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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ㅣ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9월
평점 :
역사 속 한줄의 정사 속에서 사랑을 찾아내어 말하던 이야기를 작년 초에 읽었었다. 김별아 작가의 『불의 꽃』에서 만났던 이귀사의 아내 유씨와 지신사 조서로는 세종에 의해 옥에 가두어지고 저작거리에서 죽임을 당하면서 '유감동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후에 세종은 그녀를 그렇게 죽인것을 후회했다고 실록에는 나와있다. 책으로 유감동을 만나기 전에 조선 역사에서 섹스 스캔들이라 하면 당연하게 어우동이 생각났다. 영화나 만화속에서 만났던 그녀는 도통 어떤 여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요부였고, 내 기억속에는 기생이었다. 심지어 '어우동 쇼'라는 쇼로 그녀를 만나기도 했었다. 어우동에 대해 찾아보니 실록에 여러 페이지에 걸쳐 소상히 기록되었다고하고, 성이 어씨인 줄 알았는데, 그녀의 성은 박가로 되어있다. 성 유희가 조선조의 정치사나 다름없는 <성종실록>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적은 사관들이 등재를 꺼려했다는 기록까지 있었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김별아 작가는 『불의 꽃-유감동』,『채홍-순빈 봉씨』에 이어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를 통해서 민낯 그대로 펼쳐 보여주고 있다.
승문원 지사였던 박윤창의 딸로 태어난 박어우동.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우동의 집 사람들은 여간 이상한것이 아니었다. 어미는 아비를 병신이라 불렀고, 아비는 어미를 화냥년이라 불렀단다. 오라비는 아비의 글재주보다 의심을 물려봤아 병증을 보였고, 어린 동생을 취한것으로 나오는데, 정사에 기록된 이야기 인지는 확실치가 않다. 이런 집이었기에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미친놈이라 불리며 종놈처럼 취급받고 자란 오라비는 사족의 딸과 혼인을 했으며, 어우동은 태종대왕의 차남, 세조대왕의 중형이며, 세조 대왕의 백부인 효령대군의 자제인 영천군의 별자인 태강수 이동과 혼인을 맺게 되면서 외명부 품계인 혜인으로 봉작되어진다. 족보를 길게 쓰긴 했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형님의 손주 며느리라고 보면 된다. 조선초기엔 서얼이라고 해도 종신의 위세는 대단했다고 하니, 종친의 며느리 역시 아무나 가능하진 않았을 것이다.
멀쩡한 종친은 죽음을 면하기 힘든 시대였으니, 그 시기에 세자가 아닌 종친들은 살기위해 주색에 빠지든 멍청이가 되든 무언가를 했어야 했을 것이다. 생각은 그렇지만, 태강수 이동이 왜 어우동을 내 쳤는지는 알 수 없다. 책에선 어린시절부터 변복을 좋아하던 어우동이 그릇을 만드는 은장과 간통을 했다고 하지만, 영천군의 말처럼 내 집 뜰 만화방초보다 먼 골짜기 풀꽃 잡초를 탐했는지도 모른다. 어우동을 내치고 기생인 연경비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왔으니 말이다. 오라비가 종놈처럼 취급받는걸 봐왔기 때문인지, 어우동은 상하 관계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어렸을때부터 함께 했던 계집 종, 장미와 함께 친정으로 쫓겨나서 친정에 와 있게 된다. 친정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어우동에게 장미는 오종년이란 사내를 소개해 주는데, 이때부터 어우동의 남성편력은 시작된다.
"아씨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신 것 같아요. 아씨는 재주도 재줒만 태강수가 홀딱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 기생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고우세요. 이런 아름다움을 지닌 채로 감옥이나 다름없는 규중심처에서 남몰래 피었다 시든다는 건 말도 안 돼요!" (p. 48)
"너는 이제까지의 어우동이 아니야. ... 지금 이 순간부터 네 이름은 현비(玄非)야."(p.49)
오종년을 시작으로 어우동은 팔촌 시아주버니가 되는 수산수 이기와 간통을 하고, 육촌 시아주버님인 방산수 이난과 통정을 한다. 꽃의 향이 매혹적이다 못해 아찔함을 가지고 있었던지 어우동이 가는곳엔 언제나 남자가 있었고, 그녀의 남성편력은 종친부터 노비까지 거리를 두지 않은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초기에 어우동은 마음에 두는 남자의 몸에 문신을 하면서 이난, 박강창, 감의동에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기도 하는등 기행을 일삼는다. 조선시대의 문신이라니. 가능한가 싶지만 사랑의 눈먼이들이 무엇인들 못했겠는가? 사대부가의 딸로 태어나 외명부의 봉작을 내던지고 스스로 내려온 여인. 몸이 외로우면 마음도 따라 비었을 것이고, 그 외로움을 어우동은 지독한 열망으로 채운다. 현비라는 이름으로 기녀생활을 할 정도였으니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희대의 스캔들로 알려진 '어우동'사건은 시간과 함께 알려지기 시작한다. 아니, 삼년의 시간동안 어떻게 들키지 않고 그런생활이 가능했는지 모른다. 모두들 쉬쉬하면서 꽃을 탐한건 아니었을까? 수산수 이기, 방산수 이난, 내금위 구전, 학유 홍찬, 생원 이승언, 서리 오종련, 서리 감의형, 생도 박강창, 양인 이근지, 사노 지거비 뿐 아니라 병조판서 어유소, 직제학 노공필, 김세적, 김칭, 김휘, 정숙지등의 이름이 밝혀지지만, 조선은 완벽한 유교 국가였고, 남자의 나라였다. 책에선 이난을 제외한 모든이들이 어우동과의 간통사실을 부인했다고 나오고 있고, 왕실의 일원은 반역죄가 아닌 한 죽일 수 없는 것이 조선의 법률이었기에 어우동의 사건은 처벌 문제를 둘러싸고 조정대신들의 논의는 일년 내내 계속되었다고 되어있다. 양반이며 종친인 어우동이 미천한 노비와도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충격이었을것이고, 종친간의 통정은 근친상간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조정은 왕실의 종친이므로 절대로 극형에 처할 수 없다는 신하들과, 아무리 종친이라도 지은 죄가 극형감이니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신하들이 극심하게 대립하게 된다.
어린나이에 왕좌에 오른 성종은 열심히 신하들의 말을 듣는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자신의 뜻데로 일을 처리한다. 과부의 재혼을 금했을 때도, 어우동 사건을 마무리 할때도 다수의 의견보다는 소수의 의견을 따르니 말이다. 소수의 의견을 따른것인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결국 어우동은 처형되고 이 사건은 조선조 최대의 섹스 스캔들로 남았다. 김별아 작가는 어우동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성종의 어린시절부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어린 나이의 왕이 되고 자신의 사랑했던 여인들과 사랑이 떠나간 여인의 이야기. 훗날 연산군이 되는 융의 생모에 대한 이야기. 융이 다섯 살때 어우동 사건을 알았다고 하니, 융의 나이 일곱 살에 사약을 마시고 죽은 생모의 이야기를 어찌 몰랐겠는가? 남자의 나라에서 어우동은 처형을 당하지만, 그녀와 통정을 나눈 사내들은 한명도 죽임을 당한 이들이 없었다. 심지어 어유소, 노공필등은 처음부터 이난의 무고라고 치부되어졌다.
역사라는 이름의 정사와 김별아 작가의 행간을 읽는 작업은 같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가고 있다. 그녀가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시대에 대한 도발이었을 수도 있고, 작가의 말처럼 오로지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사 속 한줄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김별아 작가의 글은 굉장히 곱다. 색고운 비단에 한땀 한땀 자수를 놓듯이 그녀가 쓰고 있는 단어와 문장들은 작가가 만들어낸 어우동처럼 매혹적이고 우아하다. 그러기에 분명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음에도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에서 이름이 지워지기까지, 사랑의 정념에 사로잡혔던 여인은 음녀이자 탕녀로 기록되어지지만 이 낙인은 누가 찍은것인가? 오로지 그녀만 혐오와 환멸의 대상이 되었고, 그녀와 함께 했던 이들은 노비조차도 풀려났다. 어쩌면 그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는지도 모른다. 오르지 못하는 종친의 여인을 쉬쉬하면서 서로가 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알았지만, 누구나 말하지 않았던 종친이었고 사대였던 여인. '금지된 사랑'을 다른 빛으로 그려낸 김별아 작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모험'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또한 사랑이라고 논한다면 무슨 말을 하겠냐마는, 작가의 바램처럼 소설은 가장 새뜻한 오답을 보여주고 있다. 지루한 세상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