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들의 안식처, 에르미타를 찾아서 - 스페인에서 만난 순결한 고독과 위로
지은경 지음, 세바스티안 슈티제 사진 / 예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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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만 순례자가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성찰을 위해 떠났던 이가 과연 과거에만 있었을까? 현재에는? 이를 직접 실천하고 싶은 이들이 있나 보다. 과거의 길을 찾고 그 속에서 어떤 이미지를 얻기 위해 근 1000년 전 불행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적 의미와 가치, 그리고 내적 성찰을 도모하기 위해 스페인의 깊은 산속들로 찾아 들어간 은자들의 장소인 ‘에르미타’라는 곳을 21세기에 찾아 떠나는 이들을 통해 그 답을 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찾고 있는 곳을 통해 도시 속 순례자가 되는 느낌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시는 아마도 인류가 만든 위대한 걸작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함께 살면서 거대한 건축물과 각종 시설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살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장소로서 말이다. 자연재해에 대해 그나마 방어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고 완벽하다 할 수 없지만 공동의 대중 시설들을 통해 어느 정도 효율적인 생활 시스템도 갖췄다. 하지만 인간의 만족의 무한함이 원인이었는지 모르지만 도시는 완벽하게 모든 것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스피드 있는 생활을 누리지만 그 속에 생존하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못 찾고 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파묻혔지만, 그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 과연 삶은 어떤 것이며, 어떤 삶이 중요한지 묻는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어딘지 모를 잔인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도시를 떠나고자 하는 은자들은 계속 나오나 보다. 설사 실행은 하지 못하지만 마음 속으로 은자인 자들도 많고 보면 은자들의 휴식처, 쉼터는 계속 필요하며, 은자들의 고민을 헤아릴 수 있는 공간 역시 필요할 것이다. 도시 속에서 찾을 수 없다면 도시에서 벗어난 곳으로 떠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순례자들의 안식처, 에르미타를 찾아서’의 저자 지은경은 과거의 은자들의 생활공간이자 사색의 공간을 찾아나선 것이리라. 저자의 마음 속에서 마냥 도시를 증오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에르미타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아나선 것이리라. 저자는 스페인의 여러 곳에서 산재되어 있는 에르미타라는 구조물을 사진사 ‘세바스티안 수티제’와 동행하면서 찾아간다. 구닥다리 사진기로 에르미타라는 구조물을 찍는 사진사 세바스티안의 묘한 작업 역시 흥미롭지만 그런 그를 따라 가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하는 저자 역시 색다르다. 하지만 기묘한 여행 속에 드러나는 진가는 무척 이채로웠고, 책을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들의 순례길은 확실히 뭔가 있었다.
  이 책 속에 표현된 이미지들은 무척 축복과 같았다. 아름다웠고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실패가 잦은 사진사의 열렬한 고행 속에서 인생이 마냥 장밋빛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미 낡아 무너질 듯한 에르미타라는 건축물들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동시에 깊은 산골이나 매우 아슬아슬한 곳들에 위치한 에르미타들을 보면서 고행의 끝을 맛보면서 인생의 가치를 찾았던 순례자들의 모습들을 연상하면서 오늘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또한 에르미타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마냥 행복한 것들만 나열하는 여행기는 아니다. 인간의 갈망이 이뤄지기 힘든 것들의 이유와 그것들에 대한 고민을 통해 저자는 계속 많은 것들을 알고 느끼는 것 같았다. 이런 그녀의 경험은 독자들에게 색다른 순례자의 길을 느끼게 한다. 도시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나름 순례자의 느낌을 얻을 수 있는 묘한 경험을 한다. 또한 그 속에서 담긴 수많은 미사여구는 지금의 나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우아한 문장 속에 담긴 진미는 여간 잊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도시 속의 바쁜 일상을 벗어나 좀 더 여유를 갖고 살면서 은자들의 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없지만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이 갖고 잇는 인식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언젠가 나 자신 역시 은자처럼 도시를 벗어나 나 자신만의 에르미타를 찾아갈지 모르겠다. 그 때 이 책의 진미를 다시금 되새길 것 같다. 그 때가 어서 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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