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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200주년 기념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ㅣ 아르볼 N클래식
메리 셸리 지음, 데이비드 플런커트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9월
평점 :
제가 당신께 간청했습니까, 창조주여.
진흙을 빚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당신께 애원했습니까,
저를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
작가 메리 셀리가 열여덟 살에 쓴 <프랑켄슈타인>이 200주년을 맞이해 풀컬러 일러스트로 출간되었다. 공포 소설을 보지 못하는 내가 고급스러운 벨벳 코팅과 개성 가득한 일러스트에 반해 용기 내어 신청하고 읽게 된 책이다. 받아보는 순간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이 책은 꼭 소장해야 한다고 동네방네 소문 내기까지 했으니, 정말 이건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
프랑켄슈타인은 내가 알던 그 '프랑켄슈타인'의 이름이 아니었다?!
강렬한 문구와 함께 흔히 책의 시작과 동시에 볼 수 있는 책의 차례가 생략된 채 이 이야기의 탄생을 설명하는 서문이 나를 맞이한다. 그리고 북극 탐험을 나선 월튼이 탐험을 하며 보고 느낀 것을 마거릿누님에게 쓴 편지로 이어지니 이 책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독학을 한 탓에 항해를 하며 같이 기뻐하고 자신을 위로해 줄 친구가 없다며 아쉬움을 누님에게 토로하던 월튼은 어느 날 거의 죽어가는 이방인을 구조하게 된다. 이 이방인을 살뜰히 돌보며 그와 우정을 쌓길 원하는 월튼을 보며 자신의 과거와 닮았다고 느낀 이방인은 자신처럼 지식과 지혜를 쫓다 자신을 무는 독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준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며 드러나는 진실, 그중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사실은!! 이 이방인의 이름이 바로 '빅터 프랑켄슈타인'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내 기억 속의 프랑켄슈타인은 머리에 나사를 꽂은 초록빛 괴물인데, 그 캐릭터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고?! 이 이방인의 친구 앙리 클레르발이 그를 보며 부르던 이 대사! "아니 이런, 프랑켄슈타인!"을 읽는 순간 정말 '오마이갓!'이 절로 나왔다. 무려 이 사실을 79페이지에서 알 수 있었으니, 정말 그 충격으로 인해 뒷이야기가 눈에 안 들어올 정도였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제네바 출신으로, 공화국에서도 손꼽히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너그러운 부모님 밑에서 다정한 친구들과 공부하는 걸 좋아했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독일의 연금술사, 신비주의 철학자)의 책을 발견하게 되고 무모한 망상을 신이 나서 읽으며 현자의 돌과 불로장생의 묘약을 찾는 연구에 매진한다.
인간의 몸에서 질병을 내쫓고
살인과 사고가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인간을 파괴할 수 없게 만든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업적이겠습니까!
열일곱 살이 된 프랑켄슈타인은 잉골슈타트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그곳에서 발트만 교수를 통해 자연 철학에 빠지게 된다. 한 가지 학문에 매진한 결과 생명과 생명의 근원을 밝혀내는 데 성공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생명이 없는 것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동물과 시체를 이어 붙인 몸에 생명을 불어넣어 창조물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새로운 종은 나를 창조주이자 근원으로 창조할 테고,
행복하고 탁월한 많은 생명체들이 나로 인해 생겨나겠지.
나만큼 완벽하게 자손의 감사를 받을 자격을 갖춘 아버지는
세상에 없을 거야.'
2년 가까이 생명 없는 육체에 숨을 불어넣겠다는 생각 하나로 연구해왔던 그였지만 일이 성공하고 보니 꿈꾸었던 아름다움은 온데간데없고, 숨 막히는 공포와 혐오만 가슴에 가득했으며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의 모습을 견디지 못했던 프랑켄슈타인은 그를 홀로 연구실에 남겨둔 채 도망친다. 그로 인해 탄생과 동시에 버림받아야만 했던 그 괴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져 태어나야만 했던 그 악마,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이름조차 받지 못한다. 그저 '괴물', '악마'로 불리는 그 창조물의 슬픈 여정과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이 이렇게 시작된다.
홀로 남은 이 괴물은 아무것도 모르고 뭐가 뭔지 구분도 할 수 없었으며 사방에서 엄습하는 고통에 주저 않아 울기도 했다. 그러다 추위에, 배고픔에 마을로 우연히 가게 되고 자신의 외모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헛간에 몸을 숨긴 괴물은 그 헛간의 가족들을 보게 되고, 그들을 관찰하며 삶을 배우고 감정을 배우고 언어를 배우게 된다. 마치 부모를 보고 모든 것을 배우는 아기처럼...
자신의 외모로 인해 홀로 살아가야 했던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자신과 같은 부류의 배우자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렇게만 해주면 다시는 프랑켄슈타인의 가족을 헤치지 않을 거라고 제발 자신과 살아갈 배우자를 만들어 달라고 애원한다.
"썩 꺼져라, 이 비열한 버러지 같은 놈! 아니, 멈춰라. 너를 짓밟아 가루로 만들어 버릴 테니! 아, 너의 그 비참한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네놈이 극악무도하게 살해한 희생자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악마는 말했습니다. “인간들은 전부 추한 것을 싫어하니까. 그러니 살아 있는 그 어떤 것보다 볼품없는 내가 얼마나 혐오스럽겠나!”
"당신의 아담이어야 하는 내가 타락한 천사가 되었고,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당신은 기쁨에서 내몰았다. 온 세상에 축복이 가득하건만 오로지 나만 돌이킬 수 없어 쫓겨났다. 나는 자비롭고 선량했건만,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어."
내가 머물고 있는 그 집 사람들의 완벽한 외모는 감탄스러웠다. 그들의 우아함, 아름다움, 섬세한 이목구비까지. 그런데 맑은 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은 어찌나 끔찍하던지! 처음에는 거울 같은 물에 비친 내 모습이 정말로 나라는 걸 믿을 수 없어서 흠칫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괴물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는 쓰디쓴 절망과 굴욕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상상 속에서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는 상황을 천 번쯤 그려봤다. 그들도 혐오스러워할 테지만, 상냥한 태도와 친절한 말로 그들의 마음을 사면 나중에는 나를 사랑해 줄 거라고 상상했다.
"저주받을 창조자! 당신조차 역겨워서 고개를 돌릴 만큼 흉측한 괴물을 왜 만들었는가? 신은 인간을 가엽게 여겨 자신의 모습을 본떠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만들었는데, 내 모습은 추잡하고, 동시에 인간과 너무 닮아서 더 소름이 끼치니. 사탄에게도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동료가 있거늘, 나는 혼자 미움을 받는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불쌍한 괴물의 최후가 궁금해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음산하면서도 섬뜩한 일러스트가 이야기에 몰입감을 더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 <프랑켄슈타인>은 처음엔 월튼의 편지로, 그리고 이방인 프랑켄슈타인의 과거 본인 이야기로, 이어 프랑켄슈타인을 찾아온 괴물 본인의 이야기, 마지막엔 현재로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과학만능주의로 탄생했던 괴물을 피해 다니며 두려워하고 아파했으며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잃게 된 프랑켄슈타인의 괴로움은 나에게 가해자의 변명으로 들렸다. 프랑켄슈타인의 무책임한 태도가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 괴물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프랑켄슈타인이 함께했다면... 태어남과 동시에 버림받은 존재, 괴물의 고독과 울분이 더 크게 와닿았아 안타까움이 더 컸다. <프랑켄슈타인> 읽다 보면 과연 누가 진짜 괴물인지 묻고 싶어진다. 정말 책 시작과 동시에 적혀 있던 문구로 프랑켄슈타인에게 따져 묻고 싶다.
제가 당신께 간청했습니까, 창조주여.
진흙을 빚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당신께 애원했습니까,
저를 어둠에서 끌어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