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_지음 ㅣ유혜자_옮김ㅣ열린책들

제목과 책표지만 보고선 무슨 내용일지 전혀 감이 안 왔던 책 <비둘기>, 시작부터 진도를 확 빼시며 강펀치를 훅훅 날리시더니 하루에 일어나는 감정 변화가 변화무쌍했던 주인공이 잠자리에 들 때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로 마지막 펀치를 날리며 결국 나를 KO 시킨다. 이 작가님 뭐지?!

"내일 자살해야지."

그렇게 말하고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p.87

소나기가 한바탕 내린 어느 날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니 엄마가 온데간데없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 후 조나단과 어린 누이동생은 그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친척 아저씨를 따라 농토에서 일을 거들며 살아가게 된다. 어느 정도 조나단이 농사꾼으로 재미를 붙일 무렵 아저씨는 그를 군대에 입대시키고 제대하고 왔을 땐 누이동생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고 없다. 아저씨가 정해주는 여자와 결혼을 했으나 결혼 4개월 만에 아내가 사내아이를 낳더니, 같은 해 과일 장수와 눈이 맞아 줄행랑을 친다. 이러한 모든 불상사를 겪고 나자 조나단은 사람들을 절대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을 멀리해야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난생처음으로 독자적인 결심을 하며 파리로 떠난 조나단은 어느 은행의 경비원으로 취직을 하고 코딱지만 한 방을 얻는다. 공동변소 옆 세면대를 함께 사용해야 했지만 온전히 자기 혼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으므로 문제 될게 하나 없다. 그렇게 10년이 가고 또 10년이 흐르며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살며 그 방을 소유하는 날이 머지않았건만 비둘기 사건으로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뒤흔들리게 된다.

그곳은 조나단에게 불안한 세상 속의 안전한 섬 같은 곳이었고, 확실한 안식처였으며, 도피처였다.

P.11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공용 화장실로 가려고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비둘기! 그 비둘기로 심장 마비나 뇌졸중 혹은 최소한 혈액 순환 장애 정도의 증상이 나타났을 거라며 집안으로 도망쳐 침대에 누워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하느님을 찾으며 비둘기로부터 자신을 구해달라고 기도까지 한다. 그리고선 멀쩡한 집을 두고 비둘기가 보이지 않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가야 한다며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뭐지?! 비둘기가 아무것도 안 한 거 같은데 왜?!' 조나단의 이상행동으로 제대로 궁금증에 시동이 걸려 뒷이야기를 훅훅 읽어 나갔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장편소설 <비둘기>의 이야기는 하루에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침부터 조우하게 된 비둘기로 인해 시작된 불행이 출근한 오전과 점심을 먹은 오후, 그리고 저녁까지 이어지니 그의 감정을 따라 분노했다 절망했다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감정으로 인해 나까지 정신이 점점 피폐해져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중에 잠에서 깨어난 그가 어른으로 성장해 파리에서 늙어 빠진 경비원이 된 것이 꿈이고 사실 자신의 집 지하철에 갇혀 있는 게 현실일 거라며 왜 사람들이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는 거냐고 생각하는 부분에선 나조차 정말 이 모든 게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현실감 있었던 이야기였다.



비둘기가 던진 불행이 못에 걸려 바지에 구멍이 생기는 사소한 일에도 부채질되어 온 세상을 산산조각 내고 재로 만들어 버리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동정심과 적선에 빌붙어 살아가는 거지를 보며 질투를 했던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엉덩이를 보인 채 용변을 보던 거지를 보며 필요 불가결한 자유를 자기가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만족감을 느끼며 다리에 더 힘주어 은행 문 앞에 서있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비둘기로 인해 자신의 집에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그 거지의 모습을 대입하더니 불행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고 급기야 호텔에서 잠자리에 들 땐 내일 자살을 해야겠다는 결론에까지 이른다. 이랬던 그가 공포를 이기고 자신의 안식처였던 집으로 돌아갔을 땐 나마저 그 공포감에서 이긴 거 같아 몇 배로 더 기뻤다.

소박한 생활을 하며 만족해 살던 주인공이 비둘기 하나로 점점 불안과 분노로 휩싸여 하루를 망쳐가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가 뭘까? 어쩌면 주위에서 그리고 나조차도 살아가며 느껴보았을 익숙한 감정이었을지 모른다. 분노와 절망까지 일으켰던 그 이유가 결국은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으니, 정말 이 세상 마음먹기에 달렸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다섯 편의 장편소설 중 이제 '깊이에의 강요'만 남았다. 어떤 내용으로 또 나에게 큰 메시지를 던져줄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