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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The Lincoln Lawy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세상을 현실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이 늘었다. 어쩌면 어른이 다 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법정에서 피해자와 피고인을 사이에 두고 법정 공방을 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판결하는 법조인들이 한 때 정의롭고 우아해 보인 적이 있었다. 마치 이슬만 마시고 사는 여신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연들을 겪으면서 그들 역시 일반인과 똑같이 직장인일 뿐이며, 경제적 문제를 안고 살며, 직장을 벗어난 가정에서도 역시나 힘든 시간을 보내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현대인이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됐다.
잘 사는 부유함을 상징하는 링컨 자동차, 지금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지만 그래도 아직도 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제유적인 산물이다. 그것을 몰고 다니는 변호사라면 당연히 상당한 부를 갖고 있는 변호사임을 과시하는 모양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협심 있는 변호를 맡았다면 미국이나 한국에선 좀체 몰기 힘든 그런 자동차다. 따라서 링컨차를 몰고 다닌다는 의미는 확대해석은 금물이겠지만 그래도 속물적인 변호사일 가능성을 크게 내비치고 있고, 영화 자체에서도 그렇게 의협심이 있는 인물로도 나오지 않는다. 평범하다고 하기엔 차라리 장사수완이 좋고 고객관리를 잘 하면서도, 제대로 가격을 후려치는 그런 변호사다.

이런 캐릭터에게도 양심이 있는 모습을 첨가시킨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봤다. 하지만 마지막 양심이랄까? 이전 사건 수임에서 의뢰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전제 하에 변호를 담당했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을 의뢰 받은 변호사는 일종의 개과천선을 위한 자리를 얻게 된다. 그때의 범인이 제 발로 찾아와 사건을 의뢰하면서 링컨차 변호사는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특유의 배짱과 모략으로 멋지게 넘어간다.
이 영화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도 않고, 사회적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 변호사의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도 아니다. 그냥 그렇고 그런 변호사의 모험기 정도? 그의 모략의 진수를 보여주는 속물 변호사의 한 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미국사회, 아니 그것을 넘어 미국과 비슷해져 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법을 통해 돈 벌고 있는 속세의 인물의 세상에 대한 처신법 정도.
여기서부터일까? 왠지 모르게 이 인물에 대해 정이 간다. 그리고 그는 어떻든 성공신화를 쓰고 있지 않은가? 그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면서 Role Model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가파른 영향으로 인해 쓰디쓴 세상살이 속에서 생존의 법칙을 잘 이해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이젠 위기가 10대부터 80대까지 일반화되고 있다. 배트맨도 스파이더맨도, 심지어 한국의 영웅, 홍길동도 영화나 동화 같은 비현실속에서나 존재하게 된 이 시점에서 또한 더 이상 따뜻한 인간미를 갖고 있는 춘향이를 기대할 수 없음을 모든 이는 알고 있다. 결국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인간관계만 넘치고 있는 오늘날,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 우리들에게 링컨차를 타고 다니는 변호사는 우리가 꿈꾸는 성공철학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는 어떤 면에서 사건만 치고 다니는 악당보다 더한 악당이다. 그는 알면서도 살인범을 풀어줬으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옭아맨 위험의 사슬을 슬기롭게 풀어나간다. 그는 손해 본 것이 없으며, 도리어 그 일로 엄청난 돈을 번다. 일거양득이라고 할까? 아니면 위기 속에서도 기막힌 전략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라고 할까? 어떤 수식어라도 그의 활약은 사회를 위한 미담은 아니더라도 생존에 목말라 하는 이들에겐 단비 같은 존재다. 어떻게 살 수 있을까에대 한 멋진 답변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쓰다. 성공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비록 거짓된 스토리 상에서의 캐릭터지만 사회정의보다 현실에서 잘 버티는 인간이 얼마나 우아하게 포장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좋다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나쁘다고 돌을 던질 필요도 없는 그런 변호사, 우리는 그가 펼치는 속물주의에 열광하기보단 세상을 살아가는 그의 영악함을 더욱 닮고 싶은 것이다. 이런 모습은 소외의 위험에 처하면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가련한 자들의 우울한 이상향을 보여주며, 그리고 역설적으로 약하기만 해서 위험에 자주 노출되고, 또한 그런 위험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불쌍한 인간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 참 우울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위기가 본질적으로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며, 그래서 힘들게 살면서 추구하고 있는 속물적 이상향이란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는 우리 현대인들의 고민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영화의 여운은 아마도 이게 가장 클 것만 같다. 그래서 참 슬프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도 그처럼 멋지게 살고 싶은데 그러기 참 힘들어서 말이다.