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이를 먹으면서 변하는 생체적 특징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단순한 육체적 성장이겠지만 시간에 걸맞은 경험이 축적되기에 정신적 성장 역시 의미하기 마련이다. 소녀시대란 이름도 이제 바꿀 수 있는 나이로 접어든 어른이 된 그녀들의 새로운 앨범은 이제 어른이 됐음을 선포하기라도 할 듯, 이전보다 더 강력한 사운드가 담겨 있다. 이제 우리가 아는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란 말이 어울리지 않은 그녀들이 됐음을 알리려는 듯,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쉽다. 몇 년 전의 그녀들이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듣는 것은 CD이고 그녀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은 음악이다. 과거보다 더 강한 사운드라 하지만 그녀들이 음색이 점점 기계음에 가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단적인 예가 그녀들의 타이틀 곡인 ‘The Boys’다. 남자들의 남성다움을 이끌어내듯, 그녀들의 마법을 거는 가사들은 저주만을 퍼붓거나 원하는 것만 이야기하는 다른 여성 아이돌 가수들과는 분명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음악은 과거보다 단조롭고 기계음에 그녀들의 목소리가 뒤섞이다 보니 그녀들의 화려한 음색은 들리지 않았다. 그냥 목소리 없는 연주음악으로 만들어진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지 모를 정도란 생각이 들었다. 강한 비트는 흥겨움보다 군무의 분위기를 자아내며 좀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남자들의 활력을 일으키기보단 공격적인 분위기로 도리어 억눌리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이 앨범에서 소녀시대의 과거를 느끼게 하는 노래가 바로 ‘텔레파시’다. 좀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나 배경음악에 각자 솔로파트에서의 아름다움이 많이 상쇄되고 있다. ‘GEE’와 같은 색다른 매력을 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자칫 그녀들의 퇴행을 증명하는 듯한 노래다.
제시카의 유혹하는 듯한 멘트에서 시작되는 ‘Say yes’가 가장 소녀시대 같은 노래고, 어쩌면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노래란 느낌이 든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노래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그녀들의 제대로 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반갑고, 화음 역시 제대로 된 것 같다. 잡음처럼 들리는 효과음과 멋지게 대조되는 그녀들의 음색의 청아함과 고음이 제대로 표현된 것 같다. 제시카의 가창력이 잘 활용된 노래다.
‘봄날(How Great is your love)’는 시간을 제때 못 만난 노래다. 겨울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봄날이라니. 그래도 소녀시대의 발라드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다시 보여준다. 확실히 소녀시대는 노래를 잘 하는 아이돌 가수들이다. 다만 이런 노래는 다른 가수들 역시 잘 소화시킬 수 있는 노래다. 최근 ‘불후의 명곡2’에서 여왕이란 칭호를 받은 ‘씨스타’의 ‘효린’이 부른 뛰어난 발라드인 ‘오직 그대만’ 정도의 노래를 소녀시대가 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흔한 노래로는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무래도 이번 앨범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가수들과의 차별성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Oscar’는 이전 작품들과의 차별성도 드러내지 못한 것 같다. 태현의 강한 음색이 인상적이지만 군무를 위한 음악도 아니고 춤을 위한 것도 아닌 나름의 서사성을 지녔지만 제대로 된 어둠이나 우악스러움도 만들지 못한 것 같다.
조금 아쉽다. 그녀들의 과거만을 먹고 사는 팬만 있는 것이 아닌 지금, 그녀들의 새로운 도전이 그 결실을 제대로 맺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그녀들의 우아하고 뛰어난 재능을 의심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 재능이 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Top Secret’는 그래도 매우 인상적인 테마와 구성을 갖고 있는 노래다. ‘The Boys’보다 더 인상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노래란 생각이 든다. 적당한 배경음악에 그녀들의 제대로 된 화음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Lazy Girl 역시 매우 즐거움을 전달해준 그녀들의 매력이 잘 드러난 노래다. 색다른 그녀들의 완성도 높았다는 생각이 든다.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즐거운 생각이 들고, 또한 즐겁다.
‘제자리 걸음’은 과연 소녀시대란 느낌을 들게 하는 노래다. 아무래도 전자음에 뒤섞인 채, 자신들의 묘미를 잃어버린 앞서의 노래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 것 같다. 다만 이 노래는 소녀시대의 퇴행일 수 있단 이야기도 나올 법하다. 하지만 그녀들의 실험성보단 완성도를 보고 싶은 팬들도 있을 것이다. 과연 소녀시대만큼 화음을 제대로 낼 수 있는 여성 아이돌 그룹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노래다. 그녀들이 이렇게 성숙했으면 한다. 시크릿도, 브아걸도, 그렇다고 씨스타는 더더욱 아닌 한국 최고의 여성 아이돌 스타로서의 선도적인 능력을 계속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