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낮은 언덕들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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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낯설었다. 언젠가 작가 배수아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정작 그녀의 소설을 읽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 때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면 좀 편해지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허황된 꿈이었다. 그녀는 너무 낯선 인물이었다. 경희처럼.
  신작 ‘서울의 낮은 언덕들’에서 서울은 그리 많이 나오지도 않았고 또한 주요 무대도 아니었다. 또한 이 책 속의 주제는 어쩌면 많이 봤던, 아니면 익숙한 그런 것이라 느껴졌다. 도시 속에서의 소외감이나 고독감, 그리고 도시에 대한 부정적 인식들은 배수아 작가만의 보관물도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가 한강처럼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하기 위해 식물이 되는 소설도 있고 보면 작가 배수아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매우 일상적이고 소소한 그런 것들로 채워졌다. 다만 그녀는 다른 매력을 통해 작가의 독특함을 자아낸다.
  이해 불가능? 아니 이해하기 조금 어렵다. 작가의 독특한 관형절이나 관형어는 지금까지 접해보지 못한 脫평범한 것들이었으며, 세상 역시 평범한 일상이 비일관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특히 현대의 지독한 병의 원인 중 가장 큰 위력을 보이는 자기만의 일방적 표현, 그에 따른 소통의 단절,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인간적 Cool함 등은 소설 곳곳에 활약하면서 소설 속에 담겨 있는 세상은 복잡하고 뒤엉켰고 이해가 매우 힘든 세상으로 변했다.
  어쩌면 우린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듯 하다. 특히 무수히 반복되는 도시와 도시인이란 어휘 속엔 그런 세상을 필연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리라. 이런 내용 역시 사실 흔하지만 배 작가가 풀어내는 형상화는 기이하면서도 무척 섬뜩하고 기괴한 세상이다. 죽음이 자연스레 나오고 무관심은 도처에 흔하다. 그 속의 인간들과 그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어구들은 매우 기계적이고 화학적이고 단절되고, 파괴적이며, 또한 다시 듣고 싶지 않을 만큼 냉정하다. 내가 만약 그런 어휘들을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사용한다면 그 이후의 결과는 얼마나 참혹할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더구나 우리가 알고 있다는 확신이 사실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나열되고 있는지를 보여줄 때,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서늘함도 느낀다.
  주인공은 ‘경희’란 여자다. 시작부터 기이한 직업인 무대 낭송 배우란다. 어차피 도시의 기이한 경험을 시켜주려는 작가의 의도인 듯한 이 장치는 결국 마지막까지 독자를 괴롭히는 장치들을 계속 보여주는 맛보기다. 경희란 여성의 과거는 서사가 진행되면서 한 커플씩 벗겨진다. 결국 평탄하지 못한 그녀의 과거와 그로 인한 것인지 정확한 판별은 할 수 없지만 거칠고 메마른 그녀의 어조와 태도는 세상과의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더구나 그녀는 자신이 속해있는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기이한 단체라고 할 여행단체인 카라코럼은 과연 현실에 존재는 하는 것인지 모를 만큼 괴이한 성격을 지닌 여행단체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 이력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여행 목적은 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봤자 공항을 지닌 그곳 역시 도시다. 그런 것을 벗어나기 위해 도보로 국경을 넘으려 하지만 그것 역시 좌절된다. 현대란 시대에 그런 몸부림은 결코 현명할 수 없고 또한 도시인은 도시에서 밖엔 살 수 없는 태생적 비극을 안고 있는 존재다. 그래서 도시 속의 부정적 요소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 경희는 그것들을 독자들에게 괴이하게 확인시킨다.
  가족, 현대의 도시인들이 꿈꾸는 궁전이다. 그러나 그곳 역시 도시인들에겐 잃어버린 세계인지 모른다. 소설 속 주인공 경희의 가족은 결코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함께 살면서도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확인하지 못함은 물론 함께 살면서도 서로가 비밀이란 장막으로 드리워진,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가족이란 집단으로 이뤄졌다. 더구나 언니가 사라진 과정과 이후의 변화 역시 비일반적이다. 있을 것만 같지만 결코 존재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가족만은 아니다. 피상적인 부분들로만 존재하는 기억 속의 존재들 역시 부정확하고 그래서 기댈 수도 없다. 부유하며 긴장하면서 억지로 사는 도시인들의 가련한 인간 군상이 더없이 소설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경희의 과거가 불확실하고 또한 우울함의 연속이어서인지 그로 인해 경희 역시 떠도는 구름과도 같다. ‘서울의 낮은 언덕들’은 그래서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이기도 하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은 불확실하고 파열되고 분절된 단어들을 통해 기록되고 보존된 그런 것들이 사실은 불확실하고 아련할 뿐, 매우 불안한 국면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과 비현실 모두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주변이 과연 정상적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마치 나처럼 말이다. 존재의 나약함 속을 느끼며 말이다. 이 소설, 참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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