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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를 위한 경제학은 따로 있다 - 마음에 속고 확률에 속는 당신을 위한 행동경제학
마카베 아키오 지음, 김정환 옮김 / 부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이 좀 길다. 그런데 부제는 더욱 길다. 책 속의 글로는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일본인의 꼼꼼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마도 현실 문제에 대한 답답한 감정이 있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객관적 사실로 상대에게 다가서는 사회과학서라면 냉철해야겠지만 뭔가 이야기하고 싶고, 뭔가 도움을 주려고 한 것 같다. 답답하기에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이라면 좋은 방법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진심은 느낄 수 있었다.
전통경제학이 무너지고 있다. 아니 무너졌단 표현이 더욱 적절하다. 현재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 중 그 어느 누구도 합리적 인간형을 상정한 전통경제학 처방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누군가 주장하더라도 아무도 믿을 것 같지 않다. 지금의 경제위기의 주범이 바로 전통경제학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Wall Street Journal’이란 신문에서의 기고문 중 ‘Friedman, you are right’란 제목이 기억난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글로 기억되는데 세상은 바뀌고 말았다. 어쩌면 오늘의 위기를 일으킨 주범으로까지 지목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경외해 마지않는 그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하고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확실히 전통경제학은 위기다.
사실 전통경제학이 세운 가설은 이론이나 수업의 편의를 위해 만든 가상의 공간이었다. 사실 완벽한 합리성을 지닌 인간은 물론, 정보가 완전히 공개되는 시장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전통경제학자들이 믿었었는지 의심스럽다. 지금이나 과거에 말이다. 너무 단점이 많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가상공간이 어느 순간 현실이라고 강요됐고, 마치 반드시 따라야 할 가치규범으로 각인되기조차 했다. 어리석어 보이는 세상이 정말 존재한다고 강조됐고, 그것을 따라야만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자본을 투자해서 수익을 얻고자 하는 주식이나 채권시장 등, 소위 투자해서 이문을 남기는 시장에서조차 강요됐다.
세상에서 가장 거칠기만 한 투자시장에서의 전통경제학 방식은 위험하기 그지 없다. 특히 평탄하고 안정적인 세상에서나 적합한 전통경제학 이론들은 위기의 대명사인 대공황에선 여지 없이 무너지는 이론들이었다. 이런 상황은 전통경제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강력하게 행사하는 경제인사들에 의해 그런 의문들은 큰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그 뒤에 있었던 강대국들인 영국이나 미국의 영향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의 눈을 가리려 했던 이 잔혹한 일들이 이 책에서 소개된 행동경제학에 의해 여지없이 폭로되고 있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소개된 행동경제학은 사실 대공황 같은 위기는 물론 전통경제학이 가장 잘 한다고 믿는 안정적인 세계에서도 잘 들어맞는 이론이다. 아직 발전의 여지가 많지만 인간의 비합리성과 불안정성을 긍정하면서 투기의 이유와 과도한 거품들에 대한 내용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끈다. 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통찰은 오늘을 살고 있는 인간을 자성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행동경제학은 어쩌면 칸트의 철학서와 같은 깊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 산재하는 수많은 비합리성과 주관성, 그리고 비논리적인 판단과 거품, 그리고 그 뒤에 내재하는 탐욕을 보여주고 있다. 제대로 된 투자를 한다는 것은 그것과 관련된 상담을 담당하는 펀드 매니저도 힘든 문제다. 더구나 멋대로 판단한 척도로 자신의 독단을 합리성으로 무장한 채, 나는 틀리지 않다라는 함부로 된 단정을 갖게 된다면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의 무서운 결과들을 볼 때면, 겸손의 미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다. 이 책이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함부로 예단하는 투자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은 물론 설사 비경제인이라 하더라도 한 번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행동경제학은 많은 가치를 갖고 있고 그래서 주목 받아야 할 이유가 많은 이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