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는 건축 - 함성호의 반反하고 반惑하는 건축 이야기
함성호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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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 건축이란 단어는 자주 들었지만 관련 분야에서 일한 적도 없었고, 건축의 묘미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도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 함성호의 글쓰기는 확실히 친숙한 편은 아니다. 반한다는 의미를 for 아니면 against로 계속 변화무쌍하게 사용하면서 읽는 독자는 그의 독특한 표현력을 이해해야 하는 고역을 치를 수밖에 없게 된다.
  건축은 예술의 영역이면서 실용의 영역이다. 보거나 사용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미감을 제시해야 하면서도 뭔가 대중적인 쓰임이 없다면 어느 광장에서 보여지기 위해 세워진 조각과 다를 것이 없다. 안과 밖을 나누어서 공간 속에서 안락함이나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건축물의 숙명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기 위해 건축가가 존재하고 건축학이 존재하고, 마침내 건축이 존재하는 이유리라.
  한 때 살았던 고양시의 정발산에서 활동하는 저자의 이력이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장소로서의 개인적 관심을 넘어 상당히 많은 주제와 시대성을 담고, 또한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에서의 끊임없는 긴장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런 무한한 긴장은 읽는 독자들을 압도한다. 글의 내용 뿐만 아니라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와 철학이 무척 파괴적이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건축 역시 당시의 시대성과 조율해서 가야 할 운명인가 보다. 그래서 건축이 어떤 것을 꿈꾸는가, 그리고 무엇을 가치관으로 삼았는가 하는 점에서 각 시대의 차이점이 반영된다.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는 가치관은 언제가 과거의 가치관을 비판하면서, 혹은 반항하면서 등장하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생각해보면 이 책이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세계관은 모더니즘이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의 기계론적 가치관은 언제나 흥미를 끈다. 중세의 신학적 장식성과 상징성을 부정하고 정신을 부정하며, 객관화된 세상을 꿈꿨던 이들의 도전은 근대라는 시대를 만들었고 대표한다. 그들은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는 엘리티시즘으로 무장한 모더니스트들은 신학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열망을 담은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열망도 언제나 순수성만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모더니스트들의 이론적 취약점과 함께 사회, 정치, 그리고 경제적 이유 등으로 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 역시 발생하고 만다. 이런 상황으로 그들이 이루고자 한 도시는 약점이 됐고 역시나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후세인들에게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되고 만다.
  환타지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모더니스트들 역시 또 다른 환타지를 만들고 말았다는 비판은 무척 가슴 아픈 사실이다. 결국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며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과연 어떤 확고한 체계를 갖고 과거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는지 의심이 된다. 모더니즘 이후에 등장했기에 포스트라는 접두사가 붙었겠지만 아직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포스트 모더니즘 역시 모더니즘의 엘리티시즘을 모방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 역시 지금의 현대인들을 선도하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대표한다는 자긍심도 얻고 싶을 것이며, 이를 통해 재력과 인기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스터모던 클래식이나 슈퍼매너리즘 등 포스트 모더니즘 방식들이 얼마나 과거의 모더니즘을 밀어 냈고, 또한 시대적 당위성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진행형이란 말이 더 어울릴 것이며, 포스터 모던 방식들은 가혹한 시장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다만 모더니즘이 보여줬던 파괴력은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을 만약 모더니즘 초기 사상가들이 본다면 좀 억울할 것이다. 자신들과 달라진 세계로부터 온 이들이 자신들과 다른 문제의식과 고민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비판할 것이니 말이다. 마치 열대우림 기후의 사람들이 사막기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비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비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다음 세대의 목적이며, 그것이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의 생존방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은 잔인한 것이다.
  다만 제대로 된 비판과 함께 좀 더 현세대를 보다 더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포스트 모던니스트들이 제시했으면 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에 대안이 없다면 결국 말장난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 대안을 찾아 머나먼 여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연의 폭력성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자연을 떠났던 인간들이 도리어 자연의 환타지를 만들어 도시를 꾸미려는 시도는 어쩌면 인간의 비합리성은 물론 모순이란 본질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런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건축은 음악이나 미술과 달리 바로 인간의 생활과 직결된 예술분야다. 우리의 삶과 유리되지 않는 공간창출인 건축은 모순된 길을 걸어가면서도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최종점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그런 것을 추구하는 치열한 노력을 보여준다. 그 노력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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