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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지 못한 모든 것
에밀리 파인 지음, 안진희 옮김 / 해리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말하지 못한 모든 것'이 대체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갖고 이 책을 보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에 대해 딱히 정보라고 할 것 없이 읽기 시작했고, 다 읽기 시작한 뒤에야 이 책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표지와 이 책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페미니즘이 맞물리는 느낌이 정확하게 들었다.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대놓고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책은 아니다. 글의 난이도를 생각한다면 정말 쉽게 읽히는 편에 속하고, 딱히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은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충분히 내면적인 의미는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단편으로 엮어진 듯 하지만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결국 다 이어져있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각각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가족 속 저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각이 단편으로 느껴진 내용을 좀 살펴보자면, 첫번쨰는 알코올 중독에 대한 것이다. 저자가 아닌 저자의 아버지가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물론 아버지는 끝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병이 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물론 그 끝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치닿을 것 같았으나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아버지의 죽음보다는 아버지가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여동생과 자신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반응에 대한 것, 마지막으로 알코올중독에 대한 아버지와 자식의 다른 생각 등에 대한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 다음 이야기가 당연히 다른 이야기일 거라 생각한 것과 달리 '불임'에 대한 이야기 역시 앞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임신을 원하지만 임신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그리고 그로 인해 여자의 입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잘 표현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는 부모님의 이혼(결국 이혼은 하지 않았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수십년 전 별거를 시작했지만 결국 이혼에 대한 합의는 이루지 않았다는 것, 이제는 서로 말하지 않았던 시절을 건너 안부 정도는 주고 받는 관계로 다시 정립되었다는 것을 보며 이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밖에도 출혈에 대한 이야기, 나와 시험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특히 출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표현들이 많다. 고통과 아픔, 그리고 약간의 부끄러움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과정, 그것이 글 속에서 저자가 지향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표면적으로 드러난 페미니즘은 아니지만 읽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끔 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낯설지만 결국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한, 말하지 못한 것들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