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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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빈번하게 매체를 통해 누군가를 '혐오'하는 상황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안에는 이유가 있는 '혐오'도 있고, 이유가 없는 '혐오'도 있다. 사람이 사람을 '혐오'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개인이 가진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어느 정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겨지지만 '원하지 않는 것',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해외 사례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누군가를 '혐오'하는 사회, 그 사회 속에서 살다보면 나는 누군가의 '혐오' 대상이 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과연 '혐오'를 피할 수 있는 기준, 즉 잣대는 누가 만든 것이며 그게 정말 올바른 잣대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시작한 <혐오사회>는 단호하고 강력한 말투로 지금의 현실을 꼬집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별의 별 일들은 가끔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혐오'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혐오'지만 <혐오사회>를 읽다보면 그 이유조차도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서는 혐오를 느끼는 사회에 대해 작은 부분부터 살펴나가기 시작한다. 사랑, 희망, 걱정,  증오, 혐오와 멸시로 나누어 각 상황에 대한 사례를 통해 혐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이야기들은 직설적으로 지금 상황이 바로 '혐오'라고 표한하기 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게 바로 '혐오'이자 옳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그 후에는 동질성, 본원성, 순수성으로 분리된 혐오와 증오를 살펴보게 된다. 처음에 이 파트를 들어가기 전에는 동질성, 봉원성, 순수성으로부터 혐오의 원인을 찾고 명확한 해결책이 제시될 거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혐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되었고, 그 속에서 스스로 해결책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누군가로 인해, 혐오사회를 살고 있다. <혐오사회>에 나오는 사례들처럼 그 누구도 그들과 우리를 경계지어 그들이 나쁘고 우리는 착하다라고 말할 수 없다.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해결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혐오라는 감정을 만들기 전에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혐오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다. <혐오사회>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혐오가 사라질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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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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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장편 소설 <예언>, 이 책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예언에 대한 기대 또한 놓을 수 없었다. <예언>은 몇 십년 전 대한항공 추격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책에서 떠오르는 몇 가지를 키워드로 꼽아본다면 '힘의 대결'과 '복수', 그리고 종래의 '화해'이다. 읽는 내낸 <예언>이라는 책 제목과 여러 상황을 맞춰가며 예언에 대한 이야기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서야 이 예언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되었고, 이들 키워드 모두는 '예언'을 바탕에 두고 있다.

 

낯선 이름과 상황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것과 동시에 과거로부터 현재로의 진입을 시도한다. 하지만 시간의 이동에 따른 위화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흔히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몇 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나오는 뻔히 알고 있는 미래가 아니다. 작가가 설정한 '예언'이 곧잘 등장하지만 이내 독자는 그 부분을 잊고 등장인물과 한 마음이 되어 그 인물이 가고자 하는 목표로 내달린다.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중간중간 이쯤되면 등장인물의 방향이 틀어지고 누구나 아는 결론으로 치닿게 되는 '예언'이 아닌 '예상'을 하게 되지만, 이 또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는 알 수도 있는 흔한 결론을 작가의 장치에 의해 새로운 결론이 되었단 생각도 들었다.

 

과거의 사건과 연계되어 구소련, 러시아, 한국, 미국, 일본 등 여러 국가가 등장하여 그들의 진짜 모습을 내보인다. 아마도 <예언>은 이전의 사건과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들어 준다. 물론 이전의 사건을 알던 사람이 본다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겠지만 말이다. 결국 주인공이 뜻하던 '복수'를 이루어냈는지 아닌지는 끝까지 읽어야만 알 수 있다. 그리고 종래의 '화해' 그 의미까지도 말이다. 진정한 '복수'이자 진정한 '화해'가 되었는지는 독자에 따라, 즉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은 결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더 나아가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져다 준다.

 

<예언>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는 한 곳을 향한다. 그리고 그 한 곳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복수에 대한 의미, 이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마음에 남는 구절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다. <예언>의 시작이자 마무리를 짓는 '복수'에 대한 의미, 이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사람들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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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 명심보감
박재희 지음 / 열림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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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단 떠오르는 것은 별로 친해지지 못한 '한자' 그리고 '한문'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라고 해서 '한자'와 '한문'이 매우 친숙하여 이 책이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으로 선택했다고 하면 그것은 완벽한 거짓말이다. 마음공부의 필요성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마음공부'라는 것에 대한 관심은 조금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마음공부에 대한 방향성이 계속 뒤바뀌고 있어서 늘 새롭게 접근하는 마음공부일뿐 사실은 끝없는 관심을 주고 있는 분야 중에 하나이다. 예전에 명심보감을 원문 그대로 배울 기회가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가는 내내 마지막에 있을 시험이 신경쓰여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펼치면 세로로 써진 한자와 한문이 나를 반기니, 집중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공부를 하더라도 딴짓을 할만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명심보감 책은 앞이나 뒤나 모조리 한문과 한자의 향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명심보감에 실려 있는 좋은 문장으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부작용만 남았다.



<마음공부 명심보감>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남기지 못한 명심보감의 명문에 대한 아쉬움과 마음공부에 대한 끝없는 관심으로 읽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한문과 한자의 나름의 '공격'을 당할 거라고 굳게 믿고 편 책은 의외의 모습이었다. 책 표지에서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렇게 사람을 고요하고 평안하게 만드는 문장이 실려있다니. 읽기 전의 표지에서 받은 느낌과 읽으면서 받은 표지의 느낌,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을 책장에 꼽기 전에 바라본 표지의 느낌 모두 한결 같았다. 어떤 책은 읽기 전과 중, 그리고 후의 표지의 모습이 매번 새로워지는 책이 있는데, <마음공부 명심보감>은 늘 한결같이 마음의 가라앉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라앉았다고 해서 기분이 우울하거나 우중충한 상황이 아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차분해지는 느낌 그 자체였다. 다시 돌아가 한문과 한자의 공격은 전혀 없었으며, 그렇다고 한자와 한문이 1개도 실리지 않았다는 것은 이 또한 거짓말이다. 매우 적절한 분량으로 실려있는 한자와 한문은 이 책이 한문으로 쓰여진 명심보감을 읽고 있구나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한자 밑에 쓰여진 풀이가 더 크게 눈에 들어오기 떄문이기도 하고, 흘러가는 이야기 그 자체가 명심보감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의 근본을 다스리는 한 마디까지 세 분야로 나누어서 명심보감의 명문을 살펴볼 수 있는 <마음공부 명심보감>. 어렵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선입견을 없애고 명심보감을 원문으로 읽고 싶은 욕심을 가질 수 있게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읽은 사람으로서 원문으로 다시 읽고 싶은 욕심이 나서는 아니고,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한문과 한자의 장벽을 낮추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순간, 다른 상념이 들지 않는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 <마음공부 명심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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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3 -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 : 더 이상 인간은 외롭지 않았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3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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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미술관' 또는 '박물관'에 대한 조예가 그리 깊지는 않았다. 역사책이나 미술책에서 볼 법한 작품과 문화재를 살펴보는 것에 대한 흥미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나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문화생활에 잘 동참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에 대한 원인은 '관련 지식에 대한 부재'로 인한 것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한다. 알고 있는 내용이 무척 편협한 상황이라 어떤 좋은 '문화'를 봐고 감흥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문화'가 무엇인지 안다고 해서 거기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도 할 수 없다. 어떤 배경, 어떤 사건을 통해 그 문화가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주변 지식은 더욱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에 대한 부재'를 채워주는 시작점이 된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는 시리즈 구비는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와 미술. 역사 따로, 미술 따로 봐도 어려운 것을 한 번에 공부하고 익혀서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서 살펴보라고 하면 흥미를 잃게 마련이다. 심지어 보통의 책에서는 봐도 모를 사진을 너무도 다양하게 제시하거나 거의 제시되지 않는 사진으로 인해 텍스트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다 끝나는 것이 일수이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는 많은 작품을 제시하지 않는다. 정말 미술사에서 알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만 짚고 넘어간다. 그 외에는 제시되지도 않고 궁금해할 새도 없이 꼼꼼한 설명과 옛날 이야기와 같은 푸근한 설명이 채워주고 있다. 혹여나 나와 같이 그림만 보여줘서는 이해못할 작품들은 실사 사진이 아닌 스케치 도면으로 풀어 꼼꼼한 설명이 따라 붙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요점 정리하듯이 한 페이지로 정리가 되어 있는데, 이 역시 학교 공부하듯 텍스트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이미지와 함께 들어있어 앞에서 읽은 내용이 정리가 되지 않거나 떠오르지 않을 때 읽고 넘어가면 이만한 복습이 따로 없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3권은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라서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지만 전혀 종교색이 느껴지지 않고 아주 먼 마음의 거리를 가지고 있었던 미술관에 대한 친근감도 함께 느끼게 해주었다. 부담없이 미술사에 대한 기초를 쌓고, 어디가서 부재된 지식으로 낭패를 보지 않을 정도의 수준! 이를 원한다면 이 책이 적당하리라 생각한다. 미술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고 관련된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칫 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미술사라는 분야에 있어서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설명은 찾기 어려우리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연필 선으로 표현한 그림들이 마음을 끌어당겨 그림을 보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하는 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이번에 읽은 것은 시리즈 중의 일부인 3권이라 혹여 앞 권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중간에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나름 '흠칫' 놀랐지만, 앞선 역사를 모르더라도 책을 읽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만 읽어봐도 좋을 책이며, 부담없이 아주 쉽게 그리고 명확하게 미술사를 공부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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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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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개들이 식사할 시간>이라는 제목이 가진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무심코 넘긴 몇 장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잔인함이 눈을 감게 만들었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을 잘 보지 않는 편이라, 글로 표현된 그대로가 이미지로 다가오는 느낌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그런 진득한 피비린내만은 아니다. 극적으로 잔혹함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외로움, 슬픔 등 다양한 감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단편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다른 글에 비해 짧은 지면과 텍스트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작가만의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 재주 그 어떤 말을 붙여도 부족할 정도의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야기는 밝고 어떤 이야기는 흐린 구성이 아니라 일관성 있게 계속 흐린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무섭기도 하고, 사람이라면 이런 선택과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며 인생을 살아가는거지라는 공감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저래도 발목을 붙잡는 무서운 공포는 마음 한 켠을 두려움으로 가득 채우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책을 내려놓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끝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절대 선과 절대 악으로 구분되어 있는 결말이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당황스러울 정도의 열린 결말이 등장한다. 작가가 설치해 놓은 여러가지 요소들이 이 책이 단순하게 잔인한 글이 아니라는 것을 열정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잔혹한 내용을 다시 읽으라고 하면 조금의 망설임은 들 것이다. 사실 읽는 동안도 다음 내용을 알 것 같은 부분은 실눈을 뜨고 보거나 다른 부분을 읽는 것에 비해 조금 더 속도를 내고는 했다. 이 모든 것이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 더 공포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읽지 못할 글이라는 말은 아니다. 읽고 나면 무엇인가 얻어가는 것이 있는 글이지만 단지 읽는 내내 조금의 망설임은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고, 이 상황에 대한 실감이 더 놀라게 하는 놀라운 소설 <개들이 식사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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