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모 - 희단.관중.이사.소하.진평.제갈량.장거정의 임기응변 계략
이징 지음, 남은숙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반가웠다. 한때였지만, 삼국지나, 수호지, 그리고 열국지 등으로 중국의 이야기와 역사는 개인적으로 무척 친근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시간은 야속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삶의 무게를 좀 더 덜 수 있는 일들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 순간 과거의 이야기들로 사라져버렸던 중국 이야기는 어쩌면 내 동심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들이 어른이 다 된 후, 묘한 인연으로 다시 돌아왔다. 엔트로피의 원칙처럼 어릴 때의 나는 비록 아니지만 그 때의 묘한 흥분이 돌아왔다.
  이제 세상과의 인연이 많아서인지 역사라는 무대의 주인공을 꿈꾸며 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 아마 그러기 참 힘들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교훈이라 그럴 것이다. 또한 장소와 무대가 어디이든 그 삶에 열심히, 그리고 충실히 살면 된다는 생각도 들어서인 것 같다. 세상은 언제나 겉으로 들어난 1인자들만의 세상이 아니며, 각자의 역할을 따라 살아가는 공간이다. 멋져 보이는 1인자들과 역사책, 혹은 역사소설의 주인공의 삶이 실재로는 그렇게 멋진 것만은 아니라는 현실의 냉혹함도 알만한 시간이 나에게 왔다. 어쩌면 삶은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지나치는 시공간일 수 있다. 그곳에서, 그리고 그때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마음을 어릴 때의 나보다 비워서 읽게 됐다. 하지만 과거의 낭만적이고 허황된 약속을 꿈꿨을 때의 나를 다시금 일깨우기 위해 읽지는 않았다. 그럴 내용도 아니었고 문제의식도 더욱 달랐다. 이 책은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인생의 지침서이다. 어쩌면 책 저자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출세를 위한 생활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멋진 2인자로 기억되는 7인의 이야기를 나름의 지적 통찰과 인생관으로 풀어가고 있다. 마치 사마천의 사기처럼 당대의 인물들의 행적에 대해 저자의 관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냉철한 역사인의 자세로 쓴 책이다. 방식도 비슷한 것 같다.
  이 책에 다루는 인물들은 단순한 유명인들이 아니다. 성공한 1인자들의 오른팔이자 재상이었으며, 동시에 1인자들의 의심을 받을 만큼 탁월한 인물들이다. 능력은 성공을 이끌지만 동시에 위기를 가져오게 하는 원흉이기도 하다. 인간의 DNA에 간직된 생존본능으로 인해 가장 친한 동료와 부하를 또한 자신의 적으로 볼 수 있는 인간관계는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하기엔 너무 비극적인 본능이다. 하지만 그 짐승적 속성으로 인간은 생존을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이니만큼 조심이란 마음가짐 역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 주공 단, 관중, 이사, 소하, 진평, 제갈량, 장거정은 최고의 위치에 오른 인물들이다. 그들의 탁월한 능력은 국가 초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위기의 순간, 나라를 구한 근본 요소다. 모든 이들이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잘 해낸 인물들이다. 특히 저자가 주목한 것은 능력은 물론 그들이 2인자로서 살아가는 지혜다.
  인간이 만든 선악의 개념에서 꼭 착하다고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저자는 살아가는 인생이 거칠기에 여러 면에서 그들을 삶의 관점에서 평가하려 노력했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함부로 시시비비를 따지는 역사적 인식은 가치명제를 너무 앞에 둬서 식견 있는 독자들에겐 웃음거리 밖엔 되지 않을 뿐이다.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에겐 보다 사실에 입각해서 인간적인 냄새를 간직한 상황에서 기술해야 하는 법이며, 이 책은 그런 자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분명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큰 도움을 준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내리지만 진평과 같은 이에겐 당시 그가 처했던 상황이나 인간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받아들이며 그에게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는 것을 주저한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가 오늘의 기업가들 내에서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친절하게 전달하려 노력한다. 어쩌면 현실을 살아가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적 평가만이 아닌 실용성도 간직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책은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중심으로 인물들의 행적과 상황을 묘사했다. 삼국연의나 초한지 등의 통속적 소설들로 인해 가려졌던 진정한 인물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물들을 제대로 평가한 것이리라. 이를 통해 좀 더 인간적이고 제대로 된 인간상을 보여줄 수 있었다. 또한 그를 통해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작가의 노력 하나하나가 책 곳곳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원하는 바다. 미화된 거짓보다 진솔한 인간의 이야기야말로 험난한 인생을 사는 인간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