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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철학법 - 프로이트에서 뒤르켐까지 최고의 인문학자들, 여행의 동행이 되다
김효경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독특했고 흥미로웠다.
현실과 상상, 아니 환상을 통해 저자 김효경은 묘한 여행 에세이를 만들었다. 사회학 전공자인 저자에게 현실의 애환을 잠시 잇도록 해준 여행은 풍부한 상상과 환상의 세계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 환상의 세계는 결코 그녀 자신은 물론 이 여행 에세이를 읽는 모든 이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바로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이야기다. 그 속에 듬뿍 담긴 성찰적 메시지는 무척 인상적이다.
정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행은 결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시원한 과정은 결코 아니다. 많은 여행 에세이들이 어쩌다가 그렇게 썼을 것이라는 저자의 추론에 동의한다. 차영진 작가가 쓴 ‘유럽을 여행하는 정석 따윈 없다’에서 작가가 고백하듯 여행은 힘들다. 매우 현실적인 시공간을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인기를 끄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것이 넘치다 보니 결국 많은 이들을 속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여행자의 철학법’에선 여행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치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의 고통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고통을 이겨보고자 하는 바람이 과거의 인물들을 상상이라도 동원해서 여행의 길동무로 데려왔는지.
과거의 철학자들이 이 책에서 부활했다. 저자의 탁월한 지적 능력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사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과 만남을 소망한다. 불가능하기에 그 소망은 절실해 보인다. 그런 절실함을 이 책은 시원스레 날려 버린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수고를 통해 그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린다.
육체적 고행으로 가득한 이탈리아 여행 (이 책에서 이탈리아를 벗어나서 여행한 적은 없으니까) 에서 프로이트, 오컴, 베이컨, 피치노, 데카르트, 뒤르켐, 마르크스, 랑케, 카, 그리고 네로라는 동료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이 책에 가득하다. 특히 그들의 사상을 예리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러면서도 사상의 핵심을 결코 놓치지 않은 저자의 소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지적 능력만이 아닌, 그녀의 삶 속을 통해 나름대로 정리했던 사상의 핵심들이 매 단락마다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어떤 사안에 대해 그들이라면 했을 법한 속내의 이야기를 정말 간단하면서도 공감을 이끌 만큼 정확하게 소개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정말 있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했을 법한 이야기로 넘친다.
비록 상상으로 만든 것들이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지금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의 고민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는 상쾌함을 느꼈다. 그냥 대충 알았거나 딱딱한 교과서 같은 것을 통해 알다 보니 지루해 보이던 인물들의 철학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다가왔다. 왜 그랬을까 라는 고민의 해결에서부터 그랬었구나 하는 공감을 느낀 것이다. 딱딱한 인문서의 한계를 제대로 지적한 여행 에세이, 정말 안 어울릴 것만 같은 묘한 통쾌함이 느껴졌다.
철학서들의 현실화만을 이 책이 담은 것은 아니다. 이 속에서 역시나 오늘을 살고 있는 한 인간의 소소한 일상도 들어 있다. 아줌마인지 아니면 솔로인지, 아니면 돌싱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걷거나 봤던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을 담은 사진들을 통해 그녀가 뭣을 봤고, 뭣을 갈구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재미도 있었다. 여행에 대한 솔직함과 자신이 봤던 곳에 대한 솔직함으로 여행에 대한 환상을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내가 볼 수 없던 곳에서, 그리고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것에 새로운 시선을 던짐으로써 여행 에세이 속의 평범할 수도 있던 것들이 새 생명을 얻은 것 같다. 어쩌면 여행은 그런 것들을 얻는 지난한 작업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게 재미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그런 여행 에세이 하나 쓰고 싶다. 당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