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올게요, 오래가게 - 기꺼이 단골이 되고 싶은 다정하고 주름진 노포 이야기
서진영 지음, 루시드로잉 그림 / arte(아르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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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올게요, 오래가게

서진영 글 | 루시드로잉 그림 | 아르테

여행 에세이 / p.288

누가 1등이다, 어디가 최고다,

여기가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집이다 하는 평을 내리기보다 좀 더 다양한 맛, 다양한 음식이 공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69

「또 올게요, 오래가게」에는 동네 한쪽에 세월을 짐작할 수 없는 오래된 가게 24곳 가게를 아날로그 감성이 더해진 일러스트와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오래된 가게를 뜻하는 일본어인 노포가 아닌 오래된 가게가 더욱 오래가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지어진 오래가게, 30년 넘게 또는 2대 이상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매력적인 가게의 모습부터 그 가게 주인이 들려주는 역사를 들으며 그 시절의 추억 그리고 향수를 떠올렸다.

나 또한 어릴 때 주구장창 다니던 책 대여점이 있었다. 거의 매일 눈도장을 찍으러 다녔던 터라 긴 연휴가 있을 때마다 사장 언니가 빌려본 것 중에서 보고 싶은 거 다 가져다 읽고 오라며 수십 권을 한 번에 빌려줄 정도였다. 나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있던 그곳은 어른이 되어 갔을 땐 이미 다른 가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쩌면 그곳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골집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은 그저 새로 생기고 사라져가는 수많은 가게를 여행하듯 하나하나 체험해나가고 있다. 괜찮으면 여러 번 더 가보긴 하지만 그 가게에 그 가게 주인과 소통하며 지내지 않는다. 우리 동네조차 어떤 가게가 있고 어떤 이야기가 있는 곳인지 모른 채 지내기 바쁘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만의 가게를 잊어버리고 지내기 시작한 게...

인연이 대를 잇는 거다.

p.59




책을 받아본 순간 '이 책 너무 감성적이다!'를 외치게 했던 「또 올게요, 오래가게」는 그 가게의 세월이 쌓인 듯 겹겹이 쌓은 펜 터치로 그려진 일러스트를 만나볼 수 있다. 차례부터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따뜻함이 느껴지며 앞으로 만날 24곳의 가게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래 그 자리에서 이어온 시간 속 다양한 오래가게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왜 여기서 살고 있느냐 생각하면, 지킴이여.

고인돌 지킴이, 느티나무 지킴이, 약방 지킴이, 고향 지킴이.

세상에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단 말이지.

p.270

진주비빔밥의 나물 가짓수나 색깔을 정해놓지 않고 제철에 나는 좋은 것을 쓴다는 백 년 가게 천황식당을 통해 진주비빔밥의 유래도 알게 되고 분명 간판이 분식인데 떡볶이도 순대도 김밥도 없는 찹쌀떡과 도넛 딱 두 가지가 다인 덩실분식을 통해 '분식'의 진정한 의미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라 알려진 부산 동래에 있는 만수무강의 만수탕을 보며 어릴 적 다녔던 공중목욕탕을 떠올리기도 했고,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이디오피아에서 온 군인들을 문화를 알리는 장소가 된 로스터리 전문점 이디오피아집의 이야기를 보며 그 시절 아픔도 느낄 수 있었으며 아마존닷컴 원예 부문 수공구 카테고리 TOP 10에 올라 화제가 된 호미 영주대장간을 보며 괜스레 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저마다 가지고 있던 그들만의 역사를 일러스트와 함께 제대로 들여다본 기분이 든다.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가게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울림 또한 전해져 온다. 또한 맛있는 식당을 넘어 멋있는 식당으로, 단순히 오래되어서 유명한 식당이 아니라 '오래 이어올 만하다'고 인정받는 식당으로 저마다 목표를 가지고 운영해가는 가게들을 나도 만나볼 수 있길 바라본다.

세월에 따라 변해가고 사라져 가는 수많은 가게가 있겠지만 '또 올게요, 오래가게'라고 외칠 수 있는 가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그들의 역사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어떤 가게들이 있나, 어떤 얼굴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나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그런 시간을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애틋한 기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p.284

ps. 책에 주소가 나와있으니 여행을 가봐도 좋을 거 같다.

또 올게요, 오래가게 인상 깊은 글귀

지역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이웃을 통해 장만하는 선순환이 우리네 사는 모습을 더 풍요롭게 할 거라 믿는다. 코앞의 이문을 쫓지 않는 이유다. p.23

장사가 안되어도 별 수 없다. 맛이 변해서는 안 되니까. 그러니 배운 대로 아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할 뿐이다. p.55

SNS 인증 사진을 찍는 곳으로 소비되기보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 나누었던 이야기, 그날의 분위기가 오래도록 추억으로 되새겨지길 바란다. p.73

돌이켜보면 참 용감했다. 지식이나 기술이랄 것도 없이 일하면서 깨친 게 많았다. 그게 또 당연한 시절이었다. p.136

종이를 거래하는 일이지만 모든 것의 핵심은 사람이었다. p.155

누구든 몸을 깨끗이 씻어 마음까지 깨끗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p.163

무엇을 팔든 장사는 이문을 남겨야 하는 일이지만 돈만 벌려고 해서는 결코 오래 할 수 없다. 계속 찾아야 한다. 손님들 가려운 곳을 찾고, 내 일하는 제미도 찾고. p.181

씨앗은 도처에 있다. 싹을 틔울 우리의 마음 밭이 휑할 뿐.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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