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목장의 결투 - Gunfight at the O.K. Corra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우연하게 본 OK 목장의 혈투는 어느 순간 갖던 서부영화의 편견을 무너뜨렸다. 언제나 의미 없는 총질을 하며, 사람의 목숨이 파리목숨으로 다뤄지는 마카로니 웨스턴 무비에 너무 익숙해서인지 모든 서부영화가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마카로니 웨스턴 무비 이전의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과거 서부영화에선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고민,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이 있었다.
  1957년 작품인 ‘OK 목장의 혈투’는 고전이다. 다 그렇게 안다. 하지만 왜 이 영화가 고전인지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다. 과거 어느 때쯤 봤을 법도 하지만 이번에 봤던 이 영화는 전혀 새로운 영화로 다가왔다. 내용은 뻔했다. 가족을 위한 일종의 복수극 정도. 그러나 그 복수극의 과정은 결코 복수극 정도로만 평가할 수 없었다.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엔 인간 그 자체를 볼 수 있었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갈등은 사회적 가치와 인간적 본능 간의 치열한 긴장이다. 빌 와이어트는 사회적 정의를 그 어떤 것보다 소중히 아는 보안관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혼을 약속했으면서도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악당을 응징하기 위해 포기했으며, 악당이 아무리 강해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목숨을 걸고 공동체의 안녕과 정의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이런 캐릭터는 오늘의 영화에선 보기 힘들다. 사회적 가치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연인을 먼저 고려하는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것이 대세인 요즘이다. 그런 점에서 빌 와이어트는 너무 고전이며, 오늘의 관점에서 봤을 때, 비현실적이다.
  또한 남자의 모습 역시 달랐다. 여자의 순종적인 모습 이전에 남자들은 강한 책임감을 갖고 모든 것을 대했다. 그들은 어쩌면 현재의 우리가 꿈꾸는 그런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끈끈한 인간애와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 그리고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믿음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현재의 우리가 보면 천편일률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늘의 영화에선 사라진 인간미가 도처에 있었다.
  이런 인간에게 인간적 충격을 안긴 사건이 발생한다. 자신의 동생의 비극적인 살해다. 공동체적 가치를 가장 우선했던 그도 결국 인간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는 사회적 정의와 가치를 수호하는, 그래서 인간적인 고뇌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이 되어야 하는 보안관의 직위를 버리고 동생을 위해 목숨을 바쳐 복수를 하는 형, 빌 와이어트가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인간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관찰을 하게 된다. 가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이야기하고, 개인적 복수를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있던 가치관을 깨야 하는 상황은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어느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보이는 공동묘지는 인간으로서 완벽할 수 없고, 언젠가는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보안관으로서가 아닌 와이어트 가문의 한 일원으로 결투에 참가하게 된 빌 와이어트의 운명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가문과 가문의 대결이 벌어진 O.K 목장은 그래서 인간의 나약함이 한껏 드러난 불운의 장소다. 그곳에서 누군 죽었으며, 누군 복수했다. 하지만 그 복수는 어딘지 모르게 통쾌하지 않았고, 어느 가슴 한 편에 잊고 싶은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은 우울함이 산재하다. 복수를 위해 누굴 죽여야 한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복수가 정당한 법이나 일반적 가치관이 아닌 감정에 따른 결과이며, 그 과정에서 결코 죽이고 싶지 않은 이까지 죽여야 하는 불운은 이 영화의 우울한 인간미를 드러낸다. 또한 이 지점을 영화는 냉정하고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어쩌면 공동체적 가치가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있는지를 보여주려 한 것 같다. 결국 본능을 갖고 있는 인간이 사회적 가치를, 그리고 공정한 사회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려 주는 것이며, 술주정뱅이이자 살인자로서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닥 할리데이의 도움을 통해 자신의 일을 이루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이치를 보여주려 한 것 같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인생의 우울한 측면을 느끼게 한다. 즉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세상과의 치열한 타협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이 영화를 고전으로 만든 원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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