 만들어 버린다. 그뿐인가? '홍콩할매'로 유명한 귀신 이야기가 '웃는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홍콩할매'는 내 어린시절에도 전해졌던 이야기였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녀가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게될 줄 몰랐다. 아예 몰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공감을 해야만 하는지, 공감하기 싫다. 무서워 죽겠다. 그나마 '눈의 여왕'과 건우의 이야기 덕분에 오그라들었던 가슴이 펴졌다. 끝까지 이렇게 두렵고 오싹하게 나갔으면 읽다가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글속에서 건우의 생각을 통해 '이야기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공기는 더 무거워지고, 기대감은 상승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느새 나는 '밤의 야야기꾼들'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p.137) 라고 이야기를 한다. 분명 궁금하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고 이 오싹함이 도를 넘을 정도로 무섭게 다가온다.
첫장을 넘겼을 때 만나게 되는 어린 소년의 즐거운 여름 휴가는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다.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고 자신들을 따라 같이 가자는 어른들. 슬픔으로 다가오는 어린시절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의 끝부분 신입회원으로 동참하게된 건우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는 따뜻하게 다가온다. 사물의 단면만 보면 제대로 된 물건을 알수 없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꼴이 되는 걸 책을 읽다 문득 문득 알게 된다. 살아있는자와 죽은자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하고, 그 순간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얼마나 부지불식간인지 잊을때가 많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나뉘어지지는 않았지만 '밤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들 중에서 건우의 이야기는 이렇게 다가온다. 그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세상에서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다. 살아가는 힘. 내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이런곳에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싹한 공포가 조심조심 오다가 확 몰아치는 이야기.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숨어있는 '밤의 이야기꾼들'. 대단한 작가의 필력에 놀라고,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어 진다. 어쨌거나, 오늘 밤 편안하게 잠들기는 다 틀려버렸다. 무서워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