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침 一針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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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針, 작고 가볍다. 하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작지 않다. 침 한 번을 맞는 순간, 아프면서도 상쾌하다. 이런 역설, 정말 오랜 만에 느끼는 순간이다. 어느 순간 잊고 있던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힘이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一針’이란 책이 말이다.
  뻔한 이야기겠지만 古典이란 말 속에 이미 과거의 것이란 뜻이 있기에, 고전의 가치가 아무리 높다 해도 이미 지난 과거의 것이라 무시당하거나 옛 것이란 이름으로 폄하되곤 한다. 현대가 과거를 극복하면서 전개됐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래서 과거와의 단절이 오늘을 사는 삶의 지혜와 발전이라 믿었기에, 고전을 과거의 부산물 정도로만 생각하고 사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현대의 작품들이 고전을 너무 많이 ‘오마주 [hommage]’하기에 고전은 다소 뻔한 것들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惡習이다. 현대인들의 오만함이 만들어버린 어리석음이 과거의 가치를 잊게 하고 또한 현대를 살아가면서 받을 수 있는 삶의 가치관이나 기준 등을 상실하게 만든 원인이 되고 말았다. 과거를 통해 멋진 현재와 미래를 가꿀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나가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미래의 중요한 시간들을 하수도에 물을 버리듯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이렇기에 책 ‘일침’은 매우 색다르게 다가선다. 타성에 젖은 현대인들의 악습을 제거하기 위해 이 책이 갖고 있는 신비로운 매력을 간직하고 음미한다면 앞으로의 미래의 이야기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민의 수고는 그래서 반갑다. 그가 세상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과거의 지혜를 통한 것이지만 지금에서도 매우 새롭다. 여기에 소개되는 사자성어는 고사성어는 아니다. 과거에 벌어졌던 어느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좀 수고스런 고달픔이 있을지 모른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 하나하나에 비견되는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는 고사성어에 버금가는 즐거움을 전달해준다. 또한 사자성어 하나가 끝날 때 보여주는 시각자료들인 그림은 왠지 모를 강한 수긍을 이끌어 낸다. 현대판 파워포인트라 할까? 하긴 과거의 사람들이 현대인과 다르지 않기에 그들의 고민과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다를 뿐 고전의 그들과 현대의 우리들은 하나일 뿐이다.
  저자의 노력과 사자성어를 만든 이들의 인생은 과도하다 할 만큼 압축되어서 우리들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내용은 매우 풍부하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 하나하나는 수많은 고민과 성찰, 그리고 그를 통해 얻게 된 삶의 정수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 뼈아픈 사자성어다. 분명 이 사자성어를 남긴 이들에겐 큰 시련이 있었을 것이고 그에 대한 성공은 물론 실패도 있었을 것이며, 그렇기에 이 사자성어 하나하나에는 그들의 삶이 녹아있을 것이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자신에게 탄식하듯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겁고 아프다. 삶 속에서의 실패를 통해 얻게 된 지혜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너무 수월하게 얻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성이 따를 정도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사자성어들이 눈에 띈다. 재미있게 발음되는 ‘지지지지(知止止止)’는 ‘그칠 데를 알아서 그쳐야 할 때 그쳐라’라는 가르침은 재미있는 성음이지만 내용은 결코 재미있지 않다. 멈춰야 할 때 욕심을 내어 일을 그르친 것들이 이 성어를 통해 다시 생각난다. 그때 잠깐 참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질타한다. 모든 것이 다 욕심에 기인한다. 과거에도 이때도 이런 실수를 많이 했나 보다. ‘십년유성(十年有成)’은 ‘십 년은 몰두해야 성취를 이룰 수 있다’이란 뜻이다. 문제는 개인적으로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십 년은커녕 1-2년 정도 집중력 있게 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지금의 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전문가가 아닌, 삶의 타성에 짓눌린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나이기에 매우 뼈아픈 사자성어다.
  반성이 깊어지면 자책하게 되고, 그래서 다시 나약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거문고 줄을 풀어 팽팽하게 다시 맨다’는 ‘해현갱장(解弦更張)’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성어다. 인간은 나약할 수 있고 풀어질 수 있다. 평범하다는 이야기엔 바로 이런 인간의 나약함이 존재함을 포함한다. 그렇다고 이런 인간의 보편성을 마냥 긍정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잠을 잤으면 일어나야 하고 누웠으면 벌떡 서야 하며, 풀어졌으면 다시 긴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경쟁의 시대에 이 이야기는 지금의 나를 일깨우는 성어다. 다만 이런 긴장으로 인해 바쁘게 되다 보면 잃어버릴 것도 많아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유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게 하는 ‘마음이 한가해야 정신이 활발하다’는 ‘심한신왕(心閒神旺)’에서의 한가로움이 너무 귀중하게 다가온다. 바쁜 것은 결국 몸과 정신을 긴장시키고 그래서 선입견과 타성에 젖게 된다. 이럴 때 많은 실수를 하게 된다. 정말 이런 문제를 적절하게 풀어주는 한가로움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울 것이다.
  짧은 사자성어의 무거운 가치를 느끼면서 많은 활력을 갖게 된 것 같다. 조상이라 불리는 대상이 제사에서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진정한 대화는 고전을 통할 때 조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들이 얻었던 삶의 가치를 다시금 느낄 때 과연 과거와 현대를 나눌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적으로야 어쩔 수 없지만 종종 패러다임이나 가치관 등을 통해 함부로 이중잣대로 평가하는 못된 버릇이 현대인들에게 있으며, 나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일침인 것 같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성이 잘못 된 생각임을 언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었지만 이번처럼 몸으로 느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좋은 체험학습이고, 다시 한 번 고인과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낀다. 힘들 때 그들의 삶의 지혜, 너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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