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뛴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심장도 뛰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메리칸 - The Americ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적막 속에서의 불안함, 소외 속에 잠겨 있는 불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트 갓파더 - The Last Godfath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심형래, 그는 여전하다. 그것이 매우 반갑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트 갓파더 - The Last Godfath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무거운 제목과는 다르게 영화는 심형래 표 영화였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이들 역시 그렇게 알고 봤을 것이다. 그의 영화는 명작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나, 훈훈한 감동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탐탁지 않을 수 있겠지만 Killing time으로, 그리고 코미디 영화론 제격이다.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 그게 바로 한국감독인 심형래 영화다.
  심형래, 매우 독특한 감독이다. 코미디언이면서 공룡 같은 괴수영화만을 고집했던 감독이다. 그의 창작이유는 솔직히 기억하기 힘들 만큼 특별한 구석은 없다.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의 산물 정도일 것이다.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처럼 코미디와 폭력물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이는 그런 감독도 또한 배우도 아니다. 그는 언제나 심형래일 뿐이며, 그걸 아는 관객이라면 그의 영화에서 ‘황해’나 ‘심장이 뛴다’와 같은 인간의 성찰 문제나 사회의 쟁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나마 논쟁이라면 전작보다 좋은 작품이 나오냐 아니냐 하는데 이것 역시 과연 심형래 감독에게 요구할 수 있는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의 영화에서 출연진들의 뛰어난 연기력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몰입하면서 만든 작품들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각본이란 면에서도 그렇다. 코미디가 언제 치열한 문제의식을 갖고 만들 필요가 있을까? 코미디는 전체 스토리를 갖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매 장면에서의 즐거움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The War’에선 CG가 어느 정도 됐느냐 하는 것으로 논쟁이 일었다. 이 영화는 코미디언인 만든 영화지만 분명 코미디는 아니다. 그렇다고 멜로 영화나 현실주의 영화도 아닌, 역시나 시간 때우기용 영화다. 미국 관객들을 겨냥한 작품이든 한국인을 겨냥한 것이든 말이다. 그 속에서 잠시나마 인생의 고달픔을 잊으면 되는 그런 영화다. 아니면 억지로라도 만들 수도 있는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위해 만든 영화이거나 할 것이다.
  과연 ‘라스트 갓파더’라고 다를 것이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이 영화 역시 킬링 타임용 영화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대목이나 방학특수를 이용해서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는 영화다. 그 속에 심형래표 영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즐거움 이외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그의 전작과 비교해서 잘됐네 아니네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그런 것을 별개로 해둘 정도로 그냥 오락물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하는 문제만 고려하면 된다. 이것만 고려한다면 그의 영화 ‘라스트 갓파더’는 재미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우선 고민거리가 없다. 매 장면마다 쏟아지는 그의 변치 않는 심형래표 액션은 정말 재미있었다. 진부할 수도 있겠지만 코미디가 새로운 창작을 통해 관객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것이든 아니면 어떤 작품을 패러디하든 상관없다. 사실 코미디 자체가 누구 것을 베껴서 웃음코드를 찾는 것, 아닐까? 또한 아이들이라도 웃기게 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어른들이 웃는 코미디가 성인용 빼곤 특별하게 달리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어른이라도 어린이와 웃음을 공유하는 것이고, 차라리 어릴 때의 향수를 자극할 수도 있다. 심형래를 즐겼던 세대들이 오늘의 40-50대를 포함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영화 마케팅 때문일 가능성이 많겠지만 최근 그가 나온 TV 프로그램에서 그의 역량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는 아직도 현재의 세대에 통하고 있는 것이다. 질에 대한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가 사용하는 방식은 지금도 웃기고 우리는 그의 방식에 익숙해있다. 그는 아직도 심형래인 것이다.
  영화 마케팅에서 애국주의 편승이란 문제점이야,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 영화라면 그런 것이라도 이용할 것이고, 그것은 심형래 감독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감독이 만든 영화에서 보인 그 수많은 성조기들을 보면서 단순히 충성을 위해 영화에 배치한 것만은 아닐 것이란 사실을 다 알 것이다. 미국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인을 감안해서 만든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미국인 감독이 연출한 작품에서 ‘원더걸스’가 노래 부른다면 그것이 좀 이상할 것이다. 한국감독인 심형래 감독의 애절한 조국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영화는 미국인만을 타깃으로 삼지 않고 그 속엔 한국인도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의 모습은 지금도 각종 매체에서 성공한 한국인들이라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대담 프로그램이나 성공 스토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인의 로망에도 있을 것인데 그것으로 심형래 감독을 비판한다는 것은 사실 공평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라스트 갓파더’를 보면서 관객들이 잊곤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심형래란 코디미언이 감독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감독 이전에 코미디언이란 사실이다. 그는 우리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 그에 대한 비판이 어떤 것이든 그것은 영화 외적인 요소다. 전작들과 비교해서 여러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거야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로 겪는 문제다. 심형래이기에 그런 문제가 주가 되면 곤란하다. 얼마나 많은 감독들이 멋진 작품 이후 형편없는 작품을 만들었던가를 생각하면 말이다. 어마어마한 거장들도 하기 마련인 문제를 심형래이기에 비판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심형래 감독은 성공을 위해 달리고 있다. 그는 분명 노력하고 있는 감독이며, 그의 작품이 매번 성장만 할 수는 없어도 그는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영화감독이다. 그의 작품에서 사랑하는 연인의 멜로나 엽기적인 공포와 폭력으로 가득 찬 액션을 기대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감독이기에 그의 영화에는 한국에 대한 관련이 없을 수가 없다. 그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성공하고 싶어할 것이고 그게 또한 마케팅 아닐까? 돈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것은 오늘날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생존전략일 뿐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바로 심형래 감독이 자기만의 색깔로 만든 영화이고, 관객의 취향에 상관없이 그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으로 들어서면 심형래의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 때, 그 속에서 그냥 웃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해 - The Yellow Se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속의 거침없는 폭력은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러웠다. 마치 격렬하게 파도치고 있는 황해의 적막함이랄까? 아니면 거칠게만 흐르고 있는 한국사회의 한 일면이 그렇게 여과 없이 표현되어서일 것도 같다. 파괴적인 속도를 보여주는 자동차 추격전은 이 영화의 백미일 것이다. 차들의 과격한 충돌 속에 묘한 대리만족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살고자 하는 광기와 죽이고자 하는 광기의 충돌은 두 명의 천재적인 연기자들이 연기력과 맞물리면서 더욱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아한 표현 뒤에 숨겨진 영화의 잔혹한 진실이 묻히는 것은 아니다. 나홍진 감독은 전작인 ‘추격자’보다 영화를 더욱 우울하게 형상화했고, 가증스런 현실의 이면을 집요하리만치 추적하고 있었다.
  영화 ‘황해’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병적 증후군을 형상화하고 있다. 영화는 소수자 영화이면서 소통부재의 현실을 담은 영화다. 거기에 ‘사랑과 전쟁’이란 TV 드라마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부부의 소통문제가 담겨 있었고, 또한 어느 부부의 오해로 붉어진 비극이면서, 밑바닥으로 내몰린 중국동포의 처절한 생존기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얽히면서 희생과 배신을 당연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냉소가 깔려있다.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현대인의 고독한 소외감을 표현하듯, 영화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인간의 절박함이 그대로 투영됐다. 인간이 너무 외로워 보였다.
  난무한 폭력 속에서 인간미는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익과 배신이 다반사였고 신뢰는 자취를 감추었다. 믿을 곳은 하나도 없었고, 위로 받을 공간은 하나도 없었다. 배신에 대한 대가는 언제나 복수극이었으며, 용서나 화해는 돋보기를 들이밀어도 볼 수 없었다. 새로운 사실주의인 것처럼 모든 것이 희망찬 것은 하나도 없고 비극으로만 치닫고 있었다. 영화 속의 도끼는 이상하리만치 관객의 시선을 끌었고,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영화 속의 세상은 정의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흉흉했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감춰진 이면의 폭로일 것이다. 정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가장 기본적인 관계인 부부 관계의 소통부재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소통의 단절 속에 배신이라는 믿음이 거세지면서 발생하는 인간파멸의 모습은 남의 모습 같지가 않았다. 한국 사회 주변에 언제나 일어나는 볼썽 사나운 모습이다. 여기에 인간 목숨을 거래하는 장면이 시장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가치 하락 수준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목숨 하나만 제거해주면 모든 것이 풀릴 것이란 이야기에서 생명경시를 느낄 수 있지만 인생의 밑바닥까지 하락한 연변의 조선족인 ‘구남(하정우)’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거라도 해야 모든 것이 풀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는 사람을 죽이러 황해를 건넌다. 불법으로 말이다.
  ‘구남(하정우)’은 모든 것이 빼앗긴 조선족이다. 그가 보여주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 해서 괴로운 현실을 탈피하고자 한 어느 조선족의 비애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밑바닥에 떨어진 자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현실의 우울함을 벗어나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해야 할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기준이 도덕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리다. 생존이 위기인 상황에선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자를 죽이라는 청부에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자괴감만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삶의 안정이 거세된 자의 비애가 그를 통해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버림받은 자에겐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그는 결국 버림받았다. 사회적 약자에겐 너무 익숙한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세상의 밑바닥으로 몰아가는 '면가(김윤석)'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었다. 그에겐 돈 이외엔 아무것도 필요 없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인정사정 봐주질 않았고, 배신과 살인을 밥 먹듯이 했다. 그런 그를 야멸차다고, 아니면 냉혹하다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런 기준을 가슴에 담지 않는 자에겐 필요 없는 제약일 뿐이다. 차리리 그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런 인간은 현실에서 엄연히 존재하며, 사람들의 도덕적 평가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들 만큼 강한 자란 사실이다. 그런 그에게 세상은 어쩌면 관대한지 모르겠다. 그를 통해 얻는 이익을 위해 타인의 불행을 조장하는 행위는 영화 속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가 도끼를 들고 밤거리를 돌아다녀도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는 현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한국사회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가’에게 ‘구남’은 한 번 이용하고 버릴 무가치한 존재로 보인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다. 특히 ‘구남’을 만났을 때,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빙긋이 웃으면서 죽이고자 달려드는 그의 미친 존재감은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자신을 악용한 자가 자신을 삭제시키려 달려드는 상황, 부조리하지만 한국 사회엔 이제 익숙한 상황이다. 그 속에서 쫓고 쫓기는 장면은 차라리 우화였다. ‘구남’ 자신이 읊조린 것처럼 다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비애와 자신을 이처럼 만든 자들에 대한 분노는 정당했지만 슬프기도 했다. 그의 복수가 성공한다 해도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있을 수 없었고 고향인 중국 연변으로 가기엔 너무 힘이 없었다. 그래서 황해인지 모르겠다. 영화 ‘황해’의 마지막 장면인 황해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바다 같은 세상 앞에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괴롭게 보여준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질식된 이후 은행 창구에서의 어이없고 기막힌 장면은 이 영화의 과격한 정직함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희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현실에 대한 과격한 냉소인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1-01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novio 2011-01-01 02:06   좋아요 0 | URL
저도 인상 깊게 봤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리뷰를 쓰실 것 같은데 무척 기대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