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 Moneybal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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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부족한 가난한 프로야구구단이 돈을 물쓰듯 쓸 수는 없었다. 그래도 생존은 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명제이기에, 야구단 명맥은 유지해야 할 것이고, 이래저래 힘든 상황이 전개됐다. 바로 그런 힘든 상황이 통념을 깨고 발산의 전환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배경이 된다. 그리고 세상에 외친다. 당신들이 운영하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도 있고, 그것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주인공은 언제나 이러니 야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종종 푸념에 가까운 하소연일 수 있지마, 그러나 뭔가 색다른 일이 벌어지고 상식으로만 생각하는 방식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좋은 성과를 얻는 경우는 야구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인간으로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이 세상 주변에 허다하고 그런 것들 재미있고 유익한 미담이 된다. 그런 방식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란 프로야구구단에서 벌어진다.
  어른이 되고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스탠포드 대학’이란 명문대학야구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고교 졸업 후 ‘뉴욕 메츠’란 프로야구팀으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했다가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느낀 ‘빌리 빈(브래드 피트)’은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된 Loser인지 모른다. 그런 그에게 저렴한 구단의 단장으로 취임하는 것은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형편없는 구단에서 단장으로서의 자신의 새로운 이력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썩 유쾌한 출발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시작이 엉망이었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야구 인생의 마지막도 버림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를 구제할 인물이 전혀 예상 외의 곳에서 나온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가서 선수 trade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예일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피터 브랜드(요나 힐)’를 알게 됐고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가 오게 된다. 가난한 구단의 신임 단장은 남들이 하지 않았던 피터 브랜드의 철저한 계산에 따른 선수기용방식을 따르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문을 연다는 점에서 빌리 빈 단장은 혁명을 시작하는 것이다.
  빌리 빈이 채택한 방식은 매우 잔인한 것이다. 인간의 경험이나 감에 기초하지 않고 지금까지 모아온 정보를 근거로 선수들의 출루율이나 장타율 등 매우 복잡하면서도 철저한 수리적 정보에 기초해서 저렴한 구단운영비용으로 선수들을 트레이드하고 선수단을 구성하고 팀을 운용하는 것이다. 군살을 제거하면서 조직을 이기기 위한 목적에 부합되도록 재탄생 시킨 것이다. 그러면서도 예상 외의 높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선수의 인간성은 무시될 수밖에 없으며, 인간적 승리의 기적 같은 것들은 애초에 기대지도 않았다. 선수들은 로봇처럼 움직이는 기계이며,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에 기대지 않고 그들이 만들었던 경험을 수리적으로 처리하면서 만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유명 선수들을 팔아 치우고 만든 좀 이상한 팀이 됐다. 나중에 선수들 중 가장 스타성이 높은 선수까지 팔아버리면서 자신의 팀을 구성하기조차 한다. 감독의 팀이 아닌 단장의 팀이 된 것이다. 

  이런 팀이 처음부터 잘 운영됐을 리가 없다. 우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왜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오랜 경험을 왜 무시되고 있는지에 대한 항변과 도전이 일상화됐고, 단장은 자신의 운영철학과 방식을 결국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가야 할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 과정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줄거리이며, 그 속에서 고뇌하고 힘들어하는 빌리 빈 단장의 모습이 형상화된다.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악담하기에 바빴고 그의 실패를 점쳤거나 소원했다.
  실제의 일이 성공했으니까 그런 모습이 우아하게 보일 수 있지, 이런 상황이 초래됐다면 그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은 독선과 아집으로 뭉친 인간이란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사실 영화 속의 주인공의 모습은 바로 그런 모습이었고 결국 외롭고 고달픈 단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경기 결과에 목매인 단장이고 보면 당연히 그렇겠지만 남들이 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소외됐고 희생됐고, 또한 자신의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는 입장으로 떨어지면서 그 속에서 엄청난 울분을 갖게 됐을 것이다. 영화 속 긴장은 흥미진진한 야구 경기가 만드는 것이 아니란 이런 복잡하고 긴장된 인간관계를 통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야구팀은 정말 조연인 팀이다. 그들의 승수가 어떤 수준인지 분명하지 않게 묘사되고 있으며, 그들의 활약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나중에 그들의 성과를 한 순간의 진땀 나는 승부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영화의 중심은 야구가 아니라 야구를 운영하는 단장에게 쏠려있는 것이며, 그의 동선이 영화의 주된 포커스다.
  이런 과정 속에서의 빌리 빈 단장의 운영방식은 매우 계산적이고 비인간적이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는 있는 반전이 일어난다. 계산적일 것만 같은 그가 가장 계산적이어야 할 순간에 가장 인간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실제 인물과 실화를 근거로 만든 영화이기에 믿어야 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반전에 묘한 느낌을 얻는다. 어쩌면 카타르시스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과연 빌리 빈 단장이 꿈꾸는 것은 비인간적인 세상이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보통의 욕구를 지닌 인간이었을 뿐이다. 힘들게 살다 보니 세상 사는 방법이 거칠어졌을 뿐, 그도 욕심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일 뿐인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갑작스레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오며,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임이 밝혀진다. 
  이런 것을 보면 그는 결국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가여운 현대인일 뿐인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즉 강요당한 것이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라는 가난한 구단이 생존하기 위해선 저렴한 운영비용으로 뭔가를 이뤄야 한다. 마치 학벌에서 밀리거나 자본력이 부족한 20대가 냉혹한 세상에서 생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영화는 단순한 기적 같은 인생 성공기를 담은 영화가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하라는 냉혹한 진리를 갖고 있는 미국 신자유주의 이념이 강조된 영화가 된다. 용기를 가지란 말 속엔 누군가를 밀어내야 성공하니 최선을 다하란 신자유주의 가치가 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불운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인생 성공기이자 불행한 인생을 사는 현대인의 한 일면을 그나마 긍정적으로 끝난 이를 통해 보여준 영화다.
  하지만 씁쓸했다. 그가 잔인한 수학적 방법으로 성공했지만 마지막에서 그 역시 평범한 욕구와 꿈을 갖고 비합리적인 세계관을 갖고 산 인물일 뿐이며, 그 지점에서 관객이나 빌리 빈이나 같은 인물로 수렴된다. 현대를 살면서 가혹하지만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들의 꿈은 그래도 이상적이며, 남과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향하는 그런 삶이다. 안 되는 것을 소원하면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꿈과 반대되는 생활을 강요당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투영된 것이다. 빌리 딘 단장의 꿈이 언젠가 이뤄졌으면 한다. 왜냐 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의 간절한 소망이 남의 일 같지 않으며, 그것이 바로 나의 꿈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의 마지막 선택은 좋아 보였고, 그렇게라도 사는 그의 모습이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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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전쟁 - Immortal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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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영문제목이 ‘the immortals’였다. 영원히 죽지 않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중세도 아닌 고대 그리스 시대 이전의 시대에 살았다던 죽지 않은 이들, 즉 신들(Greek Gods)로부터 시작되는 이 영화는 그런데 보통 인간이 알고 있는 죽지 않을 것만 같은 신들이 사실을 죽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 모든 것을 시작한다. 그리고 신들 사이에서도 죽고 죽이는 관계가 있었으며, 그것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못된 인간 하나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게 되고, 그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인간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이상한 신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좀 이상한 구성을 띄게 됐다. 신들이 자신의 위험을 인간에게 맡겼단 점이다. 자신의 안위를 직접 지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이상하게 인간의 문제로 귀착되면서 인간들이 해결했으면 하는 스토리를 갖게 된 것이다. 왜 신들이 자신의 안위를 인간에게 맡겼는지는 영화를 보면서도 도통 모르겠다. 정말 인간이 보는 영화라서 인간이 주인공이 되고, 그 인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영화 흥행이 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그래도 인간이 주인공이니 가장 큰 비중이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서로 싸우는 상황은 확실히 인간은 인간끼리, 신들은 신끼리 싸웠다. 이제 신들도 서로 싸우면서 죽고 죽이는 상황이 전개됐고 신도 인간들처럼 죽는다는 이야기가 가능하게 됐다. 
 

 

  영화 ‘300’을 만든 이들이 제작에 참여해서인지 전투장면이나 액션을 확실히 남달랐다. 무척 잔인한 장면들이 자주 나와서 어린 학생들에겐 문이 열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흥행카드는 액션이다. 다만 그것 빼고 영화의 다른 흥행코드는 그다지 눈에 띠지 않는다. 아마도 흥행을 너무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단 사실 정도에 인간의 우수성을 찾아야 할까? 하지만 조금 비틀어서 본다면 영화 속의 인간의 모습은 물론 신의 모습은 불행한 인간사의 한 단면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분법적 구도야, 이런 영화를 만들 때, 반드시 갖춰야 할 구성이다. 서로 싸우는 존재라면 한 쪽은 무조건 사악한 악당이어야 그들의 패망으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악한 자들의 붕괴로 인한 쾌감이다. 문제는 그 악당도 사실 나름의 이유로 인해 그렇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가족이 죽었을 때, 왜 신은 나 몰라라 했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서부터 인간은 사악한 악당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죽음을 신의 선택이나 나름대로 좋은 쪽으로 해석함으로써 마음씨 좋은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악당 하이페리온(미키 루크)과 주인공 테세우스(헨리 카빌)가 갈린 기준점도 바로 이점이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서 자신이 한 때 믿었던 신들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하이페리온이 나쁜 악당으로 나오는 이유는 자신의 불행한 과거를 들먹이면서 그렇다고 다른 타인들에게도 많은 민폐를 끼친다는 사실을 합리화시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망한다고 다른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이 결코 좋을 수는 없기 때문이며, 결국 또 다른 원한만 초래하면서, 모든 이들의 불행을 야기하는 것이다. 즉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사태인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 분노를 터뜨리기 보다 좀 더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힘으로 발전시킨 테세우스의 선택이야말로 세상이 가장 원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테세우스가 영화 속 주인공으로 선택된 이유인 것이다. 제우스란 신은 그런 테세우스를 좋아했고, 그를 지원했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신들을 위협하는 세력을 막는 작업을 인간에게 왜 맡겼는지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은 못 될 것이지만 말이다.  

 

 

 


  기독교에서 인간의 불행을 왜 줬는지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많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매우 기대된다. 왜 신은 모든 이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고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에겐 불행을 주는지 모든 이들이 궁금하다. 기독교계에서 나름의 이유를 들고 합리화시켰지만 개인적으로 솔직히 아직도 납득되지 않는다. 그런 고민을 이 영화는 다시 들췄다. 그렇다고 속 시원한 답이 나온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이 신으로 되는 과정을 보면서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자신의 욕구와 상상으로 신을 만들었다면 결국 신도 인간처럼 행동할 것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영화 속의 옳고 그름은 분명 타당하다. 자기의 분노를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짓이기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분명 귀담아 들을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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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플리 O.S.T.
믹키유천 (박유천) 외 노래 / 지니(genie)뮤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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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라마 '미스 리플리'는 이미 끝났다. 날것들의 충돌이라고 할까? 드라마에 나온 캐릭터들은 인간적인, 매우 인간적인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탐욕과 분노, 그리고 배신 등이 뒤엉킨채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고 그래도 아쉬운 듯 미친 듯이 자신의 이야기만을 세상에 강요했다. 희망도 사실은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여과없이 보여줬다. 주인공만 그런 것도 아니었고, 드라마 속의 모든 이들이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음악은 조금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마치 거친 투우 경기를 배경으로 하는 산뜻한 보사노바처럼 말이다.
  화요비는 정말 노래를 잘 한다. 이 드라마의 가장 인상적인 노래인 '유리'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제대로 된 발라드, 그리고 비장미라 할지 비극미라 할지 뭐라 정의내리기 힘든 거칠면서도 세련된 화요비의 보컬의 매력을 잘 감상할 수 있게 만든다. 확실히 의미있게 들을 수 있는 노래다.
  미루의 '입버릇처럼'은 멋진 라틴 Song이다. 슬픈 듯, 그리고 여유를 누리는 듯 나긋나긋하면서도 차분하면서도 슬프다. 애절한 라틴의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애절한 갈망과 분노를 차분하게 들려주는 듯 하다.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닐까 하는 것도 같다. 재즈의 우아한 선율이 드라마의 그때를 떠올리도록 한다. 미루란 가수를 알게 해준 노래다.
  경쾌하다고 해야 할지 맑다 해야 할지 모르지만 참 깨끗한 노래다. 양영준의 목소리는 '그대가 아니면'에서 매우 깨끗하게 들린다. 높은 고음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적당한 긴장 속에 좋은 메아리로 들려오는 듯 하다. 다음에 나오는 Spanish Version의 같은 노래는 앞서의 긍정적인 분위기완 다른 비극미가 들린다. 하지만 양영준의 목소리는 그래도 맑다. 현악기의 긴장감이 양영준의 음색과 대조를 이룬다.
  '너를 위한 빈자리'에서의 박유천은 오랜 만에 들을 수 있는 그라서 반갑다. 그의 어려웠던 과거가 드라마보다 더욱 드라마같아 뭔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그의 계속 성장하는 연기력만큼 그의 목소리 역시 전보다 더욱 성숙해졌다. 이 노래를 통해 그의 음색을 들어 반갑고 그의 거친 미색이 매우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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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전쟁 - Immort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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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나 인간이나 다 똑같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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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 The King of Pi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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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도, 볼만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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