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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12월
평점 :
아득한 글을 만났다. 누비처네에 뜻도 모른채, 목성균이라느 이름조차 생소함에도 김종완 해설이라는 글귀만 읽고는 수필계의 거장임에 그를 알기에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비처네라는 것이 '어느댁네 처'를 이야기 하는 줄 알았다. 그리 아득한 시절이 아닐듯 한데, 이해 못하는 어구들이 상당히 많다. 읽으면서 느낀다. 이글은 수필이 아니라, 어느 작가의 소설같은 느낌이 든다. 살포시 가슴이 뛰다가, 아득해 지다가, 아파오기도 한다. 목성균이라는 인물의 어린 시절, 아니 그의 어머니의 시절 부터 노년에 이르러, 어린 손자 손을 잡고 태권도장에 데리고 가는 그 시간까지 그의 시간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따라간다.
김종완님은 목성균님을 수필계의 기형도라고 칭했다. 기형도가 죽을 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었지만 사후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후배 시인들이 거의 없다고 평가하듯이, 수필계에서는 목성균이 그러하거나 그리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한말이기에 믿는다. 에세이스트의 발행인 김종완님이기에, 그가 발행하고 있는 에세이스트가 얼마나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지를 알기에 그가 한 말을 믿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으면서 한편의 소설을 읽는듯 읽혀내려가는 목성균 작가의 수필전집을 읽으면서 참 잘 읽었다 생각이 든다.
목성균님은 이미 7년 전에 작고한 수필가이다. 그의 작품이 남아있는것이 거의 없어 작품집이 절판된 후 많은 사람들이 복사를 해서 공부를 했다니, 이 좋은 책을, 그것도 전집으로 읽는 나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리라. 전집에는 2003년 발간된 <명태에 관한 추억>과 2004년에 발간된 <생명>에 실린 작품들까지 망라해서 실었단다. 그래서 양이 상당하다. 해설집을 제외하고도 장장 600페이지가 넘는다. 그런데, 이작품들이 하나같이 금쪽 같다. 그러기에 작품집 하나하나에 실려있는 제목이 있음에도 아깝고 아까워, <누비처네>를 전집에 제목으로 택했을 거다.
아내가 이불장을 정리하다 오래된 누비처네를 찾아냈다. 한편은 초록색, 한편은 주황색 천을 맞대고 얇게 솜을 놓아서 누빈것으로 첫애 진숙이를 낳고 산 것이니까 40여 년 가까이 된 물건이다. 낡고 물이 바래서 누더기 같다. - P.24
읽고나서야 누비처네가 뭔지 알았다. 아기 포대기란다. 아들은 외지에 나가있고, 홀로 몸을 푼 며느리를 보는 시아버지. 그리고 아들에게 누비처네 하나 사오라고 소액환을 보내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무섭고 위험이 있었단다. 누비처네에서 시작된 목성균님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개장국을 먹이기 위해 움직이시던 할머니 이야기까지 목성균님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수필작가는 기억력도 좋은가 보다. 어찌 그리 오래된 이야기들을 주저리 주저리 풀어 낼 수 있을까? 목성균님은 어린시절 까마득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부엌 궁둥이에 등을 기대었던 젊은 시절을 이야기 하다가, 목주사로 일을 할때 느꼈던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하다, 어느새 노년에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를. 그러다 또다시 자신과 아내에 이야기를 풀어낸다. 막힘없이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거기에 그 어구들이 너무나 곱다.
9부로 엮어진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같은 이야기이다. 그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 다를리가 없지만, 5부 생명은 가슴을 턱 막히게 만든다. 딱한번본 고모부와 고모부가 가지고온 마른 돼지 앞다리, 아내의 오라비일지도 모르는 인민군소년병을 향한 할머니의 당목수건,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미움의 세월, 거기의 자신도 닮아가고 있는 손을 보고 쓴 생명, 아버지의 삶이 보이는 아버지의 도장과 할머니의 산소까지.. 한편 한편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글은 아리기만 한게 아니다. 알밤 빠지는 소리에서는 풍광이 느껴지고, 돼지불알은 그 시절 모습과 함께 아내에대한 정이 느껴진다. 흰눈 소복하게 내리는 그길, 명태와 아내가 짠 목도리로 정을 느끼기도 하고, 파리목숨에서는 그에 필력을 느낀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쩜이리도 나와 다를까? 자신은 군고구마 아주머니를 위한것이었는데, 아주머니가 자신을 기다려준줄 나중에야 알게되는 행복한 군고구마와 9부 꽃이핀 자리에 마지막 이야기, 커피에 관한 추억까지.. 그에 글들은 시이다. 한장으로 끝나는 글도 있고, 몇장에 걸치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리하지가 않다. 바람꽃일때 찾아가겠다던 소년과의 약속도 어느덧 세월이 흐름과 같이 바래어져 버렸을텐데, 그의 글에서는 다시 살아난다. 김종완님은 목성균님의 글을 읽으면서 너무 소중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단다. 나에겐 그런 감성이 없는것이, 아니 그리 전문적이지 않아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 귀한 글들로 행복하기만 하니 말이다. 이렇게 귀한 글들을 가슴으로 읽을수 있는 이 호사가 너무나 좋다. 그만에 서정성이 참 좋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싸잡아 들고 와서 서낭신께 바치고 소원을 빌던 동멩이들. 누구의 돌멩이는 소원을 이루고 누구의 돌멩이는 소원을 이루지 못했을 터이지만 아무도 서낭신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원을 들어주고 안 들어준 서낭신의 기준은 소원의 정당성, 갖절함, 진실성에 둔, 지극히 공정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 고개 중
삽이 실권이라면 살포는 권위다. 그래서 젊은이가 살포를 든다면 지탄받을 일이듯이 늙은이가 삽을 들면 말년을 백안시 당하기 십상이다 - 살포 중
어둠 속에서 하얗게 정체를 드러내는 자리끼가 담긴 사기대접. 그것이 그렇게 얄미울수가 없었다. 사기대접은 마치 노출된 매복병처럼 '어디 한번 걷어 차 보시지, 왜-'하고 하얗게 내게 대들었지만 - 옹기와 사기 중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시계가 멈춰 선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시계가 직무를 유기한 것이 아니고 시계가 유기를 당한 것이다. 시계야 어차피 사람이 관리하는 문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기둥시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