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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 The Recip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런 소재로도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된장, 한국 사람들이라면 그 이미지가 거의 고정됐다 해도 결코 틀리지 않는다. 평소에 한국인이 즐겨 먹긴 하지만 그다지 우아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매우 향토적이라 지금의 청소년 층에 인기가 기성세대만큼은 못 되는 그런 음식재료다. 된장찌개, 서민을 대표하긴 하는데 점차 사라지는 우리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이 다소 억측이겠지만 그래도 만드는 정성만큼 평가 받는 것은 아닌, 그런 음식재료로 보인다. 이제 피자가 대세인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다.
영화 제목인 ‘된장’은 좀 괴팍한 영화다.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상상과 사실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국판 마술적 사실주의 영화라고 할까? 희대의 살인마를 잡은 된장찌개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정말 이런 기막힌 발상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호기심은 관객만을 홀린 것은 아니다. 영화 속의 인물인 최유진(류승룡)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그가 찾아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줄거리를 구성한다.

다소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최유진은 방송국 PD다. 그의 캐릭터 특성은 영화의 모든 재미를 이끈다. 치밀하고 냉철하면서도 끈질기지만 그의 표정 하나하나는 매우 코믹하다. 아마도 영화 제작자들은 모든 쟝르의 특성을 한 영화에 집어넣으려고 했나 보다. 다소 과한 욕심이지 않았나 싶지만 대중성과 실험성, 그리고 작품성 등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는 선택이다 싶었다. 또한 정보를 좇아 그 이력을 밝히면서 대중의 호기심을 이끄는 그의 직업이고 보면, 힘들더라도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정보를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찾는 이는 멋진 된장찌개를 만든 어느 여자였다. 어떤 특별한 약을 탄 듯, 많은 이들을 홀리는 음식의 주인공이 어떤 이인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도 끌었다. 뻔한 소재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기이한 상황 등을 통해 관객의 호기심을 이끄는 것은 확실히 성공하고 있다.
영화는 어쩌면 복잡하면서 많은 공이 드는 된장 만들기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도 같았다. 된장 만드는 것에 이렇게 많은 재료를 쓰는 지도 몰랐고, 복잡한 자연 현상이나 다양한 생명체들이 필요한 지도 몰랐다.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된장 제작과정은 어쩌면 된장 만들기 교본으로 쓰여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마치 식객의 또 다른 버전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요리사의 능력은 물론 요리과정을 꿰뚫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이 영화 식객과 매우 유사한 특성이 있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달랐다. 바로 사랑이었다.

좀 생뚱하기는 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만들었다는 마지막 내용은 잘 나가던 기차가 갑작스레 탈선한 느낌도 들었다. 많은 이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피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억지로 로맨스를 집어 넣으려다 안타까운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 만들었다는 진부한 설정은 좋은 평가는 아닐지라도 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뻔한 자극제일 수도 있고, 영화를 진행시키는 복잡한 설정을 하나로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장치인 것도 같다. 솔직히 한국 영화의 가장 큰 고객이 여성이고 보면 여성들을 자극하는 묘한 멜로도 필요할 듯싶어 집어넣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떻든 감동을 주려고 한 것 같고, 관객으로서도 어떤 감동을 받은 이도 있을 것이다. 뻔한 결말에 대해 진부하다고 평할 수 있지만 대중성도 무시할 수 있는 현실도 아니고, 그 뻔한 진부함이 도리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치인 것도 사실이다.

죽은 자의 환생 등을 보면 천년유혼도 생각이 났다. 확실히 마지막은 어디서 많이 본 것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니 영화를 보는 마지막은 좀 편했다. 묘한 인상으로 관객의 관심을 끄는 것은 좋지만 어느 순간 느끼는 괴이한 공포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기도 했다. 공포물을 싫어하는 이가 본다면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진부한 종결이 좋아 보이는지 모른다. 창의성은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편안함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좋은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신선함과 진부함이 뒤섞인 것이리라. 그래서 진부함이 있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묘한 매력을 크게 잠식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실험성은 실험성일 뿐, 그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긴 힘들 것이다. 예술성이 얼마나 큰지 잘 모르겠고 대중성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그래도 끊임없는 두 가지의 도전을 나름대로 섞어서 보는 이들에게 묘한 재미를 준 것은 사실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