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개 - Poongs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는 그렇게 살아갔다. 벙어리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는 오직 말이 아닌 행동만으로 세상을 상대했다. 말은 언제나 거짓말을 잉태하고 상대를 속이는 법이다.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그렇게 비겁했다. 남한을 지키는 국정원이든, 북한에서 온 간첩이든, 국가를 온몸으로 지키는 그들은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으며, 비겁하기까지 했다. 그들 특유의 직업세계에서 비롯됐든, 분명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짓들이 그들 세계에 남발됐고, 그런 것에 기반해서 벌어지고 있는 남북한 외교관계는 대충 엉망이 될 것임을 짐작하게 만든다. 우린 그런 인간들의 보호 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인간들, 언제나 행동보다 말이 앞섰고, 말 정말 많았다.
  말이 필요 없단 이야기 같다. 아니면 말 많은 인간들은 사람처럼 대할 필요가 없단 뜻일 것도 같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만 할 뿐, 그에 대한 대가도 없었고, 도리어 처벌하려고까지 했다. 합법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피해를 입히지 않은 그는 어느 순간 양쪽에서 다 쫓기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그를 향해 언제나 물었던 질문, 넌 누구 편이냐, 이 슬픈 질문은 그를 위험인물로 만들고 말았다. 그는 일종의 범법자가 된 것이다. ‘풍산개’란 별명은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모르지만 모두 그를 개처럼 다루려고 했던 것은 분명하다. 인간이지만 그냥 사용하다 버릴 도구처럼 그를 상대했고, 인간이기보단 개처럼 그를 다뤘다. 그의 분노에도 그들을 아랑곳없이 마음껏 다루려 했다. 그의 인간적 고뇌는 철저히 무시된 채 말이다. 그래서 그는 화났다. 당연하지만.
  그런 첩보원들은 지금의 남북한처럼 긴장만 잉태했고 악화시켰다. 영화 속에 드러난 그들의 본색이란 것은 사실 적 아니면 아군이었고, 그래서 풍산개의 월담 행위를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따져서 판단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이면 좋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보다 그가 누구 편이냐라는 그들의 태생적 사고인 아군과 적군 구별하기로 그를 상대했다. 그래도 그가 필요했나 보다. 그래서 그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대우를 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만 하려 했고, 그 이후에도 그를 억압만 하려 했다. 풍산개는 사실 도망갈 곳이 없게 됐다. 
 

 

  풍산개, 월담하면서 남북한을 오고 간 그의 행동이 법에 저촉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의 그의 행동은 정부와 첩보기관이 해주지 못한 이산가족 연결 등을 대행해주고 있었다. 어떤 점에서 정부보다 더욱 필요한 존재일 것이다. 이념과 긴장으로 인해 정작 해줘야 할 것을 해주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남북한의 아픔은 언제나 넘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그는 한국의 바람을 만들어주는 천사인지 모르겠다. 잘 한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그냥 눈감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 녹녹할까? 절대로 그러지 못할 것이고, 특히 김기덕 감독의 세계관이 만든 세상 한복판에 있는 풍산개의 운명은 결코 행복할 리가 없다.
  김기덕 감독이 만든 세계는 언제나 파멸적이고 비극이기 때문이고, 심지어 비인간적 세상의 잔인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그래도 마지막엔 인간미로 끝나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인간미를 비웃듯 언제나 참혹했고 비인간적인 만행으로 끝났고, 폭력적이었다. 관객들 중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서 좋게 끝난 것을 본 경험을 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절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런 그의 제작을 발판 삼아 감독으로 뛰어든 전재홍 감독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듯 하다. 영화 곳곳에 감지된 김기덕 분위기는 이 둘의 가까운 인맥은 물론 매우 세상에 대한 어떤 인식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들은 어느 면에서 서로인 것이다.  
 

 

  영화 속에 제대로 된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남북한의 첩보원들은 사심 가득한 정신자세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기 바빴고, 각 인물들의 캐릭터들은 거의 정신병자에 가까울 만큼 신경질적이고 불안에 떨었다. 상황을 봐선 그럴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도가 심했다. 그냥 정신 없이 헤매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할 뿐이다. 고마운 줄 모르고, 의심하며, 또한 정당한 대가보단 상대를 옥죄어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려 했다. 그나마 착한 캐릭터들은 무참히 희생된다. 김기덕 감독이 조준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정부는 물론, 가진 자들의 폭력성, 언제나 위험하고 편협하다. 말만 많았지 제대로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곤 거의 없는 그런 사회의 1%가 갖고 있는 무가치성과 폭력성을 효과적이지만 과격하게 형상화하고, 비판한다. 말 그대로 김기덕 식 방법이며, 정말 김기덕 표 영화다.
  사실 이 작품 이전에도 언제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통해 볼 수 있는 세계는 엉망진창이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세상에 빗대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참혹할 필요가 있는지 사실 모르겠다. 현실을 가장한 상상물인 그의 영화는 옛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폭력적이고 잔인한 세계에서 영화에서 나온 인물들이 바뀌었을 뿐, 사실 캐릭터의 변화는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건 그가 만든 세상이 김기덕이란 사람의 시선을 통해 나왔기에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만드는 것은 분명 특정한 계열로 흐르게 마련이고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기반으로 만드는 것이기에 언제나 제한되고 종종 편협할 수 있는 세계관 안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어쨌든 난 그의 세상에 시간을 구태여 내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봤다. 
 

 

  그나마 그가 갖고 있는 사회성은 무척 인상 깊다. 윤계상이란, 조만간 최고의 반열에 설 날이 얼마 안 남은 연기자를 통해 그는 세상에 깊이 있는 각성을 요구한다. 그의 연출과 제작 방식이 괴이하고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괴기함이 가득하다. 그리고 인권적 측면은 거의 무시한다. 그의 작품에 인간다움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과도한 인상에 짓눌려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열악한 사정을 고려해보면 나름 잘 만든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울림이 강한 영화들을 만든다. 그의 방법이 과격하지만, 그는 분명 우리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들을 들려주고 보여준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인간들을 향해, 그는 사회성 짙은 폭력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영화 역시 그런 것이다. 언젠가 그가 담아낸 폭력성과 비극이 줄어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강렬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매우 그런 것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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