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고전 -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힘
다케나카 헤이조 지음, 김소운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무척 인상적인 서문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John Maynard Keynes경제학이 ... 계속 유용한 학문으로 존재하려면 시론을 담은 소논문이다라는 문장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크나큰 문집이 필요하지 않고 창조적이면서도 간략한, 그러면서도 시의 적절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케인즈의 이 이야기는 지금도 꼭 기억해야 할 지침이다. 아마도 저자 다케나카 헤이조전 일본 경제재정상은 일본의 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반드시 케인즈의 인식을 따라야 할 필요성을 절감해서 이런 문구를 서문에 담은 것 같다. 그런데 이 문구는 우리 모두에게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이며, 이 책이 왜 경제학 고전들을 간략하게나마 분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지금 모두가 어렵다. 인간이 행복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산다고 봤을 때, 지금 이런 행복을 만끽하고 사는 사람들은 사실 전세계적으로 1%라고 지칭되는 얼마 안 된다. 소위 불황이란 말이 적절하게 오늘의 시대를 표현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도저히 풀어낼 해결책이 없다면 뭔가 창조적인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도리어 과거의 지혜를 담은 고전이 그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해결책이기도 하다.

책의 내용은 매우 깔끔하다. 고전들이 얼마나 두꺼운 분량으로 제작됐는지 모르지만 이 책은 경제학자들의 지혜가 담긴 그 내용들을 더욱 간추려서 그 핵심을 짚어내면서 많은 이들에게 경제학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가 선별한 내용들은 사실 오늘의 정치나 경제학자들은 물론 일반 서민들까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사실 그들이 갖고 있는 논리구조나 세계관들을 대충 넘어가서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대중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해결해주는 좋은 정보서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이 책은 어느 이론가가 자신의 경제이론을 피기 위해 제작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논지를 확실하게 갖고 있으며, 어떤 지향점이 있다.

이 세상 모든 경제학자들은 자칭 케인지언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이 책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실 일견 맞기도 하지만 또한 틀리기도 하다. 특히 저자 다케나카 헤이조 전 일본 경제재정상은 말이다. 어쩌면 정부가 경제에 어느 정도 개입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특히 강하든 약하든 재정문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케인지언이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 통화주의자들이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어느 정도 함께 추구한다면 약하냐 강하냐의 차이로서의 케인지언이라고 답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저자는 자신이 케인지언이라고 이야기한 듯 하다. 하지만 저자는 불황 타개책에 대한 케인즈의 능력에 대해선 인정하면서도 결국 프리드만이나 하이에크, 그리고 부캐넌과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혹은 그 조상들의 편에 서있다.

어쩌면 일본이니까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거의 국가재정의 상당부분을 토건족이라 불리는 사회집단들이 독식하고 이것이 바로 일본재정의 핵심이 되고 만 시점이라서 일본은 과도한 재정정책이 자행되는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경제불황도 닥쳤으니 과도한 정부의 재정투자, 특히 토목사업에 대한 비판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여서 국가재정을 새롭게 하려는 시도를 주장하며, 본인 역시 자신이 장관이었을 때 추진했다. 어쩌면 정부의 실패를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논지다. 문제는 그런 논지, 혹은 방법이 오늘의 이 시점에서 제대로 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프리드만이 옳았다고 어떤 신문칼럽이 주장한 적이 있었지만 신자유주의 방법은 많은 이들의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의 실패도 문제지만 시장의 실패 역시 가혹하긴 마찬가지다. 동시대인이 아니라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정부의 실패보다 시장의 실패는 기껏 불경기나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데 그칠 정도로 약하다는 하이에크의 주장에 대해선 정말 어이가 없을 뿐이다. 1,2차 세계 대전을 초래한 것이 과연 정부의 실패였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저자는 자신의 논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릇된 사실을 끌어당겼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틀렸던가.

작금의 경제위기를 어떻게 진단하는가는 곧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어쩌면 지금의 경제위기는 과거의 어떤 위기와 매우 비슷하던가 똑같을 수 있다. 그래서 고전은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논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전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고전을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고전을 빙자한 자신의 논리 강조이며, 종종 논리 비약일 수 있다. 특히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이 대단한 큰 영예인 것은 알지만 과연 그 상이 모든 것이 옳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계를 경제위기로 몰아놓은 롱텀캐피탈도 사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이 만든 회사 아닌가? 그런데 망했다면 노벨경제학상을 수여하는 기관(아마도 스웨덴 은행)이 완벽한 것도 아니 완벽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노벨경제학 수상은 지금까지 수고했다는 감사의 표시 정도로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어느 순간 노벨 경제학상이 투기꾼에게 좋은 정보를 알려준 이들에게 시상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은 일본의 경제상황에 대한 타개책을 위해 마련된 것이리라. 그런데 한국은 일본을 매우 닮았다. 한국의 발전전략이 일본의 발전전략에 기인해서 만들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경제위기는 일본을 닮았고 그래서 일본을 한국으로 바꿔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주목의 대상은 된다. 즉 일본의 위기 처방책을 한국은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획일화된 수용은 위험할 것이고, 적절한 참고는 할 수 있겠다. 어떻든 한국도 위기를 극복해야 하니까 말이다. 타산지석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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