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칸 - My Name Is 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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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찾기 참 힘들다. 그러나 찾아야 한다. 우리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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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칸 - My Name Is K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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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협할 수 없다는 맹신과 보복을 해야 한다는 분노가 결합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영화 ‘내 이름은 칸’은 그에 대한 답을 주는 영화다. 나도 선입견으로 세상을 보나 보다. 영화가 시작될 때, 이 영화가 인도영화란 것을 처음 알았다. 언뜻 편견 때문에 과도한 표현력으로 인해 몰입을 방해하고 작품을 제작하는 수준도 열악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런 선입견들은 깨지고 말았다.
  미국의 머나먼 길을 걸어가면서 대통령을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는 좀 기이한 이야기의 시작은 충분히 관객을 흡수하는 도입부였다. 그것도 자폐증 환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미국에선 비주류인 어느 남자가 그렇다는 것은 이 영화가 담을 주제가 평범하지 않을 것 임도 암시한다. 사회적 소수자의 모습과 그 인간적 고통, 흔한 소재이고 흔한 주제이겠지만 그 흔한 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흔한 약점과 병폐는 영화에서 다시 한 번 고스란히 재생되는 것이다.
  IQ 168이면서도 자신이 자폐증인지도 모르고 보낸 어린 시절은 리즈완 칸(샤룩 칸)에겐 이중적인 인생을 살도록 만들었다. 천재였지만 인도교육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교육기관 밖에서 특별하게 교육받아야 했다. 유별난 관심을 받은 덕에 자신을 개발할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가족 내에서의 충돌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인간적 사연도 있었다. 이런 내적 갈등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은 평등하고 차별되어선 안 된다는 신념을 이어받은 주인공 칸에게 인도는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빈번한 물리적 충돌의 장으로서 종교적 고민을 태생적으로 주고 있는 외부적 환경이다. 믿음이 폭력으로 인해 복수심을 일으키면서 종교에서 가르치는 자비와 헌신은 결코 자리할 수 없는 종교적 분쟁은 이슬람교도인 그를 힘든 선택으로만 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결코 순탄할 수 없는 생활을 할 수 없었고, 그것을 극복해야 할 숙명을 갖고 태어난 듯, 그는 그의 주변과 충돌해야 했고 언제나 희생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그를 지탱하도록 한 것은 그의 어머니의 신념이다. 모든 이들은 평등하다, 종교를 상징하는 옷을 넘어 그 속에 있는 인간들은 평등하기에 사랑하고 사랑 받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믿음은 그의 삶을 지탱하고 언제나 자신의 인생관이 되어 자신의 인간관계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시대는 그의 이런 믿음을 다시 시험하게 된다. 9.11 테러로 인해 모든 이들이 자신의 종교와 사상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미국조차 종교와 이념에 대한 흑백논리로 물들고 말았다. 그 속에서 이슬람인으로 산다는 것은 불행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종교집단이란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사회적 소수자로 전락한 그의 모습은 편견에 폭력이 더하면 어떻게 되는 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비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물리적 폭력으로 인해 그는 무너졌다. 그래서 그는 길을 걷는다. ‘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란 말을 미국 대통령에 말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려는 사연이 무엇이든 문제는 그것조차도 하기 힘들어졌다. 그는 미국 내에서 건실하게 사회를 위해 봉사했고, 나름의 시민의식을 갖고 사회의 고민을 함께 하려 했지만 미국의 집권세력이나 행정부는 그를 미국의 적으로만 생각했다. 또한 기독교 모임을 통해 아프리카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자선기금 마련에서 비기독교들에겐 봉사를 하면서도 미국 내에 있는 비기독교도들에겐 가혹한 미국의 이중적 잣대와 위선을 폭로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더욱 심화된 문제제기를 한다.
  종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체성이 옳은지 틀린 지는 모르겠다. ‘히잡’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낼지언정 불법은 아닌 것이며, 그런 것의 표출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에서 허락한 자유권이다. 하지만 그것을 다르기에 틀렸다고 규정하고, 종교적으로 같은 인간들에 의해 폭력을 당했다고, 모든 종교인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분명 불법이다.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일순간 다르기에 틀렸다고 규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결국 편협한 복수심에 의해 태생된 것이고, 무분별한 감정 폭발일 뿐이다. 그런 폭력에 의해 희생되는 이들이 다시 복수를 품게 되는 악순환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공정성을 상실한 무책임한 폭력은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잘잘못을 떠나, 사회적 타당성으로, 그리고 개별적 문제로 봐야 할 사안을 극단적으로 일반화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미국에 대해 너희들이, 혹은 우리들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지 않은 것은 결국 미국이, 그리고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파시즘이고 전체주의다.  
 

 

  타당성 있는 법의 목적은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 모든 이들이 처벌이나 집행에 긍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모든 이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 하는 것이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동안 미국은 그러지를 못했다. 최소한 다른 이들에게 공정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은 탈선이 자주 진행된 시기다. 그런 시간 속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머나먼 길을 걷고 있는 칸은 분명 한 명의 이슬람교도로서, 미국 시민으로서, 그리고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인물만이 아닌,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이로서 일반화된다. 그리고 그의 길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자신의 목표가 꼭 성공되길 관람객 모두가 빌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길이 너무 멀기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념이 꼭 승리하길 원하고, 그런 사회가 승리하길 바라는 이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참 고마운 영화다. 소수자도 비기독교인도, 그리고 우리와 다른 이들도 틀리다는 편견을 받지 않고 사는 그런 사회가 바로 모든 이들이 염원하는 사회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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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 - The 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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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의지와는 정반대인 세상에서의 몸부림, 그 속에 빚어진 예기치 않은 범죄와 희생은 한 인간을 바닥으로만 밀어 내고 말았다. 그 속의 죄책감,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엔 너무 큰 희생. 그것들이 진행되는 곳은 세계적인 도시인 Boston의 뒷골목인 Charlestown이다.
  못 사는 동네, Charlestown, 한 때는 그곳에 따뜻한 동료애도 있었고 Community 의식도 있었다. 비록 밑바닥 깡패와 같은 인간관계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래도 멋있어 보였다.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하는 그런 관계. 그것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부터의 침탈에 보호받을 수 있는 집단의식. 내용이야 어떻든 좋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것에 의지할 수 밖에도 없었고.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시간엔 그것마저도 사라진 그렇고 그런 도시가 된 Charlestown. 그곳은 가난이 지배하고, 과거의 악연을 재생산하는 사회의 Loser들이 모인 동네로 전락했다. 그런 도시 출신들의 젊은이들은 미래가 없었나 보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범죄자로까지 떨어진 4명의 젊은이들은 건강한 미래에 대한 기약이 없었다.

 
  자신의 불행한 현재를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포기했다. 그들은 고용된 전문은행털이범들이었다. 고용됐지만 결코 사퇴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그들이 턴 은행에서 그들은 은행직원들을 협박하지만 그들을 부리는 범죄의 우두머리는 은행털이를 그만 두려는 은행 강도단의 리더 ‘더그(벤 애플렉)’에게 협박으로 화답한다. 건강한 미래를 포기하라는 위협은 그의 미래의 행복도 앗아갈 기세였다. 결국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된 상태에서, 더그는 자신의 위기뿐만 아니라 그가 아끼는 인물들의 위기를 피해야만 했다.
  그는 자신의 피해자였던 여자를 사랑했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자신의 이력과 환경 때문에 오래 갈 수 없었다. 결국 사랑도 그의 인생엔 사치였는지 모른다. 자신이 그녀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은 언젠가는 폭로될 수밖에 없었고, 그가 처한 환경은 그녀를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었다. 강도로서의 그의 상품가치를 위해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악용할 의지가 있는 그의 의뢰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뻔한 구도를 가졌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주인공 더그의 죄의식은 무척 가슴이 아픈 내용이었다. 현재를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Charlestown과의 지독한 악연은 그가 지내는 시간 내내 그를 괴롭혔다. 부모의 불행한 과거 속에서 자란 그는 결국 아버지의 과거의 악연으로 인해 삶의 불행한 질곡을 다시 잇게 됐고, 벗어나려고 하지만 협박만이 메아리 되어 돌아오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정리하고 싶어도 정리할 수 없는 그의 Charlestown에서의 삶은 과거야 어찌 됐든 불행, 그 자체다. 그의 은행강도 혐의로 그를 계속 쫓아오고 있는 FBI 형사는 Charlestown의 변형된 악연일 뿐이었다. 더 무서운 것은 알면서도 저지른 은행강도에 대해 살아 있든, 죽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란 고민이었다.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더그를 포함한 그의 동료들은 이미 불행했었고 그런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었다. 친구를 위해 희생했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동료, 젬(제레미 레너)의 요구는 더 이상 도망갈 출구가 없는 가련한 Charlestown의 현재를 보여준다. 그는 건강한 미래를 꿈꿀 수도 없었으며, 강도하다 경찰에 걸리면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감방에 가고 싶지 않은, 오늘만을 사는 젊은이다. 그에게 죄의식이 있든 없든 그것이 인생을 사는데 기준이 되지 못했다. 그는 더그와 같은 시공간을 살면서도 전혀 다른 인물이다. 이런 인물과 엮인 더그의 미래 역시 어느 순간 젬과 닮아 갔으며,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젬과 같은 인생을 사는 위기에 직면한다. 최소한의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조차 거세된 채, 이번 은행털이가 성공하면 다음 은행털이를 계획하는 범죄인일 뿐이다.
  타인을 희생해야만 자신의 현실이 유지되는 모순 섞인 비극은 더그의 죄의식으로 자리잡으면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런 인생을 피하기 위해선 젬처럼 인성이 마비되던가, 아니면 모든 것을 제거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위험한 것이지만 그래도 오직 두 가지만의 선택사항으로 몰리는 더그의 선택은,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의 미래를 행복하도록 만들어 주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더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영화는 무거운 폭력 속에서도 서정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서정성이 더그의 불행을 제거해주진 않는다. 그 속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하든, 평생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야 할 운명을 순순히 받아 들인다. Charlestown을 저주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의 부모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는 순순히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는 비극의 대명사인 오이디프스처럼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었을지 모른다. 아니 방법은 달랐을 뿐이리라. 그의 마지막 선행은 오이디프스처럼 극단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것을 포기했음은 분명하다.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인생에 대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나마 마지막에 보인 인간미는 중요해 보인다. 즉, 묵직한 주제의식에서도 인간미는 분명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죄책감에 대해 결코 피하지 않으려 한 주인공 더그의 모습은 묘한 인상을 주었다. 범죄자인 그를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됐고 그를 위한 변명을 위주로 영화는 진행됐지만 더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결코 피하려 하지 않았다. 미국 남부의 어느 호숫가에서 죽든 살든,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아야 할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악연 깃든 숙명 속에서 살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를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만들었다. 시작이 무엇이든 그런 운명 앞에 나약해지고 무너져버린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슬펐다. 그리고 살아가는 배경 앞에서 무너져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도록 하는 성찰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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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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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같은 예술의 한 갈래로서 봐도 음악과 미술은 참 잘 어울린다. 인간의 감각 중 듣고 보는 것이 경험적 외피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면 말이다. 인류 최초의 예술이 어쩌면 그림이나 음악인지 모르겠다.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친한 친구와도 같은 그런 존재들이라서 그렇게 생각된다. 시각과 청각의 한 부분들이면서 서로의 표현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Genre인 이 둘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상을 자극시키는 매개체로서 그리고 예술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역할도 수행한다. 그런 매력 중엔 힘든 자들에 대한 위로도 있을 것이다.
  힘들었나 보다. 책에 담긴 글들의 행간을 읽으면 말이다. 어렸을 때, 누구도 쉽지 않을 유학을 했고, 그것도 음악을 위해 갔다니 말이다. 그리고 힘든 사랑. 글 사이사이에 느낄 수 있는 쉽지 않은 시간들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고독을 이겨내야 했고,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또한 그렇게 힘들지만 잘 참아내야 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인간적 고통일 것이며, 그것은 반드시 치유해야 하는 병이다. 그런 그녀를 치유한 것은 음악과 미술이었나 보다.
  치유를 위한 미술과 음악, 이 책에서의 미술과 음악은 아픔을 치료하고 있다. 작가의 선별이겠지만 여기에 소개된 그림과 음악들은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새로운 치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뻔하게만 보였던 기존의 예술작품들이, 저자의 경험과 시각으로 인해 새로운 겉옷을 입고 나타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각각의 미술 작품에 음악의 곡들을 짝지으면서 어딘지 다른 감흥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진부한 느낌이 들었던 예술품들이 아픔에 슬퍼하는 작가를, 그리고 마찬가지로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그래서 이것을 읽는 독자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의 가치에서 치유라는 덕목이 추가되는 셈이다. 
  미술과 음악의 공통점은 많다. 어차피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둘은 인간의 감정을 형상화하면서 인간의 주관적인 감성을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유대감을 확산시키는 특성이 있다. 그 유대감은 분명 중요하다. 내 고민과 아픔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그와 동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래서 그런 동료들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그것을 통해 함께 아픔을 노래하면서 극복해가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아픔은 다양하다. 사랑의 아픔도 있을 것이며, 고독과 외로움이 있을 것이며, 상실감 등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혼자 짊어지고, 나 혼자만 그렇게 느낀다는 절박함에 놓인다면 인간은 정말 불행할 것이고, 그에 대한 치유는 신경치료에 쓰이는 약 이외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과 미술이 이 책을 통해 제시된다. 여러 사례들에 적합한 작품들을 보여줌으로써 저자는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앞서의 사람들이 같은 경험을 했고, 그래서 그들은 예술을 통해 그런 아픔들을 승화했음을 적절한 작품들을 논거로 제시하면서 풀어준다. 동료들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있으며, 음악과 미술이 그것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 위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들려주고 보여줘서. 현대의 바쁜 도시의 일상으로 인해 많을 상처를 얻게 된 우리는 기계적이고 사무적인 인간관계로 인해 서로간의 교감을 상실하고 있고, 그로 인해 자신의 고민을 내비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래서 힘들다. 그런 시공간에 살면서 어려운 내면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당한 현대인에게 저자 노엘라는 자신의 고민을 해소한 그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접촉이다. 음악과 미술을 통해서 말이다. 현대에서의 예술의 가치는 바로 새로운 관계 형성과 유대감의 확산이라고 느껴진다. 그것은 오늘날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가 예술의 미덕에 포함되는 것이리라. 예술, 참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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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인형의 집 푸른숲 작은 나무 14
김향이 지음, 한호진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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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 이제 어른이 된 나에겐 재미있게 놀 것도 아니고, 사실 이제 내가 아끼는 귀중품에 끼지도 않는다. 언제 갖고 놀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누군가 갖고 논다면 피식 하고 웃을지도 모르는, 그렇게 난 어린 시절을 벗어나 누구나 인정하는 어른이고, 거칠고 힘든 삶을 살면서 동화보단 현실에 더욱 익숙해진 그렇고 그런 사림이다. 그래서인지 인형을 통해 상상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리고 나만의 세상 속에서 동화를 꿈꾸지 않은 그런 사람이다. 오늘의 삶에만 걱정하고 꿈을 상실한 그런 사람인 것이다.
  다 큰 어린이 돼서 읽은 ‘꿈꾸는 인형의 집’은 그래서 묘하게 다가온다. 인형이란 어릴 때의 즐거웠던 소재를 중심으로 쓰인 것으로서, 재미있고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장식된 동화였다. 아름다운 마음씨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모습의 어른은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피노키오, 소공녀 등 어렸을 때 들었던 반가운 동화 속의 캐릭터 이름들이 나올 때면, 아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있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됐다. 어렸을 때, 그들의 동화 속 이야기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힘들거나 즐거웠던 기억, 그게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 사람은 나이 먹는 것이 어렸을 때의 추억이 사라지면서 진행되는 것이겠지만, 마음 속 어딘가에 어린이의 마음과 독백을 그래도 언제나 간직하고 사나 보다.
  하지만 동화 속 이야기의 뒷면엔 또 다른 것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 속에 담긴 동화 같은 이야기는 또한 어른이 되어서 느낄 수 있는 사회적 현상과 그 뒤에 숨어있는 인간적인 탐욕과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관계까지 담겨있는 이야기다. 잔혹동화라고 할까?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은 현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었고,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은 이 시대는 물론 인간이 살아온 역사라는 시공간 속에서 있을 법한, 그리고 불명확한 파악이지만 있었을 것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건들이었다. 만화의 주인공처럼 ‘꿈꾸는 인형의 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형의 이야기들 속에서 가해자는 세상이었고, 세상에 찌든 인물이었고, 자신의 불만을 남에게 강요하는 인물들이었다. 책 속에 담긴 세상은 결코 동화 같지는 못했다.
  동화는 그런 것 같다. 현실 속에서 비현실이 벌어졌으면 하는 인간의 갈망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현실에선 안 되기에 생각 속에서라도 이뤘으면 하는 상상을 통한 인간의 갈망, 그리고 동화 속 세상 속에서 어른으로서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따뜻한 인간관계를 염원하고, 자신을 아껴주는 인물을 갈구하며, 그리고 자신의 착한 품성이 계속 성장하길 바라는 소박한 희망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동화라는 것에 담겨있다.
  어른이 읽는 소설이든, TV 드라마든 이런 속성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 모든 문학은 동화에서 비롯된 것 같다. 마치 동화가 나이 먹어 어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른이 보는 세상을 담은 소설이나 TV 드라마, 연극 등에선 비극이 존재한다. 심지어 동요에서 비롯된 대중가요에서조차도 비극이 있고, 불만이 있고, 저주까지 있다. 하지만 동화나 동요엔 그런 것이 없다. 포근함과 사랑, 기대, 그리고 믿음이 존재한다. 성격이 변해버린 ‘벌거숭이’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인형들과 할머니의 손길이 숨쉬고 있다. 그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잊혀진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복잡하게 변해버린 인간사에서 잊게 된 것들을 다시 동화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상상의 산물이라 해도 그런 것들을 마주하면서 다시 한 번 생활의 미덕과 따뜻함을 부활시키고 싶다. 나도 동화 속의 인물들처럼 살고 싶다. 그리고 동화 속에 있는 것들이 바로 우릴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의 행복, 그런 것들 속에 있기에 포기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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